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도윤 안무·연출·기획

4월 5일(토) 저녁 7시, 4월 6일(일) 낮 3시,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아함아트프로젝트 제작, 아르코 대학로예술극장 공동기획, 함도윤 안무·연출·기획의 컨템포러리 발레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이 공연되었다. 연극 '피의 결혼'의 작가의 스페인 시대상 재현 작품은 두드러진 안무적 역량, 작곡과 성악에 걸친 압도적인 음악 수사의 묘, 뛰어난 움직임 연기로 ‘집’으로 상징되는 압박에서 자유를 촉발한 영혼에 존중을 보낸다. 작가는 스페인 사회의 시대적 흐름을 읽어가면서 진지함을 추구하였고 무용창작 의욕을 북돋웠다.
스페인 작가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Pederico Garcia Lorka, 1898~1936)의 안달루시아 배경의 ‘전원 비극’ 3부작은 '피의 결혼'(Bodas de sangre, 1933), '예르마'(Yerma, 1913),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La casa de Bernarda Alba, 1936년) 이다. 희곡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1936년)은 가르시아가 총살당하기 2개월 전까지 집필한 마지막 작품이다. 미국 유학파로서 스페인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작가로 주목받았던 작가의 죽음은 더 나은 환경과 자유를 갈망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공감하고, 동성애자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작가 로르카의 3부작은 모두 질박한 스페인의 시골을 배경으로 전통적인 가치관과 억압에 맞서는 정열적인 사랑이 충돌하는 여성들을 다루며, 주인공이 죽음에 이르는 비극적인 결말 구조를 갖는다. 전통적인 가치관 속에서 절대 용납받을 수 없는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처럼 철저히 억압될 수밖에 없는 로르카 자신의 이야기가 숨어있다. 희곡은 함도윤 안무가의 무용 작품으로 각색되었고, 안무가는 ‘여성을 위하지 않는’ 작가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고 원작의 재해석과 무용 창작자로서의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 작품이 되었다.





안무가는 '억압‘과 '억제’ 속의 등장인물들을 설정하고 장면과 내용을 조립하면서 이 작품의 메시지가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함을 알린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여자 무용수 중심의 뮤지컬 발레가 되었고, 흑·적·녹에 대한 색채감을 구사한다. 베르나르다(김순정, 성신여대 무용과 교수)는 둘째 남편 안토니오(용기)의 장례식 직후, 8년 상을 명목으로 미혼의 다섯 딸 앙구스티아스(39세, 김민수), 마그달레나(30세, 김채원), 아멜리아(27세, 최정인), 마르티리오(24세, 박미주), 아델라(20세, 주예진)에게 집 밖 외출을 금지한다.
등장인물 구성은 남편 안토니오(용기), 여성 중심의 베르나르다의 가족들, 하녀들(정종웅, 김평화, 함도윤), 젊은 남자 페페(허서명)이다. 이 작품에서 '집'은 전통적으로 폐쇄된 사회 속의 베르나르다 알바의 권력이 미치는 공간이어서 수녀원이나 지옥으로 여겨진다. 작품은 다섯 딸을 비롯한 여러 인간의 감정과 욕망의 충돌을 일구면서 자유와 꿈에 대한 본능을 옹호한다. 베르나르다는 딸들의 성적 욕망을 억지로 거세시키고 남성들과의 교제 기회조차 주지 않고 순결을 강요한다. 첫딸과 막내 외에는 외부와의 소통이 차단된다.
움직임은 극적 구성의 짜임새로 직조화 된다. 장녀 앙구스티아스는 부유한 유산 상속자가 되어 스물다섯 살의 동네 최고의 남자 페페의 청혼을 받고 결혼을 준비한다. 막내 아델라는 둘의 결혼에 반발한다. 상남자 페페는 자유와 독립을 갈망하면서 정열적인 사랑의 힘을 대변하는 아델라와 밀회를 갖기도 하면서 다섯 명의 딸의 ‘욕망의 아이콘’이 된다. 베르나르다의 남편 안토니오는 여성에 대한 가학적 권력 남용을 보여준다. 베르나르다의 어머니인 치매 노인 마리아 호세파(서보권)는 자유적 ‘광기’로 삶의 진리를 보여준다.
다양한 등장인물의 성격 배치와 촘촘한 음악적 구성은 작품을 신비롭게 한다. 해설자 역의 하녀 폰시아(임태웅)가 통제 속에 있는 집과 바깥세상의 삶을 연결하는 인물로서 동민들의 세세한 비밀과 집안일을 밝히며 갈등을 키우고 조장한다. 폰시아는 자매 간의 사랑싸움을 알아채고 아델라와 베르나르다에게 경고한다. 베르나르다는 조용히 서둘러 첫째 딸의 결혼을 준비한다. 자매 사이의 페페 쟁탈전이 벌어지자, 베르나르드는 페페 경고용 총을 들고 나가고, 총소리가 들리자, 페페가 죽었다고 생각한 아델라는 목숨을 끊는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움직임의 감정 전달과 음악성이 두드러진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1장. 프롤로그(연회), 2장. 장례식, 3장. 물방울, 4장. 열대야, 5장. 침묵, 6장. 호세파의 꿈, 7장. 아델라의 욕망, 8장. 방아쇠, 9장. 깨진 꿈, 10장. 에필로그(베르나르다 알바의 노래)에 걸친 10개의 장(場)으로 가지런히 구성된다. 임태웅의 곡과 소리는 장면마다 감정의 살을 붙이고 전달한다. 둘라밤의 ‘우짜이’로 베르나르다 부부가 탄생한다. ‘액맥이 타령’이 장례식을, ‘별 헤는 밤’은 페페와 아델라의 ‘사랑의 흐름’을 대변한다.




이 작품은 여성과 시골을 바탕으로 깐 ‘가부장제’, ‘꿈’, ‘방어기제’를 가동한다. 어미는 죽음 앞에서도 "베르나르다 알바의 막내딸은 처녀로 죽었다."라는 입장이다. 사회적 위치가 불안정했던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아 자유정신을 고양하고 병든 사회를 고발한다. 어미는 폭력과 억압으로 다섯 딸은 자유에 대한 상징이 된다. 희곡 속에 남자는 없지만, 베르나르다의 억압과 딸들이 방어기제로 작동되고, 페페는 갈등의 촉진제로서 자유와 꿈의 상징이며, 관습과 제도에 반항한 아델라를 통해 꿈꾸는 자유가 사라진 비극이 시각화된다.
‘집’의 구조를 통한 이미지 구축, 외부와 연결하는 방범창 같은 ‘창문’에 이중적인 의미가 담긴다. 검정이 주조인 분위기 가운데에서도 빨강과 초록이 들어선다. 비상 상황, 경고, 정지 의미의 붉은 색은 어미가 다섯 딸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조작된 평화를, 딸들에게는 어미에 대한 투쟁의 경고를 뜻한다. 아델라가 소유의 초록 드레스는 어미에 대한 반기이자 자유와 생명의 색이며, 내내 검붉었던 무대 위 희망의 색으로 활용된다. 하녀들 역시 남자 무용수로 캐스팅되어 움직임의 다채로움이 전개되었다.
함도윤 안무의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국고·지자체의 도움 없이 제작된 동시대 발레의 수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아함아트프로젝트를 가동하고 동시대 관객들이 선호하는 주제로 스타일과 표현 방식에 있어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예술가들과의 작업을 통해 바람직한 창작자의 모습을 견지했다. 그의 창작 태도는 작품의 주제와 닮았다. 함도윤은 견고하게 고정된 발레 시스템을 존중하면서도 자유 창작 발레를 지향하며 자신의 주장을 담는다.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은 창의성을 존중하며 만능 예술가 정신을 보여준 걸작이었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아함아트프로젝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