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업계는 호시탐탐 한국의 반도체 관련 기술을 탈취하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내부 직원을 회유한 기술 빼돌림은 가장 흔한 방법의 하나다.
그나마 범위를 좁히면 △반도체 핵심 소재 △공정 매뉴얼 △작업 순서나 사용 장비, 방법 등을 망라한 전반적인 공정 프로세스 정보 △공장 내 장비 배치 현황 △공장의 구조 및 제조 라인 도면 등 주로 ‘제조 과정’에 관련된 노하우를 집중적으로 노리는 편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접근이 쉽고 유출이 용이한데다, 다른 반도체 분야에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제조는 후발 주자가 선도업체의 ‘제조 노하우’를 확보할 수만 있어도 기술 격차를 크게 좁힐 수 있다. 반도체 제조 공정의 기본적인 틀이 이미 업계에 확립된 상태에서 제조사별로 최적화한 세부 노하우에 따라 품질과 수율(양품 반도체의 제조 비율)은 물론, 제조 비용까지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반도체 제조업체들은 하나의 반도체 제품을 양산하기까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공정 최적화'에 투자하고 있다. 이는 전문 요리사가 대표 메뉴의 레시피를 완성하기 위해 재료의 종류와 양은 물론, 조리 단계와 순서, 시간 등의 정보까지 하나하나 꼼꼼히 따지고 끊임없이 개량을 시도하는 것과 비슷하다.
공정 최적화의 어려움은 나노미터(㎚·10억분의 1m)급 초정밀 반도체로 갈수록 더욱 심해진다. 중국 반도체 업계가 기를 쓰고 한국 반도체 ‘제조’ 기술의 탈취를 노리는 것은 반도체 설계 및 디자인 노하우는 풍부하지만, 10나노미터 이하 첨단 반도체 제조에 대한 노하우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CPU(중앙처리장치)와 GPU(그래픽처리장치), AI 반도체 등 각종 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최첨단 반도체들은 이미 대부분 10나노 이하 초정밀 공정으로 제조되고 있다. 따라서 중국과 가깝고 메모리와 디스플레이, 파운드리 등의 분야에서 최정상급 제조 기술을 보유한 한국의 반도체 기업들이 노려지고 있는 것이다.
비록 중국에서 가장 앞선 기술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진 화웨이와 파운드리 자회사 SMIC가 지난해부터 7나노급 첨단 5G 반도체의 제조와 양산에 성공하긴 했지만, 이는 수율과 시간, 비용 등을 깡그리 무시한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막무가내식 제조의 결과다.
만약 화웨이가 이번 유출 사건을 통해 불량 저감 노하우를 입수하고, 자체 제품 개발과 공정에 반영하는 데 성공했다면 자체 7나노 반도체의 개발 및 양산 시기가 대폭 앞당겨지고, 수율도 크게 향상됐을 것이다.
중국 업계가 노리는 분야가 워낙 광범위한 만큼 국내 반도체 제조사들이 하나하나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만, 제조사 스스로 핵심 인력들이 거액의 연봉이나 보상 등에 회유되지 않도록 보상과 혜택을 더욱 강화하고, 인사 관리에도 더욱 신경을 쓰는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금껏 발생한 수많은 반도체 기술 유출 사고의 대부분이 연봉이나 사내 대우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정부 역시 반도체를 비롯해 핵심 산업 인력들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한 제도적인 지원 및 보호장치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최용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pc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