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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면 '강퇴'…日 정부가 선보인 '고독한 메타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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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면 '강퇴'…日 정부가 선보인 '고독한 메타버스'

웹 2D 도트 메타버스 '개더' 기반 '플랫버스' 운영
고독사·고립 대책 캠페인 일환…온라인 강연 병행
독특한 시도 vs 혈세 낭비…엇갈린 네티즌 반응

일본 내각부 고독·고립 대책 추진실이 선보인 '플랫버스'의 모습. 사진=일본 내각부 고독·고립 대책 추진실이미지 확대보기
일본 내각부 고독·고립 대책 추진실이 선보인 '플랫버스'의 모습. 사진=일본 내각부 고독·고립 대책 추진실
광장과 특별 무대, 세미나 공간, 상담 공간 등으로 이뤄진 웹 기반 도트 그래픽 메타버스 공간에 입장하자 보안요원이 다가와 "마이크 끄세요"라고 지적한다. 넓은 공간에는 말 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 뿐이고, 자기소개를 하거나 다른 이들에게 말을 걸면 '강퇴(강제퇴장)'당한다.

메타버스의 근간을 이루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부정한 듯한 이러한 모습은 일본 내각부가 5월 들어 선보인 개더(Gather) 기반 플랫폼 '플랫버스(ぷらっとば~す)'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내각부가 선보인 이 '황당한' 메타버스는 일본 사회에 만연한 고독, 고립 문제 해결을 위한 캠페인 차원에서 기획된 것으로 보인다. 플랫버스의 운영은 내각부가 2021년 설립한 산하 기구 고독·고립 대책 추진실이 맡고 있다.

추진실 측은 5월을 '고독·고립 대책의 달'로 두고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플랫버스에선 비영리법인 '당신의 집'의 오오조라 코키(大空幸星) 이사장, '라이트링'의 이시이 아야카(石井 綾華) 대표 등의 초청 강연을 선보였다. 이들 비영리법인들의 지속적 활동을 위해 쿠보 타쿠미(久保 匠) 일본 펀드레이징협회 오피서 또한 연사로 초청됐다.

일본 경시청에 따르면 올 1분기 일본에선 총 2만1716명이 가족, 친지, 이웃이 인지하지 못한 채 고독사했다. 특히 이 중 80%에 가까운 약 1만7000명이 65세 이상 고령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원인으로 미혼 인구 증가가 지적된다. 일본 후생노동성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일본 국민의 생애미혼율(50세까지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20년 기준 남성은 28.25%, 여성 17.81%였다. 1990년 기준 남성 5.57%, 여성 4.33%를 기록한 것에 비해 급격히 증가한 수치다.

내각부 고독·고립 대책 추진실이 독거노인 문제 해결 차원에서 진행한 미술 전시회 '아츠얼라이브(Arts alive)' 현장 전경. 사진=일본 내각부 고독·고립 대책 추진실이미지 확대보기
내각부 고독·고립 대책 추진실이 독거노인 문제 해결 차원에서 진행한 미술 전시회 '아츠얼라이브(Arts alive)' 현장 전경. 사진=일본 내각부 고독·고립 대책 추진실

일본 정부가 사회 문제에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모습이 낯설지는 않다. 일본에선 지난 2022년 4월 사단법인 '메타버스추진협의회'가 정식 발족했다. 요로 타케시 도쿄대학교 명예교수가 회장을 맡은 가운데 전직 관광청 장관과 중의원 등 정계 인사들이 대거 협회에 참여했다.

노인 문제 해결에 메타버스적 요소를 도입, 성과를 거둔 사례도 있다. 히로시마 소재 스타트업 오타그룹은 2022년부터 75세 이상 노인들을 위한 버추얼 유튜버(버튜버)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이 선보인 4인조 노인 버튜버 그룹 '메타그랜마(メタばあちゃん)'는 유튜브에서 5만명 이상의 구독자를 모으는 등 성공적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플랫버스' 캠페인에 대한 반응은 엇갈리는 편이다. 고독 문제 해결을 위한 독특한 시도였다는 호평이 있는 한편 '인력과 세금을 낭비한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는 혹평도 공존한다.

일본 현지 '국민 SNS'로 꼽히는 X(트위터)를 살펴보면 아마추어 버튜버, 인플루언서들이 플랫버스를 체험한 후기를 여럿 남겼다. 상당수는 "트렌드를 받아들인 신선한 시도", "의외로 구성이 짜임새 있다"며 좋은 인상을 받았다고 평했다.

반면 후루이치 노리토시(古市憲寿) 작가는 플랫버스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운영된다는 점을 들어 "사람들이 소통을 막는 '경비원'들의 근무 시간 보장을 위한 조치로 보인다"며 "메타버스를 이렇게 운영하기 위해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라가 운영하는 메타버스'라는 표기에 불길함을 느꼈을 사람이 많을텐데, 플랫버스는 그러한 불안감이 실제로 적중한 사례"라며 "고독사, 고립 대책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을 뒤로한 채 '플랫버스'와 같은 사업을 벌이고 있으니 고개를 갸우뚱거릴 수 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원용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wony92k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