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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등은 반드시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하는 귀한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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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마음산책 (302)] 사회발전과 변증법적 심리학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즉각 퇴진 범시민대행진 집회.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일대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즉각 퇴진 범시민대행진 집회. 사진=연합뉴스
지난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국민대회.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반대 국민대회. 사진=연합뉴스

겉으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현재 모습은 딱 둘로 갈라진 모습이다. 성화(聖畫)에 나오는 출애굽 시대의 기적인 홍해가 둘로 갈라져 있는 모습과 딱 닮았다. 양극단의 소리만 들린다. 이런 갈라짐의 기저에는 이성(理性)이 아니라 감정(感情)이 짙게 깔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양극단은 사사건건 둘로 나뉜다. 그리고 자신과 자기편에 대해서는 편애(偏愛)하고, 다른 편은 적폐(積弊)로 간주하고 없애야 할 대상으로 치부한다.

이런 극단적인 쏠림 현상이 제일 극명하게 나타나는 영역은 종교와 정치다. 종교 영역에서 이런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을 '종교적 근본주의(宗敎的 根本主義, Religious Fundamentalism)'라고 부른다. 종교적 근본주의는 다양한 종교에서 나타날 수 있으며, 거의 모든 종교에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 주의는 특정 종교의 교리를 절대적 진리로 받아들이고, 이를 철저히 지키려는 신념이나 운동을 의미한다. 한 종교 안에서도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지만 자신의 견해만을 진리라고 여기고 견해가 다른 상대에 대해선 진리를 곡해하거나 위협한다고 출교(黜敎)라는 극단적 처벌을 정당화한다.

정치적 근본주의도 특정한 이념이나 체제를 절대적 진리로 여기고, 이에 대한 타협이나 수정 없이 철저하게 적용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종교적이건 정치적이건 근본주의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배타적’이라는 것이다. ‘밀칠 배(排)’와 ‘다른 타(他)’의 합성어인 ‘배타’는 ‘다른 것을 밀친다’는 의미다. 즉 자기와 다른 것은 모두 밀쳐버리고 없애려고 한다는 것이다.

종교적이건 정치적이건 모든 영역에서 근본주의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공유한다. 첫째, 자신이 믿는 이념만이 유일한 해답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다. 둘째, 이분법적 사고를 한다. 따라서 자기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은 우리 편,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적으로 규정한다. 셋째, 강한 지도자를 숭배한다. 이들은 지도자는 오류가 없으며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이들은 개인의 자유보다 통일성과 복종을 강요한다. 넷째, 폭력과 강압적 수단을 정당화한다. 이들은 목표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정당하다는 합리화를 한다. 따라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폭력도 불사하고, 검열과 숙청 등의 극단적 방법을 사용한다.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반대 의견을 가혹하게 탄압한다. 종교적 극단주의에서도 교리에 대한 생각과 해석이 다르면 출교 등의 극단적 처벌을 한다.

정치적·종교적 영역 외에도 다양한 영역의 근본주의에서 공통된 특성들을 보인다는 것은 더 심층적인 심리적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는 의미다. 전생애발달심리학을 발달시킨 에릭슨(Erik Erikson)의 견해에 따르면 근본주의는 청소년기 발달과제의 달성 여부와 깊은 관계가 있다. 이미 널리 알려졌듯이, 청소년기의 발달과제는 ‘정체성’의 확립이다. 아동기에서는 부모의 절대적인 보호 아래 비록 독립적으로 이름은 가지고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의 자녀”라는 소속감을 가지고 살아간다. 부모에게 의존적인 생활을 한다. 하지만 성인이 되기 위해서는 “△△△”라는 독립된 정체감을 발달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모와 심리적인 이별, 즉 분리되어야 한다.

이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제도 아니고, 단시간에 이루어지는 과제도 아니다. 지금까지 마치 어머니의 태중에 있는 것과 같은 심리적 보호막 안에서 생활하다가 험한 세상으로 나가는 일은 자부심을 느끼는 동시에 극심한 불안감을 동시에 가지게 된다. 한편으로는 분리하려는 욕구를 가지지만 동시에 소속되어 있으려는 상반된 마음을 가지게 된다. 지금까지 부모와의 관계에서 안전감을 느끼는 아동기를 보냈다면 불안감을 극복하고 분리되는 자부심 쪽을 택하게 된다. 그리고 안정적인 정체감을 획득할 수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자신의 가치관과 결정을 신뢰하고 타인의 조언이나 충고는 받지만 결국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하고 결과에 책임질 수 있도록 심리적으로 성숙할 수 있다.

대조적으로 부모로부터 안정된 관심을 받지 못했다면 분리에 대한 불안이 강하므로 계속 소속된 상태로 있으려는 심리를 갖게 된다. 하지만 지금까지와 같은 심리적 상태로 더는 부모에게 의존할 수 없으므로 부모를 대신할 보호자를 찾게 된다. 이때 '중요한 타자(significant other)'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친구와 집단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부모로부터 독립된 후 불안한 마음에 안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열거한 근본주의의 특징은 바로 청소년기의 심리적 과제를 제대로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하고 계속 보호자 밑에서 안정을 찾으려는 속성이 나타난다. 특히 강한 지도자를 숭배하며 이들은 오류가 없고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 마음이 바로 불안한 마음이 기저에 깔려 있다는 증거다. 강한 지도자는 독립해야만 하는 부모를 투사하는 것이고, 절대적 권위를 믿는 것은 자신을 믿을 수 없고, 동시에 심하게 불안하다는 마음이 나타난 것이다.

이들이 동일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과 끈끈한 집단을 형성하고,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적대감을 갖고 배타적이 되는 이유는 자신의 정체성에 확신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같은 또래끼리 모여서 아직 확실히 정립되지 않아 자신도 완전히 믿을 수 없는 생각이나 사고를 서로 확인하는 작업을 한다. 이 과정에서 혹시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자신의 사고가 틀릴 것이라는 걸로 받아들인다.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들은 이분법적 사고를 할 수밖에 없고,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의 사고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 만약 자신의 가치관에 확신을 가진 성숙한 성인이라면 자신과 다른 생각을 차이가 있다고 받아들이고 수용할 수 있다. 다른 생각을 수용한다는 것이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여기며 불안감 없이 수용할 수 있다.

또한 청소년들은 아직 자신의 행동의 결과에 대해 충분히 이성적(理性的)으로 생각할 수 있을 만큼 자아가 강하지 못하다. 그 결과 감정과 욕구를 적절히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이 아직 충분히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로 생활하게 된다. 이 경우 자신의 욕구대로 행동하는 ‘행동화(acting out)’를 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선택한 가치에 대해 불안한 상태에서 욕구대로 되지 않을 때는 서슴지 않고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행동으로 나타낸다. 그리고 자신이 나타내는 행동을 통해 자신의 가치의 정당성을 확인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변증법적’ 발달이론을 주창해 심리학에 큰 반향을 일으킨 클라우스 리겔(Claus Riegel)의 이론에 따르면 성인은 청소년들과 달리 변증법적으로 사고한다. 변증법은 모순(矛盾)을 통해 진리를 찾는 철학적 연구 방법이다. 변증의 방식은 정명제와 반명제를 사용해 이들 간에 모순되는 주장의 합명제를 찾거나 최소한 대화가 지향하는 방향의 질적 변화를 일구어내는 논법이다. 이 방법을 이용한 변증법적 심리학(Dialectical Psychology)은 심리적 과정이 서로 대립하는 힘(모순)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전한다는 개념을 기반으로 한다. 이 이론은 심리학에서 주로 정체성과 인지과정의 발달에 유용하게 활용된다.

부모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부모의 가치에는 무작정 반항하던 청소년이 부모의 가치관과 반항심 사이에서 고민하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철학에서의 변증법과 유사한 과정을 거친다. 이제 부모의 가치관과 무조건 그에 반대하던 자신의 가치관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치관을 동시에 포용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나의 가치관과 다른 너의 가치관은 나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없어야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현재의 나의 가치관보다 더 합리적이고 윤리적인 가치관을 새롭게 형성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된다.

나의 가치관과 반대되는 가치관이 없다면 나의 가치관은 더 이상 성숙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인지적 발달은 갈등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갈등은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야 하는 귀한 에너지가 된다.

지금 한국 사회는 정치적인 영역이나 종교적 영역 그리고 다른 사회적 영역에서도 성장하느냐 퇴보하느냐의 기로에서 격하게 저항하고 있는 청소년의 모습과 흡사하다. 발달을 멈추고 고착되지 않기 위해 제일 먼저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 이상 근본주의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에게 계속 자리를 내주어서는 안 된다. 극우든 극좌든 근본주의의 피해는 동일하다. 현재의 상태에서 더 이상 성숙하지 못하고 고착하게 된다는 것이다. 모든 발전은 다양성과 갈등을 자양분으로 해서 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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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

필자 한성열 고려대 심리학과 명예교수는 국내 긍정심리학계의 최고 권위자로 미국 심리학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 심리학이 문화의 영향력을 경시하는 것을 비판하고 인간 행동에 미치는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특히 한 교수는 심리학 전공자가 이론보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소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기업체, 대학,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몸 건강 못지않게 마음의 건강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저서로는 '심리학자의 마음을 빌려드립니다' '문화심리학' '신명의 심리학'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성공적 삶의 심리학' '노년기의 의미와 즐거움' '남자 나이 마흔이 된다는 것' 등이 있다.


한성열 고려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