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이 17년 만에 금리인상을 단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엔화가치 하락이 기업의 해외 수익이 자국으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최근 닛케이아시아는 각종 데이터를 인용, 일본 기업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회사 유보금으로 쌓아놓는 한편, 현지에 재투자하고 있어 엔화가치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신에 따르면, 많은 일본 기업들은 선물환 계약을 통해 외화 보유금액을 늘리고 있다.
이로 인해 일본 도쿄증시에서는 4년 연속으로 주간 엔화 순매도가 기록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기업들이 해외 사업을 중시하기 시작하고 외화 수입을 해외 진출에 사용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지난 2021년부터 매도가 매수를 웃돌기 시작, 2023년까지 3년 연속 엔화 매도가 매수를 앞지르며 엔화가치가 하락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 2006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달러 대비 상승세를 그리고, 연중 내내 엔화가 약세를 보였던 2000년과 2013년에도 일본의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로 인해 엔화 매수세가 매도세를 앞지른 것과는 대조적인 결과다.
대표적인 기업이 소니다. 소니는 그룹 전체 외환 거래를 영국 자회사로 통합해 외화 매도 및 매수 균형을 맞추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화를 엔화로 환전하기보다 해외 현지에서 추가 프로젝트 및 기타 사업 구매 비용으로 활용해 전반적인 코스트를 절감하는 전략이다.
외환시장에서 엔화가치가 계속 하락하고 있는 데 따른 결과다.
이에 따라 일본 해외 자회사들의 외화 보유고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경제산업성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기업 해외 자회사의 외화 보유고는 48조 엔에 달했다. 닛케이아시아는 “이 중 20%가 일본으로 유입될 경우 2022년 일본이 외환시장 개입에 지출한 금액과 맞먹는 금액이 된다”라고 전했다.
기업의 해외 수익이 자국으로 돌아오지 않다 보니 경상수지 흑자도 실제 일본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이스케 카라카마 미즈호 은행 수석 시장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국제수지 데이터와 해외 자회사들의 외환 보유고 축적 데이터를 인용, 기업의 해외 매출이 국내로 유입되지 않는 것을 가정하면 일본 경상수지는 2022년 10조2000억엔 적자로 나타난다고 전했다. 일본의 2022년 경상수지는 10조7000억엔 흑자였다.
결국,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가 정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것과 같이 엔화에 대한 수요 창출에는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카라카마 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의 심각한 노동력 부족을 고려할 때 기업들이 해외 수익을 국내에 투자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라며 "해외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명확한 지출 목표 없이 내부 유보금으로 해외 자회사에 쌓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이에 따라 일본 금융당국이 단기적인 효과로 그칠 수 있는 엔화 매입 등 시장 개입을 하기 전에 자국 기업들의 해외 수익을 국내로 다시 재투자하도록 정책을 손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구마노 히데오 다이이치생명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엔화의 급격한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일본 정부는 해외 수익의 일본 송금을 장려하기 위한 세금 인하책 등의 정책을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해외 기업들이 거둔 수익에 대한 송환세를 한시적으로 감면, 미국으로의 자금 유입을 급격히 늘려 달러 가치를 높였던 정책을 벤치마킹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사토 키요타카 요코하마 국립대학 경제학 교수는 "국내 투자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장려하기 위한 정책적 지원이 필수적"이라며 일본 정부와 민간 기업의 노력이 적절히 조율되지 않으면 엔화가치 하락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수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iscrait@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