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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천국에서의 꿈', 한국 발레로 안중근을 발명한 사람들의 자존을 드높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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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천국에서의 꿈', 한국 발레로 안중근을 발명한 사람들의 자존을 드높임

문병남 안무, 양영은 연출·대본의 정통발레
광복 80주년·안중근의사 순국 115주기·M발레단 창작 10주년 기념 공연
단지동맹_군무_©허웅이미지 확대보기
단지동맹_군무_©허웅
3월 15일(토) 17시, 16일(일) 15시, 예술의 전당 CJ토월극장에서 광복 80주년·안중근의사 순국 115주기·M발레단 창작 10주년 기념, 안중근숭모회·안중근의사기념관 주최, M발레단 주관, 국가보훈처 후원, 문병남 안무, 양영은 연출·대본의 대작 정통발레 '안중근, 천국에서의 꿈'(2025)이 공연되었다. 위대한 애국자의 삶을 발레로 직조하는 작업은 여러 갈래의 예술적 힘이 모아져야 한다. 세계 발레지형도에서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발레는 창작 발레의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국제화되었다.

M발레단은 “한국 발레의 정체성 구축”(2015)이라는 신조로 창단되어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탐구하며 세계인들이 한국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해 공감할 수 있는 창작 발레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M발레단은 대부분 일회성 창작물과 달리 십 년 간의 수정·보완 작업을 통해 한국 발레계의 단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한국 발레의 축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안중근 의사의 유언을 핵심 동인(動因)으로 삼은 '안중근, 천국에서의 꿈'은 죽음 앞에서도 나라의 평화와 독립을 꿈꿨던 안중근의 삶과 철학을 각인하게 만든다.

안무력과 연출력의 우위를 확보한 M발레단의 역량이 골고루 미치는 가운데, 창작곡과 세계적 인지도의 명곡과의 적절한 배합으로 이뤄진 음악, 시각적 효과를 배가시킨 조명과 영상, 장면 분할과 의미를 소지한 무대 세트에 걸친 예술가들의 협업이 작품의 수준을 격상시켰다. '안중근, 천국에서의 꿈'은 1장 프롤로그(뤼순 감옥), 2장 안중근의 혼례식, 3장 이토의 통감취임 축하연, 4장 러시아 연해주 의병부대활동, 5장 안중근의 꿈, 6장 단지동맹, 7장 하얼빈 의거, 8장 뤼순 감옥에 걸친 8장으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그(E. Grieg)의 ‘The Death of Åse from Peer Gynt Suite No.1, Op.46’(페르퀸트 모음곡 제1번, 작품 46, 오제의 죽음)이 분위기를 감싸며 서막은 나실인 작곡의 ‘뤼순 감옥’의 선율을 타고 1910년 2월 14일, 차고 음습한 뤼순 감옥에서 시작된다. 배경 막 영상으로 감옥이 설정되고, 조명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 안중근이 조국을 그리워함을 연출한다. 안중근이 옥중에서 쓴 '동양평화론'의 일부가 상수 쪽에 안중근의 필체로 영상에 투사된다. 문과 무를 고루 겸비한 안중근은 결코 테러리스트가 아님이 입증된다.
안중근의 회상은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만 15세의 ‘안중근의 혼례식’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롤스크린이 올라가며 군무들과 함께 밝은 결혼식이 시작된다. 안중근과 김아려의 사랑 서약은 그림자 연출로 둘만의 시간이 연출된다. 요한 슈트라우스(J. Strauss Ⅱ)의 'Overture to the Opera 'Die Fledermaus''(오페라 ‘박쥐’ 서곡), 파가니니(N. Paganini)의 ‘Adagio flebile con sentiment from Violin Concerto No. 4 in D minor’(바이올린 협주곡 4번 라단조 2악장), 김은지 작곡의 ‘격동의 조선’이 숨가쁘게 운용된다.

‘이토의 통감취임 축하연’은 명성황후의 시해 사건과 통감부가 설치되는 영상이 투사되며 시각적인 요소의 스토리텔링이 된다. 상부에서 한지 등이 내려오며 붉은 빛이 무대를 감싸며 피로 정복한 일본의 붉은 야욕을 대신한다. 무대 상수 쪽에 테이블과 의자가 놓이며 일본군 장교 이시다는 자신의 정부 사쿠라의 술집에서 축하연을 벌인다. 안중근은 위태로운 조선의 상황에 망명을 결심하고, 어린 아이들과 신혼의 아내, 가족을 남겨두고 본격적인 구국 활동을 위해 그리운 고향 해주를 떠나 러시아 연해주로 향한다.

김은지 작곡의 ‘이토의 통감취임 축하연, Part I’에는 림스키-코르사코프(N. A. Rimsky-Korsakov)의 ‘Scheherazade, Op. 35’(세헤라자데 작품 35), 차이코프스키(P. I. Tchaikovsky)의 ‘Capriccio Italien, Op. 45’(이탈리아 기상곡, 45번)가 들어서고, 김은지 작곡의 ‘이토의 통감취임 축하연, Part II’에는 생상스(C. Saint-Saëns)의 ‘Danse macabre’(죽음의 무도(舞蹈)) 분위기를 잇는다. 야욕과 치정의 광란이 이어질 선정적 무도회는 직선적 통제하의 일사분란한 무희들의 부채춤이 선정성을 드러낸다.

안중근 혼례식_윤전일,장윤서_©허웅이미지 확대보기
안중근 혼례식_윤전일,장윤서_©허웅
안중근 혼례식_군무2_©허웅이미지 확대보기
안중근 혼례식_군무2_©허웅
안중근의 꿈_윤전일,장윤서_©허웅이미지 확대보기
안중근의 꿈_윤전일,장윤서_©허웅
통감취임 축하연_사쿠라_©허웅이미지 확대보기
통감취임 축하연_사쿠라_©허웅
통감취임 축하연_여군무_©허웅이미지 확대보기
통감취임 축하연_여군무_©허웅

안중근은 ‘연해주에서 의병부대 활동’을 시작한다. 안중근과 대원들은 탑 조명 아래 강건한 수련 모습을 보이고, 오케스트라 피트의 슬라이딩 장치를 활용하여 무대 앞을 오르내리며 일본군과의 전투 장면을 연출한다. 일본군 쪽은 어둡게 의병부대원 기습에는 조명을 밝혀 어둠 속에서 낮은 포복의 기습 안무를 강조한다. 안중근은 의병 결사체 동의회에 참여, 동포들을 훈련, 의병부대를 조직한다. 안중근의 부대는 이시다의 일본군 국경수비대의 경계망을 뚫고 국내 진입 작전을 전개하고, 전투에서 승리해 일본군들을 생포한다.

안중근은 순진하게도 전시의 만국공법에 따라 일본군 포로들을 석방하지만, 여우같은 이시다에게 의병부대의 위치를 노출당한다. 의병부대는 이시다 부대의 기습을 받아 전멸할 정도로 수 많은 동지들을 잃고 전투에서 대패한다. 김은지의 창작곡과 모소르스키(M. P. Mussorgsky)의 ‘민둥산의 하룻밤’(Night on Bald Mountain, arr. N. A. Rimsky-Korsakov), 포레(G. Fauré)의 엘레지 다단조 24번(Elegie in c minor, Op.24)가 연습 장면과 전투 장면을 실감나게 하며, 안중근의 전투 패배의 슬픔을 주조한다.

‘안중근의 꿈’은 몽환적인 영상이 무대 전체에 일렁이듯 구현되고 하수의 벽체의 문을 활용하여 스며 나오는 빛과 함께 여자 군무가 등장하며 천국과 같은 장면을 연출하여 자유와 평화의 세상을 표현한다. 극심한 죄책감에 사로잡힌 안중근은 심각한 부상으로 사경을 헤맨다. 정신을 잃고 쓰러진 그는 천국 같은 꿈속에서 전우를 잃은 고통과 자유와 평화를 향한 갈망에 휩싸인다. 안중근은 꿈속에서 그리운 아내 김아려를 만나고, 그녀의 손길에 이끌려 겨우 정신을 차린다. 그에게 가족은 성경같은 존재로 힘의 근원이다.

영상으로 태극기가 비치고 그 위에 단지동맹의 상징인 손바닥이 찍혀져 있다. ‘단지동맹’의 장(場)에 이르러 안중근은 간신히 연해주 크라스키노로 귀환한다. 의병 활동을 중단할 수 없던 안중근은 11명의 동지와 왼손 약지 첫 관절을 잘라 단지동맹을 맺으며 동의단지회를 결성한다. 얼마 후, 안중근은 이토가 러시아와의 협상을 위해 북만주로 온다는 소식을 접한다. 이토 처단 계획이 세워진다. 강인한 결의를 다지는 남성 군무의 스타카토 동작이 이어지고, 군무 영역에만 조명을 비추어 의거 계획에 집중하는 상황을 연출한다.

‘하얼빈 의거’의 장(場)은 절정을 이룬다. 메인 막이 무릎아래 부분인 여성 군무의 다리만 비추고 기차가 하얼빈역으로 들어온다. 기차가 객석을 한 바퀴 도는 듯한 연출로 객석까지 공간감이 확장된다. 열차 영상을 이동식 판넬에 비추면서 기차가 도착한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 삼엄한 경비와 환영인파 앞으로 ‘작은 키에 얼굴의 큰 점’의 이토가 열차에서 내리자, 안중근은 그를 향해 세발의 총탄을 명중시킨다. “코레아 우라!”(대한제국 만세)라고 안중근은 외친다. 그는 체포되어 뤼순 감옥으로 호송된다.

서막의 ‘뤼순 감옥’이 재현되며, 감옥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는 안중근의 모습이 그려진다. 하수는 감옥, 상수는 집으로 연출하여 안중근과 김아려가 만나면서 무대가 감옥이 된다. 사형을 선고받은 안중근. 죽음을 앞두고 그는 슬픔과 분노로 가득 하다. 험난한 마음 끝에 어머니가 떠오른다. 처참한 어머니의 심경이 안중근을 감싸안는다. 사형 소식을 들은 아내는 통곡한다. 그녀의 아픔이 안중근에게 닿자, 그는 온 마음으로 그녀를 사랑한다. 그녀가 사라지고 슬픔이 밀려오지만, 그동안의 결단을 되짚으며 죽음을 수락한다.

뤼순감옥(첫씬)_이동탁_©허웅이미지 확대보기
뤼순감옥(첫씬)_이동탁_©허웅
훈련전투_군무_이동탁_©허웅이미지 확대보기
훈련전투_군무_이동탁_©허웅
하얼빈의거_이동탁_©허웅이미지 확대보기
하얼빈의거_이동탁_©허웅
안중근 혼례식_이동탁,김리회_©허웅이미지 확대보기
안중근 혼례식_이동탁,김리회_©허웅

안중근은 “나라를 위해 한 일이니,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지 말고 대의를 위해 당당히 죽으라”라는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로 모친에 대한 그리움과 그동안의 결단들을 되짚어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안중근의 유언이 나레이션으로 울려 퍼지며, 어머니가 지어준 수의를 입고 당당히 천국으로 향하는 안중근의 모습이 연출된다. 1910년 3월 26일, 비장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31세의 안중근의 모습 뒤로 유언이 울려 퍼지며. 검정막이 내려오고 안중근의 모습 뒤로 관이 닫힌다. 올해는 '안중근, 천국에서의 꿈' 창작 10년이 되는 해이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