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까지 토요타는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에 현저히 밀리고 있었다. 그러나 2023년이 저물어 가는 11월 말 현재 토요타와 머스크의 처지는 뒤바뀌었다. 전기차는 성장 동력을 잃고 비틀거리는 반면 하이브리드는 씽씽 고속 질주 중이다.
하지만 올해 들어 미국에서 전기차 판매의 성장 속도는 느려졌다. 반면 토요타와 렉서스의 하이브리드 차량은 새로운 제품들을 앞세워 인기를 회복했다.
아픈 만큼 성장
토요타는 20년 전부터 하이브리드에 주력해 왔다. 히트작도 심심찮게 내놓았다. 그러나 지난해 전기 자동차 판매가 65%나 늘어나며 하이브리드는 대세에서 밀려나는 것처럼 보였다.
일론 머스크는 "이제 하이브리드 자동차와 작별할 시간이다"라며 얄미운 트윗을 남겼다. 그러면서 “아픈 만큼 성장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그의 말은 적중했다. 다만 대상이 틀렸다. 하이브리드는 성장했고, 아픔은 머스크의 몫으로 돌아왔다.
전기차 열풍이 한창일 때만 해도 토요타의 하이브리드는 더 이상 테슬라의 경쟁자로 여겨지지 않았다. 일부 투자자들은 올해 초 하이브리드에 매달려 온 토요타 아키오 회장을 최고 경영자 자리에서 몰아내려 했다. 회장직까지 잃을 뻔했던 그에게 극적인 반전이 찾아왔다.
GM, 포드 같은 경쟁 회사들은 테슬라를 따라잡기 위해 속속 전기차 경쟁에 뛰어들었다. 토요타 회장은 조만간 전기차에 실망한 고객들이 하이브리드로 돌아올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의 판단이 옳다고 증명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몇 달 뒤, 포드와 GM은 전기차 생산 계획을 축소했다. 토요타 회장은 "사람들이 마침내 현실을 보기 시작했다"고 미소를 지었다.
토요타와 렉서스는 미국 내에서 하이브리드, 전기차 및 기타 기술을 포함한 26가지 전기화된 차량 옵션을 판매하고 있다. 이들 제품의 합계 판매량은 올해 첫 3분기 동안 20% 증가해 약 45만 5000대에 이른다.
테슬라는 미국에서의 납품 결과를 공개하지 않지만, 데이터 회사 모터 인텔리전스의 추정에 따르면 그 기간 동안 약 49만 3500대의 전기차를 판매했다. 이는 머스크가 일부 투자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익을 희생해 가면서 판매 성장을 촉진한 결과다. 테슬라의 이익은 3분기에 44% 감소했다.
테슬라의 가격 인하
조사에 따르면 테슬라의 구매자 중 8%가 토요타에서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테슬라의 판매 증가가 기술 혁신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가격 인하 때문이라는 점은 실망스럽다. 반면 토요타는 가격을 그대로 유지했고, 오히려 딜러들에게 가격 인상을 허용했다.
테슬라의 가격 인하로, 연방 및 주세 감면을 포함한 모델 3 세단의 가격은 캠리보다 더 저렴해졌다. 덕분에 테슬라는 캘리포니아에서 시장 점유율에서 토요타를 따라잡았다.
머스크는 지난달 "솔직히 말해서, 만약 테슬라 자동차가 토요타의 RAV4와 같은 가격이라면, 아무도 RAV4를 사지 않을 것이다"며 큰소리쳤다.
그는 오래전부터 하이브리드 차량을 경시해 왔다. 머스크는 “지속 가능한 길은 전기차로 가는 길뿐이다. 만약 당신이 '좋은 가솔린차'이자 '좋은 전기차'를 만들려고 하면 순수한 가솔린이나 전기차만큼 매력적이지 않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비자의 반응은 달라졌다. 힘을 얻은 토요타는 하이브리드에 대한 투자를 두 배로 늘렸다. 이달 캘리포니아 말리부에서 열린 행사에서 토요타는 내년 봄에 나올 새로운 캠리는 하이브리드로만 제공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하이브리드 차량도 초기에는 가격 문제를 겪었다. 2005년 토요타의 하이랜더 하이브리드는 스포츠 유틸리티 차량의 기본 버전보다 거의 1만 달러 정도 더 비쌌다. 고객들은 연료비 절감을 위해 그 정도의 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기술 발전으로 하이브리드와 일반 차량의 가격 격차는 점점 줄어들었다. 현재의 하이브리드 버전은 기본 버전보다 약 2500달러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토요타의 미국 책임자는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하이브리드의 승리를 확신하는 말투다.
성일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