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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은 안으로 굽는다" 美 반도체법 보조금, 삼성·TSMC는 ‘들러리’ 세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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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은 안으로 굽는다" 美 반도체법 보조금, 삼성·TSMC는 ‘들러리’ 세워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위치한 삼성의 파운드리 공장. 사진=삼성전자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위치한 삼성의 파운드리 공장. 사진=삼성전자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글로벌파운드리스에 15억 달러의 반도체법 보조금 지급을 결정하면서 삼성전자와 TSMC 등 아시아의 반도체 기업들이 자칫 반도체법의 ‘들러리’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19일(현지 시간)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 및 과학 법(CHIPS and Science Act)에 따라 자국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 글로벌파운드리스에 15억 달러(약 2조원)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미국 상무부가 보조금 지급을 결정한 기업은 지난해 12월 선정된 영국 방산업체 BAE시스템스의 뉴햄프셔주 공장과 올해 1월 선정된 애리조나주 마이크로칩 테크놀로지에 이어 3곳으로 늘었다.

BAE시스템스는 미국이 아닌 영국의 방산기업이지만, 이 회사의 뉴햄프셔주 공장은 F-35를 비롯해 미국의 각종 첨단 전투기에 들어가는 반도체 제품을 만드는 곳이다. 마이크로칩 테크놀로지 역시 각종 산업 제품은 물론, 군용 장비에도 반드시 들어가는 마이크로컨트롤러 유닛(MCU) 등의 반도체를 공급한다. 즉 두 회사 모두 미국의 ‘국가 안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기업이다.
파운드리 업계 4위인 글로벌파운드리스는 반도체 제조 공정 수준이 삼성전자나 TSMC에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이 회사도 미 국방부와 오랫동안 협력해 왔으며, 인공위성과 우주통신용 핵심 반도체를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미 상무부는 이번 발표 성명에서 ‘안보’와 ‘국방’이라는 내용을 유독 강조했다. 반도체법의 보조금 지원 우선순위가 미국의 국방 및 안보에 미치는 영향 순으로 결정될 경우 삼성전자와 TSMC의 순위는 자연스레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TSMC가 제조 및 납품하는 반도체는 주로 애플이나 퀄컴 등의 최신 스마트폰용 칩이나 엔비디아, AMD 등의 최신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인공지능(AI) 칩 등이 대부분이다. 이들의 첨단 반도체 제품이 현대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막상 미국의 국방 및 안보 분야와는 살짝 동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최신 전투기를 비롯한 각종 방산 장비와 군사용 인공위성 등에 사용되는 반도체는 각종 극한 상황에서도 멈추거나 오류 없이 정상 작동을 보장해야 한다. 따라서 일부러 안정성이 충분히 검증된 20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상 구형 반도체를 사용하기도 한다. 10나노 이하 첨단 반도체가 주력인 삼성전자와 TSMC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상무부의 이번 발표와 관련해 “미국의 반도체 산업 부활을 위해 마련된 반도체법 제정 이후 첫 대규모 지원”이라며 “글로벌파운드리스를 시작으로 인텔과 TSMC, 삼성전자, 마이크론 등의 첨단 설비투자에 대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지원이 속속 공개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다만, 현재 다음 네 번째 지원 대상으로 가장 유력한 곳은 다름 아닌 인텔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반도체 기업인 인텔 역시 오랜 역사에 비례해 미국의 국방 및 안보 분야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인텔은 미국 정부와 반도체 공장 투자와 관련해 100억 달러(약 13조3500억원) 규모의 지원 방안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국 정부가 반도체법 지원을 위해 책정한 총 390억 달러 보조금의 약 4분의 1에 달하는 규모다.

한편, TSMC는 지난해 여름부터 현지 건설 노조와의 마찰, 반도체 전문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애리조나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의 완공과 가동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업계에서는 바이든 정부가 약속한 반도체법 보조금 지급이 늦어지는 것이 실질적인 지연의 원인으로 본다. 이는 TSMC가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는 구마모토 현지 반도체 공장을 예정보다 3년 빨리 완공하고, 연말부터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라는 점에서 더욱 확실시된다.

삼성전자는 물론, 향후 미국 진출을 고려 중인 SK하이닉스 등 국내 관련 기업들도 미국 정부의 보조금만 하염없이 기다리기보다는 애플·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MS) 등 첨단 반도체 수급이 시급한 현지 빅테크 기업들에 신규 투자를 제안하는 등 대안을 찾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