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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함으로 늘 배우고 탐구하는 자세 견지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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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마음산책 (301)] 한국 사회와 '더닝-크루거 효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 수괴 혐의로 체포해 조사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5일 경기도 과천시 공수처가 위치한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시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윤석열 대통령을 내란 수괴 혐의로 체포해 조사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5일 경기도 과천시 공수처가 위치한 정부과천청사 앞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시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심리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실생활에 적용하려는 전문가들이 모인 학술단체인 한국심리학회는 현재 16개의 분과학회로 구성되어 있다. 심리학은 인간의 행동과 심리 과정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경험 학문으로서 인문과학에서부터 자연과학, 공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에 공헌하고 있다.

16개 분과 중 셋째로 설립된 분과학회가 '사회 및 성격 심리학회'다. 사회심리학은 사회환경 속에서 직접 또는 간접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고, 또 사회의 문화·규범·제도 등의 규제를 받고 생활하는 인간의 경험이나 행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는 분야다. 성격심리학은 인간의 성격이 어떠한 형태로 형성되고 유지되는지, 성격의 개인차는 어떠하며 왜 그러한지, 또한 성격이 어떠한 구조를 가지는지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다. 사회심리학과 성격심리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모임인 '한국 사회 및 성격 심리학회'에서는 학회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2025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사회심리 현상' 후보를 제안받았다. 그 결과 회원들로부터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를 '2025년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사회심리 현상'으로 선정했다.

'더닝-크루거 효과'는 인지 편향 중 하나인데 코넬대학교 사회심리학 교수 데이비드 더닝(David Dunning)과 대학원생 저스틴 크루거(Justin Kruger)가 코넬대학교 학부생들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를 토대로 제안한 이론이다. 먼저, 사회 및 성격 심리학회에서 더닝-크루거 효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을 인용해 소개한다.

더닝과 크루거는 1999년에 출판한 논문에서 네 편의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각 실험에서 대학생 참가자들은 유머, 논리적 추론, 문법과 같이 지식, 지혜 또는 숙련도를 요하는 영역의 능력을 평가하는 시험을 치렀고, 실제 시험 점수에 따라 상위 25%부터 하위 25%까지 네 집단으로 나뉘었다. 이후 참가자들은 자신이 해당 영역에서 몇 문제를 맞혔을 것 같은지를 추정했다. 또한 자신의 유머 인식 능력, 논리적 추론 능력, 문법 능력이 평균적인 대학생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일 것으로 생각하는지를 0순위(최하위)부터 99순위(최상위) 사이에서 스스로 평가했다.
더닝과 크루거는 각 영역에서 참가자들이 실제 점수를 스스로 추정한 시험 점수 그리고 평균적인 대학생과 비교해 스스로 평가한 능력과 비교했다. 그 결과, 실제 시험을 기준으로 하위 25%에 포함되어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능력이 제일 부족한 참가자들이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가장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예를 들면, 논리적 추론 능력 시험에서 하위 25%에 속한 참가자들은 실제 논리적 추론 능력 성적이 100명 중 평균 하위 12번째로 낮았지만, 이들은 스스로를 평균 68번째에 속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이들은 20개의 논리적 추론 문제 중 실제로는 평균적으로 9.6개를 맞혔지만, 자신이 14.2개를 맞혔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더닝-크루거 효과는 특정 영역에서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며, 실제 능력에 비해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더닝-크루거 효과는 왜 나타날까? 더닝과 크루거는 특정한 분야에서 능력이 부족할수록 메타인지(metacognition)가 부족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았다. 메타인지란 생각에 관해 생각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과정을 스스로 계획하고, 점검하고, 평가하는 능력을 말한다. 메타인지 능력이 높다는 것은 지식이나 숙련도가 필요한 분야에서 자신이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닝과 크루거는 무지하거나 무능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실제 능력을 깨달을 수 있는 메타인지 능력이 떨어지고, 결과적으로 자기 능력을 과대평가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즉, 특정 영역에서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은 해당 영역에서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 영역을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하는 이중고를 겪게 된다는 것이다.

더닝-크루거 효과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더닝과 크루거는 역설적이면서도 근본적인 방법을 제안하고 있다. 앞서 설명한 실험에서 더닝과 크루거는 특정 분야에서 무능한 사람들은 자신이 무능하다는 사실을 인지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바꿔 말하면, 특정 분야에 대해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훈련할수록, 그 분야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메타인지 능력이 생기고, 그 결과 자신의 실력을 과대평가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더닝과 크루거의 실험에서 논리적 추론 능력을 키우는 훈련을 받은 하위 25% 참가자들은 해당 훈련을 받지 않은 하위 25% 참가자들보다 자신의 실제 능력을 더 정확하게 파악하게 되었다. 자신이 특정 분야에서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해당 분야에 대해 충분히 학습하고 능력을 키운 후에 따라오는 것이다.

일상에서 우리는 마치 더닝-크루거 효과가 타인에게서만 나타날 것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자신이 특정 분야에 대해 모두 다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면, 스스로 빈 수레가 요란한 사람이거나 사람 잡는 선무당은 아닌지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스스로 더닝-크루거 효과에 빠져 있지는 않은지를 따져보는 방법은 더닝과 크루거가 제안한 것처럼 겸손한 자세로 늘 배우고 탐구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일일 것이다.

위의 자세한 설명에서도 암시되지만, 더닝과 크루거의 가설에 따르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경향을 보인다. 첫째,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한다. 둘째, 이들은 다른 사람의 진정한 능력을 알아보지 못한다. 셋째, 이들은 자신의 능력 부족 때문에 생긴 곤경을 지각하지 못한다. 넷째, 이들은 훈련을 통해 능력이 나아진 뒤에야 이전의 능력 부족을 알아보고 인정한다.

홍익희 교수가 2013년에 펴낸 '유대인 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유대교의 전통적 교육기관으로 랍비를 길러내는 율법학교인 예시바(Yeshiva)에서는 1학년을 ‘현자’, 2학년을 ‘철학자’, 3학년을 ‘학생’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즉 학년이 올라갈수록 상식과 다르게 지식 수준이 낮은 것으로 불린다. 그 이유는 겸허한 자세로 배우는 사람이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으며, 학생이 되려면 오히려 수년 동안 수업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대인이 온갖 고난과 고초를 겪으면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지혜가 담겨 있다.

정치의 영역에서 더닝-크루거 효과를 검증한 연구 결과는 작금의 한국 정치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메릴랜드 대학교의 이언 앤슨(I. G. Anson) 교수는 성인 남녀 총 2606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더닝-크루거 효과를 확인했다. 즉 정치에 대해 아는 것이 적은 사람일수록 반대로 자신의 정치적 지식에 자신 있어 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런 반응은 자신이 어느 정당을 지지하는 쪽인지 의식할수록 더 강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대조적으로, 정치적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은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를 진행한 이언 앤슨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서 활동하는 자칭 정치전문가들은 자신의 무지를 전혀 눈치채지도 못한 채 오히려 의기양양하게 무지를 과시하고 있었다. 이런 경향은 정치적 극단주의자들의 광신적인 행태를 잘 설명해 준다. 자신의 정치 신념에 종교적인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열성적으로 활동한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정치적으로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의 지나치게 큰 목소리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들은 자기의 정치적 견해만이 한국을 살릴 수 있는 ‘절대 선’이고 무조건 옳은 것이며,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쪽을 ‘악’으로 간주하고 없애야 할 대상으로 치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거리낌 없이 폭언과 폭력도 행사한다. 정치적 양극단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치의 요체는 타협과 통합’이라는 말은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라든지 “무식하면 용감하다”라는 선현들의 가르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새겨져 있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격언은 지금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큰 울림을 주고 있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에 자신이 있는 사람일수록 왜 사회심리학자들이 '2025 한국 사회가 주목해야 할 사회심리 현상'으로 ‘더닝-크루거 효과’를 선정했는지 한 번 진지하게 돌아보기를 권한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이미지 확대보기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