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시간) 로이터는 다수의 업계 관계자와 시장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리야드(사우디라아비아의 수도)가 전기차 허브로 변모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지출했지만, 현실의 벽 및 극심한 경쟁에 직면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자산규모만 7000억 달러에 달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PIF)는 미국의 전기차 회사 루시드 모터스에 최소 100억 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대만 폭스콘과 손잡고 자체 전기차 브랜드인 시어(Ceer)모터스도 설립했다.
특히 PIF는 시어모터스를 통해 2025년부터 자체 브랜드 전기차를 출시하고, 2026년 15만 대에서 2030년까지 연간 50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한다는 목표도 세웠다.
하지만 현재 사우디의 유일한 전기차 조립 공장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3개월 동안 미국에서 공급받은 부품으로 약 800대의 차량을 재조립하는 데 그쳤다. 시어모터스의 자체 공장은 아직 삽조차 뜨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와 전문가들은 사우디 자동차 산업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현지 ‘제조 인프라 부족’을 꼽는다. 자동차 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고 유지하려면 차량용 도어부터 엔진 등 각종 부품을 현지에서 직접 공급할 수 있는 다수의 협력사도 함께 유치해야 하는데, 사우디는 자체 인프라 없이 해외 부품 수입에만 의존하려 한다는 것이다.
S&P 글로벌 모빌리티의 전문가 타티아나 흐리스토바는 “우리는 사우디가 목표로 세운 생산량을 믿지 않는다”라며 “그만한 현지 생산량을 달성하려면 수출도 그만큼 늘어나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회의적인 전망을 내놨다.
그는 이어 “기존 OEM 자동차 제조사가 사우디에 현지 공장을 세우도록 설득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시어모터스도 전기차의 핵심 부품을 BMW로부터 공급받을 뿐이다”라고 일축했다.
사우디가 전기차 산업과 함께 추진 중인 전기차용 배터리 공장 계획도 난항을 겪고 있다. 우선 핵심 소재인 리튬 확보의 경우, 자체 광산을 개발해 충당한다는 계획이지만 아직 매장량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PIF가 지원하는 국영 광산 회사 마덴(Maaden)은 바닷물에서 리튬을 추출한다는 계획이지만 아직 시범 단계에 불과하다.
결국, 해외 광물 확보를 위해 PIF와 마덴이 지난해 1월 합작해 세운 ‘마나라 미네랄’을 통해 해외로부터 리튬을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이미 글로벌 전기차 시장이 레드오션에 가까울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중국은 미국 테슬라를 제치고 글로벌 전기차 1위 제조사로 등극한 자국의 비야디(BYD)를 중심으로, 막대한 규모의 정부 보조금과 그로 인한 저렴한 가격, 세계 최대 규모의 생산량, 치열한 내수 경쟁을 통해 다져진 경쟁력 등을 앞세워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빠르게 석권하고 있다.
전통의 자동차 강자들이 몰려있는 미국 역시 저탄소 경제 창출을 위한 투자 유도를 목표로 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을 통해 수백억 달러의 보조금을 자국 내 전기차 산업에 투입했다.
한국과 일본, 유럽 등의 기존 자동차 제조사들도 여전히 글로벌 시장에서 건재하다.
그만큼 이제 갓 출범하려는 사우디의 전기차 산업이 시장 규모나 제조 능력, 기술력, 비용 등에서 기존 강자들을 극복하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글로벌 회계법인 언스트 앤드 영(EY)의 글로벌 첨단 제조 및 모빌리티 분석가 가우라브 바트라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사우디는 기존 자동차 제조 강국과 기존 공급망으로부터 엄청난 경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