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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이코노믹

바람에 실려 온 무무(巫舞) '천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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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실려 온 무무(巫舞) '천지인'

[나의 신작 연대기(48)] 강원도굿 보존회 정회원 노미선(민속무용가)의 '천지인', 3월 22일 공연
용연 용신제(2024.10.13.)이미지 확대보기
용연 용신제(2024.10.13.)
무속이 현대화된다. ‘강원도굿 보존회’의 정회원인 노미선(魯美善)이 다가오는 3월 22일, 포항문화예술회관에서 만신을 꿈꾸며 '천지인'으로 무대에 선다. 경상북도립국악단 상임지휘자 박경현의 음악에 노미선이 을사년의 창에서 바라본 무속(巫俗) '천지인'에 대한 사유는 악가무를 오방에 두고 소리와 색상을 조율한다. 경기소리에 실은 음악은 '천지인'의 경지를 넘나들고, 맑아지는 영기(靈氣)와 서기(瑞氣)를 불러 접신의 경지를 창출한다.

노미선은 2남 1녀 가운데 장녀로 아버지가 군인이라 강원도에서 사내초교(화천)와 봉의여중(춘천), 미용에 꿈이 있어 연희미용고(서울 구로)를 거쳐 아버지의 발령지인 전북 익산에서 원광보건대를 다녔다. 밝은 광명을 비추어 사람들에게 삶의 길을 찾아주는 제자 서연(㷂囦) 노미선의 스승들은 청소년기 때부터 뵈온 할머니이자 신내림을 받고 모시면서 지전 만들기부터 신령에 대한 법도를 지도한 만신 정금옥을 거쳐, 현재 노원표·박순봉과 함께 팀을 이루고 있다.

이 세상에 자발적으로 무속인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드물다. 노미선은 어렸을 때부터 사람 형상의 혼불을 본다던가 귀신을 보았고, 청소년기인 열일곱 살이 되던 해부터 신병에 많이 시달리다가 열아홉 살이 되었을 때부터 신을 보기 시작했다. 스물한 살이 되었을 때는 무섭도록 변해가는 자신을 스스로 느끼게 되었다. 신을 받지 못하게 하면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었고, 강한 의사 표시와 더불어 신의 말을 하고 있었기에 신내림을 거부할 수 없게 되었다.

노미선은 2005년 7월 2일에 춘천에서 신내림을 받았다. 법당은 경기도에 자리를 잡았다. 경기도 현업 선생들과 한양굿 무형문화재 선생들과의 협업은 장단점이 존재했다. 춘천의 굿은 신령의 말을 전달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으나, 경기도나 한양은 타령이나 볼거리가 많았다. 노미선은 춘천의 굿을 좋아하고 지켜나가지만, 문서가 없다. 춘천 굿은 6·25 동란 시 황해도 무속이 문서도 없이 구전으로 전파되었다. 경기도 굿과 이북 굿은 빈번한 교류로 오묘하게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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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 용신제(2024.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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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 용신제(2024.10.13.)
제자 신내림굿(2023)이미지 확대보기
제자 신내림굿(2023)
재수굿 중 작두(2013)이미지 확대보기
재수굿 중 작두(2013)


노미선은 신령의 말씀 위주의 굿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공수를 듣기 위해 굿을 하거나 작업을 진행한다. 3장 구성의 '천지인'에서 소리를 넣어 제1장에 ‘신령’을 초대하고, 제2장에 ‘대감’을 초대하여 십이지생관을 타령하여 복을 떠다 주는 개념을 만들었고, 제3장에 ‘선황’을 형상화하여 동서남북과 중앙의 오방문을 열어 모든 사람이 재수를 받고 나쁜 액운은 물리친다. 하이라이트는 ‘선황’인데 강원도 굿은 선황 문을 열어 오방문을 여는 행위를 중시한다.

노미선은 스물한 살부터 신령과 스승 한 분을 모시고 정직하게 지금까지 법도와 절차를 소신껏 지키고 있다. 현재 노미선은 사)예맥무천예술보존회·강원도굿 보존회 정회원이다. 그녀는 신내림굿(2005. 07. 02.), 법당 모심(2005. 07. 05.), 제28회 소양제 참여(굿, 2006), 한국 무속종단(정회원, 2016), 한국만신상담사 1급(이수, 2022. 12. 22.), 제45회 소양제 참여(굿, 2023), 기우제(예맥무천예술보존회, 강원도 굿 보존회에서 주최, 2024)로 제자의 도리를 다하고 있다,

하늘의 큰 부름을 받아 전달을 해주는 제자 노미선은 국악과 어우러진 춤사위를 좋아한다. 악기로도 설명할 수 없는 국악은 사람의 목소리로 떨림, 독창적 창법으로 깊이감과 선율이 마음을 울리는 신호와 같고, 음색의 춤사위는 손가락 하나하나의 동작이 선율을 나타내주며 마음을 울려주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흰색. 무명. 삼베는 한을 이야기하며 그 한을 음색과 춤으로 헤아려 줄 수 있다.

신령을 내림하면서 첫 번째 가르침은 “자만하지 말라,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인다”는 것이었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민속 신앙계도 많은 변화가 있다. 그녀는 “무속 문화를 버리는 것은 잘못된 행위”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무속인을 외면하고 핀잔을 주는 것은 무속인들의 그릇된 행동에 있다고 생각한다. 노미선은 옛 문화를 복원하고, 지키고, 보존해 나가고자 한다. 사욕과 욕망에 얽매여 사리사욕만 챙기는 무속인을 경멸한다.

노미선은 큰 충격에 빠져 3일간 기진맥진 쓰러져 있다가 자신에게 ‘할 수 있다’라는 최면을 걸고 자리를 털고 일어나 움직이기 시작한 적이 있다. 이날 이후 자신을 다독여 주고 자신에게 편지를 쓰곤 한다. 그녀는 초등학교 시절에 읽은 윤인식 지음의 '빈배엔 달빛만 싣고'(한국어린이재단)가 일생의 울림으로 자리한다. ‘남의 잘못을 내 잘못 용서하듯 용서한다면 미운 사람은 없을 것이다’가 이 책의 핵심 내용이다.

2012년 9월, 화재로 생명이 위독한 아들을 둔 집에서 굿을 진행했다. 점사를 볼 때, 굿을 하면 산다고 하였으나 두려우면서도 신령을 믿기에 바로 굿을 진행했다. 일을 진행하는 중간에 밖에서 사자 옷을 만지는데 하늘 위에서 할머니 두 분이 환자의 두 팔짱을 끼고 굿하는 방 안으로 내려왔다. 그때 미선은 소리쳤다. “이제 살았다.” 얼마 후 전화벨이 울리고 전화기 너머로 간호사의 말소리가 들렸다. “고비를 넘기셨어요.” 하는 소리를 생생하게 들었다.

신내림굿(2005.07.02.)이미지 확대보기
신내림굿(2005.07.02.)
신내림굿(2005.07.02.)이미지 확대보기
신내림굿(2005.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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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내림굿(2005.07.02.)


노미선은 교통사고로 2014년 3월 29일 자정, 저승을 갔다 왔다. 이번에는 할아버지의 도움이 컸다. 숱한 병원과 신체 이상을 느끼면서 현재의 건강을 되찾았다. 그녀는 소신을 지키며 진실을 전달하고 정직한 무속인이 되고자 한다. 진실성 있는 공연을 통해 소통하고자 한다. 공연을 통해 무속인으로 살아온 서러움을 알리고 앞으로는 이런 서러움 없이 많은 제자가 웃으며 자신의 직업을 자신있게 밝히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가고자 한다.

무속인들이 지켜야 할 법도와 예의, 실천해야 할 규칙을 지켜나가며 존중받을 가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이야기하며 소통하고자 한다. 무속인은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재주를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다 똑같은 사람이니 헐뜯거나 왜곡하지 말고 서로 신뢰를 쌓아가고 존중해가며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가고자 한다. 괜히 남의 눈치를 보고 모든 것을 숨기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각자의 소신대로 묵묵히 할 일을 헤쳐 나가야 한다.

'천지인'은 긍정적인 생각으로 세상을 밝게 본다면, 세상은 무녀의 몫을 알아줄 것임을 알린다. 노미선은 “무속인들이 다시 태어나 살아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들 정도로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며 “사람들의 작은 촛불이 되어주고 등대가 되어줄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본분을 지켜나갈 것”을 주장한다. ‘신령’, ‘대감’, ‘선황’에 걸친 세상의 행복을 밝히는 적극적 행위가 꽃향기처럼 퍼지는 공연이 되기를 기원한다.

무녀 서연(㷂囦) 노미선.이미지 확대보기
무녀 서연(㷂囦) 노미선.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