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신작 연대기(54)] 이지민(현대무용가, C2Dance 정단원), 미학적 상부구조를 탐구하는 안무가

이지민은 전주 중앙중 시절, 동아리 활동으로 처음으로 춤을 접했다. 친구들과 몸을 움직이고 음악에 맞춰 춤추는 것이 재미있어서 춤을 시작했지만, 무대에서 느끼는 에너지와 감정이 새로운 감각을 열어주었다. 이지민은 손재주가 좋아서 한때 그림 전공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전주 유일여고 학예회 무대를 준비하면서 ‘무용’ 예술을 진지하게 바라보게 되었다. 친구들이 춤추는 모습을 보고, 이지민은 감정을 전하고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예술’로서의 춤을 느낀다. 그런 감정들이 지금까지 그녀가 무용을 계속해 오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지민은 중앙대 무용학과(학사), 동 교육대학원(석사)·실기대학원(박사)에 걸친 정통 무용 교육 과정을 마쳤다.
이지민은 스승 복이 많다. 여고 시절, 김남선 선생은 무대의 공간미와 매력을 일깨웠고, "무용은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왜 하는지가 더 중요하다"라는 가르침을 주었다. 창작의 중요한 기준을 삼고 중앙대에 진학하면서 최상철 교수를 만나 진지하고 깊게 무용을 바라보게 된다. 최 교수는 이지민에게 다양한 질문과 자유로운 시선으로 주어진 명제를 해석하고 확장하도록 지도했다. 그러한 가르침 덕분에 예술을 대하는 태도, 감각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그 과정은 현재 그녀가 오브제를 바라보거나 이미지를 해석할 때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이지민에게 스승이란 시선을 바꿔주는 사람, 생각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게 만들어 주는 존재로 인식된다.
이지민의 대표 안무·출연작 인상은 다음과 같다. ①'모피를 입은 난 여자'(2020, 개인 발표회); 사회적 이미지와 젠더 감각을 일깨운 실험 작업. 가장 솔직한 안무 시기에 감각적·도전적인 작업으로 여성성과 젠더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 ②'꼴통품–거기 있는 줄도 몰랐던 너'; 안무가로서의 시선과 태도를 확립한 작품, 타인의 시선과 나의 감정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 안무 전환점이 됨. ⓷'Bloody Moon'; 날 것의 감정과 억제되지 않은 몸의 움직임을 표현함. ‘본능’이 어떻게 움직임이 되는지를 체험. ⓸'Not To Be 말까? –존재와 부재 사이의 갈등'(2024, 출연, 최상철 안무); ‘보이지 않는 감정’을 움직임으로 변환함 ⓹'사라지는 순간, 남겨지는 흔적'; 오브제, 조명, 감각이 얽힌 복합적인 시도를 통해 무용이 ‘흔적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함. 기술과 인간 정체성의 경계를 탐구함.






이지민은 사물이나 공간, 상황을 마주할 때 단순히 ‘보는 것’을 넘어서, "이건 어떤 감정을 품고 있을까?", "이것을 통해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를 즐겨 상상한다. 그 과정에서 오브제는 감정의 껍질, 혹은 감각을 자극하는 매개체가 되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지민은 오브제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고, 의미로 확장하는 상상력이 탁월하다. 이지민은 어떤 대상이든 그것에 감정을 부여하고, 관객이나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는 통로로 잘 바꾼다. 그녀는 무엇인가를 다르게 보고, 새롭게 연결하기를 즐기고 잘 해낸다. 그녀의 대표 안무작은 섬세하게 스며드는 질문 같은 '사라지는 순간, 남겨지는 흔적'과 감정을 끝까지 밀어붙였던 뜨거운 경험의 'Bloody Moon'이다.
'사라지는 순간, 남겨지는 흔적'; 오브제와 감정, 공간의 관계에 처음으로 깊이 몰입한 작품이다. 기술과 인간, 감정과 정체성 사이에서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흘려보내는지를 몸으로 탐색하면서, 무대 위의 오브제들과 조명, 움직임이 서로 주고받듯 유기적으로 반응하는 순간들에 집중한다. 이지민은 자신이 던진 움직임이 조명을 타고 공간으로 번지고, 오브제에 부딪혀 다른 감각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통해 무용은 ‘감각을 남기는 예술’임을 실감한다. 관객마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 흔적을 읽어내고, 느끼고, 때로는 자기 감정을 투영하는 걸 보면서, 안무가는 말이 없이도 사람과 깊이 연결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은 작업이었다.
'Bloody Moon'; 안무가 자신에 내재한 강렬한 원초적 에너지를 끌어올린 작품이다. 무대 이미지는 어둡고 강렬했지만, 그 안에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두려움, 갈망, 충동 같은 날것의 감정이 흐른다. 이지민은 이 작업을 통해 신체가 감정을 말하는 방식을 더 깊이 이해하고, 의도된 연기보다 즉흥적인 움직임, 계산된 구성보다 솔직한 몸의 반응이 얼마나 큰 힘을 소지하는지를 체감한다. 어떤 움직임은 설명할 수 없지만 분명히 감정을 전달하고, 어떤 장면은 자신도 모르게 기억을 꺼내게 한다. 'Bloody Moon'은 신체와 감정 사이의 거리를 없애준 경험, 표현자, 감정의 통로로서의 ‘몸’을 다시 만난 순간이 된다.
두 작품은 방향도 결도 다르지만, 섬세한 감각의 층위나 본능적인 폭발력을 통해 지금의 이지민을 구성하는 굉장히 중요한 조각이 된다. 이지민은 이 작품들을 ‘아낀다’는 말보다, ‘저를 만든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이지민은 지금도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이 어떤 예술을 하는지보다 '세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가'에 더 많은 관심을 갖는다. 이지민은 결과물보다 관계와 과정, 감각과 해석에 더 관심이 많다. "어떻게 감각하고, 무엇을 느끼고,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을까?"에 집중하는 편이다. 이지민은 뚜렷한 감정 표현이나 강한 메시지 전달을 우회하여, 그 감정이 만들어지는 과정,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는 그 '틈'에 매력을 느낀다.






이지민을 특징짓는 또 하나는 '오브제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이지민은 오브제를 단순한 도구나 장치로 쓰기보다, 감정과 기억을 담아내는 감각의 주체로 대한다. 몸과 오브제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하나의 흐름이 되는 순간들을 만들고 싶어 한다. 무대 위에서도 “답을 말하는 사람”보다 “같이 질문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정해진 의미를 전달하기보다는, 관객이 스스로 감각하고 해석할 수 있도록 공간과 움직임을 구성한다. 그것이 이지민만의 방식이고, 그 점이 다른 예술가들과 결이 다르고, 감정의 밀도도 다른 작업으로 이어지는 이유인 것 같다. 이지민은 관객과 감정을 공유하고, 궁금증에 대한 반응을 보고 싶어 한다.
이지민은 앞으로 무용 장르를 더욱 열린 방식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그녀는 단순히 무대를 채우는 동작을 넘어, 관객이 함께 느끼고 해석할 수 있는 감각의 구조를 지속적으로 만들어가고자 한다. 기술, 조명, 오브제와 같은 움직이지 않는 요소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흐름을 깊이 탐구하면서, 관객이 '보는 것'에서 '참여하는 것'으로 넘어갈 수 있는 새로운 공연 형식도 시도하고자 한다. 그녀의 목표는 언젠가는 "이건 무용이야?"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며, 형식보다 감각이 앞서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다. 이지민은 이런 과정을 통해 예술과 사람을 이어주는 길을 찾고 있다고 생각한다. 논리가 반듯한 무용 철학자 이지민의 꿈이 만개하기를 기원한다.
장석용(Chang Seok-Yong)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