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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가자 전쟁보다 4.5배 많은 미국 총기 희생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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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가자 전쟁보다 4.5배 많은 미국 총기 희생자

미국 메인주 총기 난사 사건의 용의자 로버트 카드가 범행하 모습. 사진=글로벌이코노믹 자료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메인주 총기 난사 사건의 용의자 로버트 카드가 범행하 모습. 사진=글로벌이코노믹 자료

“오늘은 메인주의 ‘다크 데이(a dark day)’다.”

재닛 밀스 메인주 주지사는 26일(이하 현지 시간) 기자회견에서 영화 제목 같은 말을 남겼다. 22명의 희생자를 낸 전날 총기 난사 사건을 설명하면서 한 말이다.

미국에서는 올 들어 총 565건의 총기 사건이 발생했다. 사망자 수는 3만8000여 명에 이른다. 26일 현재 가자지구 전쟁의 희생자 수(8000여 명)의 4.5배가 넘는다.

사건이 일어난 곳은 미국에서 가장 한적한 마을 가운데 하나다. 인구 3만8500명의 메인주 루이스턴에서 6.5㎞ 떨어져 있다. 전체 인구 130만 명의 메인주는 미국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으로 알려졌었다.

그런 동네에서 단 몇 분 만에 1년에 벌어진 살인사건 희생자 수가 발생했다. 대체 누가, 왜 이런 일을 저질렀을까.

윌리엄 로스 메인주 경찰청장은 26일 용의자 로버트 카드(40)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고 밝혔다. 카드는 총 8건의 살인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전직 육군 총기교관 출신이다. 미 육군 대변인은 카드가 육군 예비역 중사라고 밝혔다. 2002년 12월 입대한 카드는 전투에 배치된 적이 없다.

그의 형수의 증언에 따르면 카드는 올여름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메인주 경찰은 밤새 지역 경찰관 및 연방수사국과 함께 그를 찾기 위해 수색 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26일 밤 현재 체포하지 못한 상태다.

비영리 연구 단체인 총기 폭력 아카이브(Gun Violence Archive)에 따르면, 카드가 저지른 이번 총기 살인 사건은 미국에서 올 들어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학살로 남게 됐다.

로스 경찰청장은 첫 번째 총격이 25일 저녁 7시쯤 볼링장에서 발생했다고 말했다. 첫 번째 희생자를 낸 지 12분 후 911에 인근 식당에서 총격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신고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청각장애인 희생자


식당에서 사망한 희생자들 가운데는 매주 수요일 밤 이곳에서 모임을 가져온 청각장애인 옥수수홀 선수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범인인 카드는 대형 사냥감 사냥에 사용할 수 있는 308구경 총을 사용했다. 그것이 카드가 지닌 유일한 무기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로스 경찰청장은 26일 아침까지도 희생자들 대부분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다며, 희생자들 상당수는 총격 현장에서 사망했으며 3명은 병원으로 이송된 후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희생자 수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존 알렉산더 병원장은 현재 8명이 센트럴 메인 메디컬 센터에 입원해 있으며, 이 중 3명은 위독한 상태라고 말했다.

카드의 형수인 케이티 카드는 범인이 지난여름 정신병원에 입원한 사실을 밝힌 후 그에게 자수할 것을 간청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26일 희생자들의 사연 일부를 소개했다. 70세의 재닛 랜다조는 그녀의 아들 브라이언 맥팔레인(41)이 새로운 운전면허증을 가지러 자신의 집에 들른 지 몇 시간 만에 살해됐다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무공해 메인주에서 자란 아들이 행복했고 털털한 성격이었다고 말했다. 트럭 운전사로 일하면서 낚시, 사냥, 보트 타기, 스노보드 타기, 골프 등 다양한 취미를 즐겼다고 전했다.

엘리자베스 실의 남편 조슈아 실(36)은 수어(手語) 통역사다. 그녀는 문자메시지에서 "이 악몽에서 깨어나기를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남편을 "우리 네 마리의 강아지들에게 세계 최고의 아빠"라고 묘사했다. 그들 부부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캠프 활동을 해왔다.

앨리샤 라찬스는 딸 아셀린이 살해당했는지 여부에 대해 경찰에 확인 중이다. 아셀린은 총기 난사가 벌어진 볼링장에 있었으나 아직 생사 여부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루이스턴에 사는 38세의 니콜 와이먼 아렐은 25일 밤 집 근처에서 절뚝거리며 걸어 나오는 사람들과 피를 흘리는 희생자들을 발견했다. 이 동네에 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처참한 광경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의회에 총기 규제 조치를 통과시킬 것을 다시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와 함께 공격용 무기와 고용량 탄창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고, 보편적 신원조사를 제정하고, 총기의 안전한 보관을 요구하며, 총기 제조업자에 대한 면책특권을 끝내기 위해 노력하자"고 호소했다.

재닛 밀스 메인 주지사는 "이 도시는 시민들과 마음의 평화를 위협하는 끔찍한 공격을 받아서는 안 된다. 어느 도시도 마찬가지다"라며 울먹였다.

미국에선 비폭력 저항운동을 이끌던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워싱턴 행진 60주년을 맞은 지난 8월 26일 한 백인 청년에 의해 3명의 흑인이 살해됐다. 그보다 사흘 전에는 은퇴한 경관에 의해 3명이 희생됐다.

전쟁보다 더 많은 피해자를 내고 있지만 미 의회는 총기 규제에 대한 어떤 법률도 제정하지 않고 있다. 총기류 판매로 떼돈을 벌고 있는 전미총기협회의 강력한 로비 때문이다.


성일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