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탓인지 피부가 칙칙하다. 염색하던 머리는 푸딩같은 상태다. 그리고 왠지 몸이 무겁다. 미용실이나 헬스클럽에 다니는 것을 자제하고 집에 틀어박혀 생활하는 가운데 그런 달갑지 않은 변화를 깨달아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할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겉모양이 전부인 로스앤젤레스에서 격리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로스앤젤레스타임스 기자는 오히려 외모를 가꾸는 것에 대한 강박관념에서 해방돼 홀가분한 기분이다.
■ 격리 생활 중 이중 턱 된 모습 왠지 생소
산책을 나간 어느 날 집 창문에 비친 무엇인가에 문득 눈을 멈췄다. 내 모습이었다. 확신한 건 아니지만, 3월 초와 비교해서 왠지 좀 자신의 체중이 늘고 있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온라인 회의를 할 때 노트북PC 밑에 놓는 책들의 책 수가 며칠마다 늘어나고 있다. 결국 화상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과 대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놀랐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렇지도 않다. 두 달째 나는 재택근무를 했고 소셜 디스턴싱(사회적 거리 두기)에 대해서는 이미 전문가의 경지에 이르렀다. 삶의 모든 것, 일상의 습관 모두가 변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내 몸이 그대로 변해 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아무런 놀라움이 없다. 나쁜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
누구나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3월, 자택 격리로 체중이 늘어나는 것을 지칭하는 ‘Quarantine 15’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감염증이 재유행할 것을 경고하는 ‘COVID-20’이라는 인터넷 ‘밈’은 문고리에 달린 세균보다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스트레스와 식사에 잘 대처하는 법, 집에서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훈련방법에 대한 기사가 꽉 차 있다. 요란한 마케팅 메일이 수신함을 눈 깜짝할 사이에 메운다. 그리고 이전에 시험해 본 적이 있는 다이어트 업자가(웰니스 프로그램) 지금 재가입하면 요금이 반값으로 할인된다고 알려오는데, 나는 늦지 않았다. 정말 고마워.
■ 몸무게가 는다는 것은 먹을 게 많다는 반증
천천히, 부드럽게 스트레스를 푸는 프로그램을 유튜브에서 검색하면서 나는 집에서 요가를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얼마나 먹었는가”라든지 “요즘 같은 것만 몇 번이나 만들고 있는 기분이 든다”라든지, 그러한 자신을 감아 묶는 사슬은 깨끗이 매우 기쁘게 버려졌다.
내 수제 초콜릿 칩 바나나브레드 레시피는 거의 완벽하다. 이제 자택 격리 빵 굽기 모임에서도 자랑이 높은 회원이다. 포도주도 거의 매일 밤 자유롭게 즐긴다. 점심 메뉴는 매일 대개 똑같다. 수제로 만든 두꺼운 토스트 2장에 버터를 듬뿍 바른다. 그 빵의 양면에 계란프라이를 얹어 튀겨 먹는 것이다. 마치 한가로운 시골 땅에서 여름을 보내고 있는 프랑스의 군주 같은 기분이 든다.
최근 체중계에는 올라가고 있지 않지만 조금 체중이 증가한 것은 확실할 것이다. 그 사실에 굉장히 설렌다. 사실 나는 너무 기쁘다. 체중이 늘어서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새 바지를 사야 하는 것 정도로 몸무게에 대해서는 감사에 흐느끼고 싶을 정도다.
나는 행운이다. 체중이 늘어난다는 것은 먹을 것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남편도 나도 일이 잘 되고 있다. 집 근처에는 식료품점이 있어 필요한 것 외에도 약간은 덧붙여서 좋아하는 것을 함께 살 수 있다.
아직까지 우리는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부모님도, 시부모도, 사촌들도, 삼촌도, 이모도 잘 계시다. 몆주 전 락 다운으로 96세 되던 할머니를 방문하지 못하게 됐지만, 그녀 역시 건강을 지키고 있을 뿐 아니라 끊임없이 브리지 게임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나는 무사하고 건강하다. 작은 아파트에 남편과 작은 애완견과 함께 살고 있다. 이런 때를 맞은 것이 정말 기적처럼 느껴진다.
■단 기간 격리로는 갑자기 비만이 되지 않는다
시간 감각도 식생활도 구질구질하기 짝이 없는 양상을 띠게 되었다. 마치 크리스마스와 새해 사이의 나날처럼 말이다. 누구나 인생 최고의 스트레스로 지칠 대로 지친 것이다. 좀 가볍게 먹는 것도 좋지 않을까. 우리 모두는 조금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이럴 때는 마음 놓을 만한 것을 먹어도 좋지 않을까. 그러나 몸을 지키는 지방 갑옷이 다소 여분으로 인해 건강이 영원히 해칠 수 있는 것일까. 마음을 먹고 몇몇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짧은 노(No)라는 답이 되돌아왔다.
비만은 코로나19 환자에게는 나쁜 결과를 줄 수 있는 요인이 될 수 있지만, 고작 몇 달 사이에 간식 횟수가 늘어난 정도일 뿐 건강 체중에서 비만에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파름 근교에 사는 영양사인 휘트니 카탈라노는 “락 다운 중에 늘어난 체중 등이 많은 사람이 이 상황에서 살아남는 것에 비하면 중요하거나 주목할 일, 우려할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일상생활이 돌아오면 체중계의 눈금도 원래대로 돌아오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집안에 틀어박혀 별로 운동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평소보다 많이 먹고, 넷플릭스를 보며 소파에 누워 시간을 보낸다. 왠지 엄청나게 체중이 불어난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결국 스트레스와 생활습관의 변화에서 오는 사소한 체중 증가일 뿐이다.
자택 격리가 원인인 체중증가에 대해 과도한 다이어트가 필요 없다는 것은 데이터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인기 있는 네트워크 대응 체중계 제조업체들에 따르면 45만 명의 미국인 사용자 중 외출금지령이 발령된 전후 체중을 잰 사람들의 체중 증가 평균치는 0.21파운드(약 95g)도 되지 않았다고 한다. 만약 자신의 건강에 대해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단순히 칼로리를 따지는 것보다 그 걱정을 더 건설적인 것으로 돌리게 하면 된다.
뉴욕시를 거점으로 하는 영양사 사만다 카세티는 건강한 자택 격리 습관을 주제로 한 논설에서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그 내용은 “무리 없이 자신의 기분이 좋다고 느끼도록 몸을 움직이는 것. 충분한 수면을 하는 것. 심호흡을 하고 명상하는 것. 긍정적인 혼잣말을 하는 것, 몸 상태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것”이라며 “과일과 야채도 먹자. 통조림이나 냉동식품이라도 상관없다”고 조언하고 있다.
만약 마카로니 치즈를 만들 재료밖에 없거나 아니면 다른 재료를 만들 생각이 없는 밤이 있어도 그것으로 문제없다. 냉동 브로콜리를 봉지 반 정도 넣어도 되고 안 넣어도 된다. 카세티는 “불과 몇 파운드 정도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체중 자체에 대한 걱정도 버리라. 자신의 건강에 대해 더 자상한 마음으로 생각을 가져가는 것”이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청바지가 좀 껴도 폭발적으로 살이 찐 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다.
■ ‘미의 도시’ LA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는 법
소셜 디스턴싱이 끝나도 내 자신에 대한 응석은 끝날 것 같지 않다. 레스토랑은 아마 손님 수를 제한해야 할 것이고 접객직원은 마스크를 착용할 것이다. 입점 시에는 체온을 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것은 모두 나에게는 전혀 문제가 없다. 우리가 훌륭한 거리의 바와 레스토랑을 우리 손으로 부활시키기 위해 나는 지금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 몇 주 동안 내 얼국과 허리를 통통하게 만든 테이크 아웃 메뉴에 들인 돈과는 별개로 말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이미 비즈니스용 스웨트 팬츠를 하나 구입했다. 직장 복귀 시 몸가짐을 단계적으로 그리고 완만하게 다듬기 위해서다. 옷장 안에서 햇빛을 보지 않고 꽉 찬 벨트를 꺼내 말리부까지 멋진 드라이브를 즐겼다면 퍼시픽 코스트 하이웨이 연변의 바다에 차창으로 벨트를 툭 던져버려야 할지 신중히 검토 중이다. 솔직히 내 생김새에 대해 이것저것 배려하는 것에서 조금 벗어나 있는 것이 기쁘다.
여기는 로스앤젤레스다. 적어도 팬데믹과 싸워야 할 때 말고는 외모가 전부인 것이다. 그렇다. 내 눈썹을 다듬어 주는 멋진 아이브로우리스트와는 이제 퍼스트 네임으로 서로 부르는 사이다. 성인이 되고 나서,지금이 가장 젤 딥 매니큐어와 페디큐어가 필요한 상태다. 피부를 유지하기 위한 레이저 페이셜을 해주는 클리닉에도 등록되어 있다. 코로나19가 덮치기 전에는 두 개의 헬스클럽 멤버였다.
‘어느 정도 외모를 유지해야 한다’라는 압박감이 항상 붙어있는 상태를 벗어나는 것은 수개월이면 충분하다. 겉모습이 변하는 것은 세상의 끝 같은 것이 아니었다. 목숨이 붙어있는 한 왠지 멋진 일로도 여겨진다. 헬스클럽이나 헬스클럽이 문을 연다면 사람들은 매일 새해 휴가를 마치고 첫 월요일처럼 몰려 들 것이다. 나도 헬스장에 다시 다니기 시작할 것이다. 하지만 빵을 굽는 일도 계속할 것 같다. 여하튼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까.
언젠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가깝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빠를 것도 없는 미래에 우리 대부분이 충혈된 눈을 하고, 소모적인 머리 손질도 하지 않고, 머리 색깔도 빠지고, 몸가짐도 허술한 상태로 거리를 비칠비칠하게 걷게 될 것이다.
나는 평소보다 조금 피부색이 칙칙하고 약간 통통해진 것 같다. 하지만 다음에 바다로 나갈 때 나는 파도를 향해 곧장 달려 들어갈 것이다. 비키니 끈이 평소보다 조금 더 뻣뻣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때 내 머릿속에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생각일 것이다. “여기 있을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가?”
김경수 글로벌이코노믹 편집위원 ggs077@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