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주력 제품인 맥북의 올해 판매량이 신통치 않은 데다, 믿었던 아이폰15마저도 최대 시장 중 하나인 중국에서 초기 성적이 신통치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타도 애플’을 외치는 경쟁사들의 신제품들이 애플의 턱 밑까지 쫓아오면서 애플은 당장의 부진과 경쟁사의 추격을 동시에 극복해야 하는 ‘진퇴양난’에 처하게 됐다.
10월 18일(이하 현지시간) 애플 전문 애널리스트 궈밍치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2023년 맥북 출하량은 전년 대비 30% 감소한 약 1700만대로 전망된다”라며 “신학기 쇼핑 시즌 이후 새로운 15인치 맥북에어에 대한 수요가 크게 감소해 올해 출하량 예측이 약 20% 이상 하향 조정됐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30일 시장조사업체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3분기 글로벌 PC 출하량이 소비자 및 기업 구매 둔화로 전년 동기 대비 9% 줄어든 가운데, 애플의 PC 판매량은 650만대로 전년 대비 18%나 감소했다. 이는 애플을 포함한 HP, 델, 레노버, 에이수스 등 상위 5대 브랜드 중 가장 큰 감소 폭이다.
올해 애플의 PC 제품들이 부진한 가장 큰 이유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그에 따른 소비심리 위축이다. 이러한 조짐은 연초부터 있었다. 시장조사기관 IDC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체 PC 시장 출하량이 평균 29% 줄어든 가운데, 애플은 이를 크게 상회하는 무려 40%의 출하량 감소율을 기록했다.
IDC는 “경기 침체 우려가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싼 애플의 PC 제품에 직격탄을 날렸다”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애플 전체 매출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아이폰도 부진한 모양새다. 블룸버그는 시장조사기관 GfK의 자료를 인용해 애플이 9월 22일 출시한 아이폰15 시리즈의 한 달간 중국 판매량이 전년 대비 6% 감소했다고 보도했다.
중국은 팀 쿡 애플 CEO가 각별히 챙길 정도로 애플에게 중요한 시장이다. 지난해 애플 매출의 18%가 중국에서 나왔다. 중국에서의 부진이 아이폰 전체 매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어 가볍게 볼 수 없다.
삼성을 비롯한 외산 휴대폰들이 중국에서 맥을 못 추는 와중에도 아이폰만큼은 매년 20% 안팎의 점유율로 중국 시장 1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번 아이폰15가 부진하면서 1위 자리도 화웨이에 내줬다. 화웨이 자체 칩을 탑재한 ‘메이트 60 프로’에 대한 애국 소비 심리와 중국 정부 기관의 ‘아이폰 금지령’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신상품들이 전작보다 크게 나아진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도 애플의 부진에 한몫한다. 대표적으로, 지난여름 선보인 맥북 에어 15인치 모델은 1년 전에 출시한 M2 칩을 그대로 탑재함으로써 화면만 커졌을 뿐 개선된 게 없다는 평을 들었다.
마찬가지로 아이폰15 프로 시리즈도 TSMC의 3나노 공정 기반 최신 ‘A17’ 칩을 탑재했지만, 전작 아이폰14 프로 시리즈 대비 압도적인 성능 향상 폭을 보이지 못했다. 또 전에 없던 발열 이슈까지 불거지면서 체면을 구겼다.
애플이 주춤한 사이 경쟁사들은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삼성의 ‘갤럭시 S24 울트라’를 비롯해 차세대 안드로이드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탑재될 예정인 퀄컴의 최신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스냅드래곤 8 Gen 3’는 최근 각종 벤치마크에서 애플의 A17 칩에 버금가는 성능을 기록하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여기에 퀄컴이 PC 시장을 노리고 공개한 ‘스냅드래곤 X 엘리트’ 역시 애플의 PC용 M2 칩을 넘어서는 성능을 보이면서 단번에 맥북 시리즈의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엔비디아와 AMD도 애플과 같은 ARM 기반 PC용 CPU를 내년부터 선보일 계획으로 애플에 도전장을 던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애플은 PC와 스마트폰 모두 경쟁사 대비 1~2세대 앞선 성능을 앞세워 고가 프리미엄 브랜드의 지위를 공고히 유지해 왔다. 하지만 프리미엄 브랜드 전략은 오히려 출하량 급감으로 이어졌고, 믿었던 성능마저 경쟁사에 따라잡히면서 기존의 전략을 그대로 고수하기 어려워졌다.
한편, 애플은 10월 30일 신제품 발표회를 통해 성능이 대폭 향상된 차세대 ‘M3’ 시리즈 칩을 탑재한 신형 맥북 프로와 아이맥을 공개했다. 다만, 이들 신제품이 경기 위축을 뚫고 애플의 4분기 출하량과 매출 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