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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산업이 연 '新냉전'...4월 한미 정상회담이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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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산업이 연 '新냉전'...4월 한미 정상회담이 중요한 이유

미국과 중국, 반도체와 AI 기술 등으로 경쟁하며 새로운 냉전 시대
시진핑과 푸틴 정상회담은 새로운 냉전 시대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
반도체 핵심 산업인 우리나라도 냉전 시대에 맞는 생존법 고민해야

이교관 CNBC KOREA 대기자가 쓴 이 글은 지난 3월24일 발간된 주간조선 2751호에 '2차 냉전의 개막 한국의 선택'이라는 제하의 커버스토리로 게재됐다. [편집자 주]

최근 전 세계가 미국과 중국을 각각 대표로 하는 자유주의와 권위주의 진영 간 ‘2차 냉전’으로 급속히 돌입하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 등 첨단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 봉쇄를 위한 동맹들과의 연합을 구축하는 ‘재세계화(re-globalization)’에 착수하자마자 중·러가 반미 연합으로 반격에 나섰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2차 냉전의 본격 개막으로 이어진 것이다.
재세계화가 미국의 외교무대에서 핵심 의제로 등장한 것은 1월13일 바이든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 간 워싱턴 미․일 정상회담에서였다. 두 사람은 “경제적 강압과 비시장 정책들과 관행들 같은 위협들에 맞서”라며 중국을 분명히 겨냥한 뒤 “생각이 맞는 파트너들 간에 반도체 등 결정적이고 부상하는 기술들의 보호와 증진을 위한 공급망을 구축한다”고 합의했다.

미국이 재세계화에 나선 것은 중국의 기술 전제주의(tech-autocracy)가 현실화하면 글로벌 자유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공산당 1당 지배 체제의 중국이 반도체와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등 주요 첨단 기술 패권을 장악할 경우 전 세계가 중국의 통제와 감시가 가능한 ‘디지털 비자유주의화(非自由主義化)’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차 냉전은 7년 전 중국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2016년 반도체를 핵심으로 하는 주요 첨단 기술들의 연구·개발 요새들을 총공격하라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촉구가 바로 개전 선언이었던 것이다. 이 점에서 미국이 지난 1월 재세계화에 착수한 것은 중국에 의한 개전에 맞서 7년 만에 비로소 응전에 나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 응전에 7년이 걸린 것인가. 미국은 당초 시진핑의 총공격 촉구를 반도체 등 첨단 기술 산업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을 제고하기 위한 것으로 봤다. 그러다 미국은 뒤늦게 그의 목표가 첨단 산업들을 중국식으로 재구축(remaking)하는 것임을 간파했다. 그래서 미국이 작년에 만든 칩스법(반도체와 과학법)을 앞세워 재세계화를 올해에서야 추진하게 된 것이다.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23일 일본 도쿄의 아카사카궁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양자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23일 일본 도쿄의 아카사카궁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양자 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AP/뉴시스


중국이 주요 첨단 기술 산업들의 모든 시스템을 재구축하려는 첫 번째 목적은 안보상의 우려 해소에 있다. 중국은 미국 등 국외에서 디자인되고 생산된 반도체 칩 등에 중국의 안보에 위해가 되는 기능이나 부품이 내장되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경계한다. 그래서 중국은 국외 제품을 군사적 용도로 사용할 경우 안보가 위기에 처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두 번째 목적이다. 그것은 중국이 주요 첨단 기술의 개발, 디자인, 그리고 제조 과정 모두 지배함으로써 전체주의 체제를 확산시켜 공산당 1당 체제의 궁극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데 있다. 미국이 지난 1월 재세계화에 전격 착수한 것은 중국이 첨단 기술 패권을 통한 기술 전제주의 추구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더 늦출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만큼 미국은 중국이 첨단 기술들, 특히 반도체에서 추격 속도가 빠르다는 것에 우려하고 있다. 미 중국 전문가 라이언 하스는 ‘더 강한 국가(Stronger)’에서 2019년 중국 통신장비 기업 화웨이가 미국 부품 하나 안 쓴 5G 제품을 생산한 것을 주목한다. 이는 5G의 기술 대부분이 반도체인 만큼 중국의 반도체 기술이 상당한 궤도에 올랐다는 것을 의미한다.

AI 기술의 경우 미국의 우려가 반도체보다 더 크다. 시진핑이 10년 전 무기 체계의 지능화(intelligentization)와 자율성(autonomy)을 확보할 것을 촉구한 뒤 중국군이 AI 무기 개발에 매진해 온 결과 중국의 AI 기술이 미국을 추월했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에릭 슈미트 전 구글 CEO는 “AI 부문의 수퍼파워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일 수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대만 해협에서 미·중 군사 충돌이 발발할 경우 승패는 AI 무기의 우위 여하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래서 시진핑이 10년 전에 AI 무기 기술 개발을 촉구한 것도 미군보다 우위의 AI 무기를 보유해야만 미 항모와 전투기 등의 대만 해협 진입을 저지해 대만 복속에 성공할 수 있다고 예상했기 때문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반도체에서 가장 중요한 비메모리, 즉 로직(logic) 부문에서 중국은 아직 첨단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는 로직 반도체가 미국 실리콘벨리의 칩 설계 및 디자인 기업들과의 긴밀한 협력이 요구되는 분야인데도 중국이 미국 주도의 글로벌 반도체 시스템을 완전히 재구축한다는 목표를 추진함에 따라 실리콘벨리와 거리를 둬 왔기 때문이다.

그 결과 중국에서 최대 파운드리 반도체 기업인 SMIC도 고전하고 있다. 실리콘벨리 기업들과의 협력 부재 외에도 중 체제 특성상 공산당과 정부의 경영 간섭도 파운드리 기업들의 부실한 성과를 낳게 하는 중요 요인의 하나로 거론된다. 현재 중국이 세계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큰 반도체 분야는 YMTC가 주도하는 낸드 메모리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높다.

그럼에도 미국은 안심 못한다. 중국의 세계 반도체 제조 비중이 2020년대 초 15%에서 2030년에는 24%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볼륨에서만큼은 대만과 한국에 앞지르는 것이다. 시장과 제조 등 반도체 산업의 더 많은 것이 중국으로 움직이면 외국 기업에 기술 이전을 요구할 수 있는 중국의 지렛대가 더 커진다는 것이 미국의 우려다.

더 큰 우려는 중국이 첨단 기술 산업들을 중국식으로 재구축함으로써 중국몽(中國夢)을 구현하기 위해 자국 반도체 기업들의 수익 고저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SMIC와 YMTC의 우선순위는 이익 내기와 기업 공개가 아니라 중국만의 칩들을 만들어내는 데 두고 있다고 미 터프츠대 크리스 밀러는 ‘칩 전쟁(Chip War)’에서 말한다.

미국이 재세계화에 서둘러 착수한 데는 이들 우려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따라서 중국은 이제 주요 반도체 첨단 기술을 확보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재세계화는 중국이 보유하지 못한 반도체 기술의 대중 이전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최근 미국이 칩 제조 장비의 대중 수출을 제한하는 규제를 내놓자 장비 강국인 일본과 네덜란드는 곧 바로 동참을 결정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반도체 공장들도 재세계화의 화살을 피하기 어렵다. 미 상무부 산업안보 담당 차관인 앨런 에스테베는 2월23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경제안보포럼에 참석해 중국에서 만드는 반도체 제품에 적용되는 기술 수준까지도 제한을 두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낮은 기술의 칩을 중국에서 만드는 것만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이 중국 공장들에서 높은 기술 수준의 칩을 만들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 규제를 해 왔다. 첨단 제조 장비를 중국 공장에 도입하는 것을 막아 온 것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한대 당 가격이 2천억 원이 넘는 네덜란드산 극자외선 광학장비인 EUV를 중국 공장에 도입하려다 미국의 불허로 무위에 그쳤다.

지금은 ‘반도체 결정론’의 시대다. 수퍼 컴퓨터, 우주선, AI 무기, 비행기, 자동차 등 모든 주요 문명의 이기들은 반도체 없이는 못 만든다. 그런 만큼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 기술들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원천 봉쇄하는 재세계화는 중국에 완전한 승리(a full victory)를 거두어 자유주의 질서를 지키겠다는 미국의 대전략으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지난 2월28일 미국은 반도체 제조의 중심국 지위를 회복하기 위한 칩스법의 시행 방안을 발표했다. 미국은 반도체 공장을 미국으로 이전하거나 새로 짓는 기업들에게 390억 달러(50조원)의 보조금을 지원한다. 하지만 보조금을 받는 기업들에 대한 기술 공개와 이익 공유, 시설 접근권 요구는 동맹국 기업들의 대미 투자에 적잖은 부담이 될 가능성이 크다.

칩스법은 두 개의 큰 의미가 있다. 하나는 미국에 투자하는 국내외 반도체 기업들에 보조금을 준다는 점에서 ‘첨단 기술 뉴딜’이라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이 선진 동맹국들과 ‘비공식 경제 나토’ 같은 연합체와 각 기술 별 소자 연합(mini-lateral coalitions)을 구축함으로써 첨단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봉쇄하는 재세계화가 공식 개막됐다는 것이다.

칩스법은 미 주류 가치와 규범의 합인 ‘정치 질서(political order)’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2차 대전 후 30년간 높은 수준의 삶과 기회의 균등 보장을 목표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한 발전을 이끈 뉴딜 질서(New Deal Order)에 이어 그 후 50년간 투자와 교역의 자유를 통한 세계화를 주도한 신자유주의 질서(Neoliberal Order)가 종언을 고한 것이다.

사실 신자유주의 질서가 이룩한 세계화는 탈냉전 이후 20년간 미국에 금융 부문을 중심으로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제조업 중심으로 중국이 입은 수혜가 미국보다 더 컸다. 중국이 값싼 노동력과 세제 혜택 등으로 미국과 일본, 한국 등에서 반도체 등 첨단 부문 공장들을 유치함으로써 선진국들과의 기술 격차를 급속하게 줄이는 데 성공한 것이다.

중국이 기술 격차를 줄일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펀딩을 무기로 첨단 기술을 통째로 이전받아 온 데서 찾을 수 있다. 미국 기업들이 첨단 기술을 개발했으나 자금이 부족해 제품화에 어려움을 겪자 이들 기술을 중국에 넘기는 사례가 빈번했다. 이는 신자유주의 질서에 따라 미국 기업들이 중국으로 공장과 첨단 기술을 이전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 결과 중국은 2010년대 중반 주요 첨단 기술 분야를 자국 중심으로 재구축(remaking)함으로써 세계 패권을 차지하기 위한 목표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시진핑이 2016년 첨단 기술의 연구․개발 요새들에 대한 총공격을 촉구하고 2025년까지 첨단 기술 외국 의존도를 30% 이하로 낮춘다는 ‘Made in China 2025’라는 계획을 만든 데는 이 같은 배경이 있다.

이 같은 사실은 미국의 신자유주의 질서가 시진핑이 꾸어 온 ‘중국몽(中國夢)’의 요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과 동맹국들의 기업들이 누려온 중국으로의 공장과 기술 이전의 자유가 첨단 기술 패권을 확보해 디지털 감시와 통제 체제의 기술 전제주의(tech-autocracy)로 세계 지배를 꿈꾸는 위험한 중국을 탄생시킨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한 것이다.

칩스법으로 부상하는 미국의 새로운 정치 질서는 ‘재세계화 신뉴딜 질서(‘New’ New Deal Order)’라고 할 수 있다. 출범 후 양극화 해소를 통한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신뉴딜 질서를 추구해 온 바이든 행정부가 앞으로 반도체 산업에 대한 뉴딜식 지원을 AI와 양자 컴퓨팅 등으로 확대하면서 대중 기술 봉쇄를 위한 재세계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은 재세계화로 인해 반도체 산업 등에서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되자 지정학적 활로 모색에 온 힘을 쏟고 있다. 현재 2차 냉전의 주전선은 첨단 기술 패권 경쟁이다. 하지만 보다 본질적인 전선은 1차 냉전 때처럼 이념을 공유하는 진영 간 지정학적 경쟁이다. 이 점에서 중국이 권위주의 강국인 러시아와의 연대를 강화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최근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 주석은 칩스법의 시행 방안으로 중국 반도체 산업의 위기가 현실화하자 4월로 추진해 온 러시아 방문을 앞당겼다. 3월20일 모스크바를 찾은 것이다. 이에 바이든의 전략적 파트너로 선택된 기시다 총리도 3월21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젤렌스키와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러와 미·일 간 진영 대결의 본격적인 막이 올라간 것이다.

시진핑은 3월21일 푸틴과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발표한 도착 서면 연설을 통해 중․러가 연합해 미국에 맞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방러 직전 러시아 언론에 실린 기고문에서 세계가 미국과 서방의 쇠퇴와 혼란으로 위기라는 의미의‘백년의 대변국’의 시기에 있다고 한 뒤 미국을 겨냥해 “패권과 패도, 괴롭힘의 해악이 심각하다”고 비판했다.

권위주의 핵 강국들인 중․러의 정상들이 이처럼 강력한 반미 연합 체제를 구축하기로 한 것만큼 2차 냉전 체제의 개막을 상징하는 것은 찾기 어렵다. 2차 냉전이 미․중 간 첨단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전선에서 1970년대 초 미․중 데탕트가 이루어지기 전인 1차 냉전 중반 때의 구도와 같은 미국과 중․러 간 지정학적 경쟁이라는 전선으로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중․러의 반미 연합은 미국에 지정학적으로 커다란 도전일 수밖에 없다. 미국과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한 이후 고전 중인 러시아에 중국이 군사적 지원을 제공할 가능성과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러시아가 서유럽에 군사적 위협을 가하는 방식으로 지원할 가능성이 커질수록 미국으로서는 우크라이나와 대만 모두 방어하기가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3.21 시진핑과 푸틴 간 정상회담은 중․러에 대한 미국의 공세에 맞선 양국의 연합이 시급하다는 것에 대한 두 사람의 인식이 일치한 결과다. 푸틴은 2월20일 바이든의 키이우 전격 방문이 러시아군의 공세를 위축시키는 것을 막기 위한 차원에서, 시진핑은 미국의 재세계화로 인한 반도체 산업 위기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서로의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점에서 중국의 대러 군사적 지원과 중국의 대만 침공 시 러시아의 대중 우회 지원 모두 2차 냉전에서는 언제든 실현될 수 있는 시나리오들이다. 미국이 나토와 일본을 앞세워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늘리고 반도체 등 첨단 기술에 대한 중국의 접근 차단을 강화할 경우 중국과 러시아로서는 반미 연합 전선을 구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재세계화가 중국의 대만 침공 가능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미국의 재세계화로 인해 첨단 반도체 기술 확보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판단 아래 비메모리 반도체 부문의 최강자인 TSMC를 보유하고 있는 대만을 어떻게든 복속하는 것이 반도체 기술 패권을 차지할 수 있는 대안으로 여기는 것이다.

칩스법 시행 방안 공개, 제조 장비와 첨단 제품의 대중 수출 금지, 그리고 미국의 지재권과 기술 사용 금지 등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벌써 중국의 반도체 산업이 위기 국면에 몰리고 있다. 부품과 장비 부족으로 생산 중단에 들어간 반도체 공장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시진핑이 방러 시기를 한 달 앞당긴 것은 그만큼 이 상황을 위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 혼자 중․러의 연대에 따른 지정학적 압박을 이겨내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그래서 미국은 재세계화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러시아의 대중 지원을 차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미국이 일본과 나토를 참여시켜 중․러 두 강국 모두 봉쇄하는 ‘이중 봉쇄(dual containment)’가 중요하다고 미 브랜즈와 베클리는 ‘위험지대(Danger Zone)’에서 말한다.

바이든이 새해 첫 정상회담의 파트너로 기시다를 선택한 것은 이 때문이다. 기시다는 당연히 대중 봉쇄와 대러 봉쇄 두 전선의 선두에서 싸울 것을 다짐했다. 대중 봉쇄 참여의 경우 일본이 국방비를 GDP 대비 1%에서 2%로 올리고 미․일 군사력 통합운영을 위한 영구 공동 본부 설립과 함께 일본 내 모든 항구들의 유연한 사용 등을 약속한 데서 확인된다.

대러 봉쇄 참여와 관련해 기시다는 바이든과의 회담 후 젤렌스키를 2월 중 뉴욕에서 만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기시다는 젤렌스키와의 뉴욕 회동 대신 시진핑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다음 날인 3월21일 키이우를 전격 방문해 젤렌스키를 만났다. 이는 기시다가 바이든의 전략적 파트너로서 대중·러 봉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8월 워싱턴 백악관에서 칩스법에 서명한 후 박수를 받고 있다.  사진=AP/뉴시스이미지 확대보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22년 8월 워싱턴 백악관에서 칩스법에 서명한 후 박수를 받고 있다. 사진=AP/뉴시스


기시다가 대중·러 봉쇄에 이처럼 물불 안 가리듯 나서는 것은 바이든에게서 받은 ‘선물’이 크기 때문이다. 미국은 일본이 이중 봉쇄에 참여하기로 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두 가지 ‘선물’을 안겨주었다. 하나는 일본이 적국의 공격에 맞서 군사적 반격 능력을 자체적으로 제고하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전쟁할 수 있는 국가라는 꿈을 실현하게끔 도와주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첨단 반도체 기술을 제공함으로써 일본이 반도체 강국의 꿈을 다시 꿀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도요타와 소니 등 8개 대기업이 만든 반도체 기업 라피더스는 IBM의 기술 지원으로2나노 반도체를 2027년부터 생산할 예정이다. 미·일은 1월6일 산업부 장관 회담에서 차세대 반도체 개발과 함께 AI와 생명공학 부문 협력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

나토 또한 미국의 요청으로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등 대러 봉쇄를 보다 강화하면서 대중 봉쇄에 대한 서유럽 동맹들의 참여도 긴급하다는 의제를 점차 확산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 이목을 끄는 담론은 리즈 트러스 전 영국 총리가 중국이 전제적 자본주의 모델을 확산시키는 경로로 활용해 오는 일대일로(一帶一路)에 맞서 만들자고 제안한 ‘경제 나토’이다.

나토의 대중 봉쇄 동참 의제는 올해 초부터 미국에서부터 제기됐다. CSIS(국제전략문제연구소)는 지난 1월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하기 위한 나토의 역할이 요청된다고 밝혔다. 이는 나토가 북핵 위협 대응은 물론 중국의 대만 침공 위협 억제와 함께 중국의 기술 패권 저지를 위한 재세계화에도 참여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미국에서 커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세계는 이처럼 미국이 지난 1월 중순 재세계화라는 대전략을 내놓은 데 이어 구체 전략으로서 지난 2월 말 칩스법의 시행 방안을 발표하면서 자유주의와 권위주의 진영별 동맹 전략 재구축과 이에 따른 지정학적 대립에 따른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일본과 나토가 이중 봉쇄에 따라 각자 지역인 동아시아와 서유럽을 넘어 대러․대중 봉쇄에 참여하는 ‘교차 관여(cross engagement)’라는 새 지정학적 현상이 한몫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 ‘재세계화 냉전’의 주요 무대인 경제, 외교, 안보 모든 현장에서 보기 어렵다는 데 있다. 미국이 재세계화를 위해 공을 들여온 반도체 소자 연합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올해 초부터 반도체 연합이 미국, 대만, 일본간에 구축되고 있는 데 대한 한국의 우려가 제기되는 듯하자 마지못해 지난 2월26일 칩4 화상회의에 참여시켜준 것이 전부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적 자본주의 진영의 명운을 걸고 재세계화 냉전에 나섰다. 일본과 나토도 중·러에 의한 지정학적, 경제적 제재 위협을 무릅쓰고 참전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이 혈맹이라는 미국으로부터 참전 권유도 못 받고 있다. 이는 중국 시장을 우선시하면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서울에 대한 워싱턴의 불신이 깊다는 것을 의미한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 빠른 법이다. 4월 한․미 정상회담을 반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재세계화 합의를 넘어 로드맵까지 제시해야 한다. 대만 방어에 대한 군사적 지원을 약속하고 우크라이나 지원도 미국이 요구하는 방향으로 적극 제공해야 한다. 미국이 부족한 무기들을 생산해 공급하고 역내 비축 기지 역할까지도 맡겠다는 제안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만약 윤석열 정부가 재세계화에 적극 참여하지 않을 경우 칩4 등 미국 주도의 첨단 기술 별 소자 연합에서 배제돼 미국의 지원을 받지 못해 기술 혁신이 힘들어진다. 그런데도 정부의 인식은 아직 한가하다. 추경호 기재부 장관은 2월22일 칩4와 관련 질의에 “공급망 안정 등을 유관국과 협의하는 것은 필요하다”면서도 “동맹으로까지는 해석하지 않는다”고 했다.

재세계화와 이중 봉쇄에 거리를 둠으로써 자체 핵무장에 대한 묵인을 미국에게서 받지 못할 때도 큰 비극이 예상된다. 북한의 붕괴 시 중국이 핵탄두 관리 명분으로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막지 못해 제2의 분단 사태가 발발할 수 있다. 그 전에 대만 방어를 지원하지 않아 중국이 대만 복속에 성공할 경우엔 중국은 북한의 대남 침공을 지원하는 위기도 커진다.

일본에 의한 위기도 대비해야 한다. 미국의 재세계화와 이중 봉쇄에 앞장서는 일본의 속내가 21세기 대동아공영권 실현을 위한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다. 기시다가 미군이 역내에서 철수하면 패권은 일본이 차지한다는 아베의 위험한 욕망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하야시 외상이 일본 국회에서 독도 영유권 망언을 되풀이한 것도 주목해야 한다.

미·중 2차 냉전과 미·러 지정학적 경쟁이 ‘미·일·나토 대 중·러’라는 자유주의 진영 대 권위주의 진영 간 대결로 본격화하는 지금 중요한 것은 한국도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적 자본주의를 위한 전략적 역할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진핑이 모스크바로, 기시다가 키이우로 날아가는 시점에 윤대통령이 친일 외교 논란 해명에 골몰해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다.

따라서 윤대통령은 4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제시할 재세계화와 이중 봉쇄의 지원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빈손으로 만나면 한·미·일 3자 협력 구도에서 계속 겉돌게 될 것이다. 윤대통령은 3월16일 한·일 정상회담에서 제3자 변제 방안에 기시다가 성의를 안 보인 이유가 재세계화와 이중봉쇄 동참으로 바이든의 지지를 얻었다는 자신감 때문임을 알 필요가 있다.

더구나 고조되고 있는 북한의 핵 공격 위협에 맞서 전술핵 재배치와 자체 핵무장에 대한 미국의 묵인 등 한·미 간 높은 수준의 핵공유 체제 구축을 위해서는 4월 한·미 정상회담은 미국의 대중·러 전략을 지원하는 성과를 내야 한다. 재세계화에 대한 동참과 우크라이나 지원, 중국의 대만 침공 시 지원 등 바이든 행정부가 바라는 합의가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이교관 CNBC KOREA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