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의 판매 실적이 최근 들어 둔화한 것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으나 전기차 수요 위축을 비롯한 외부적 요인보다는 정치와 경제를 넘나드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거침없는 광폭 행보가 근원적인 배경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미국 유력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자신이 소유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까지 마다하지 않고 하루가 멀다 하고 자신의 견해를 드러내면서 늘 논란의 중심에 서온 기업인은 전무후무하다고 지적했다.
머스크는 소셜미디어를 자신의 정치 활동에 매우 적극적으로 활용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이어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1인 미디어로 통한다.
특히 미국의 여론 지형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이후 정치적으로 양극단으로 치닫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가운데 머스크의 정치적 지향이 트럼프 전 대통령으로 대변되는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진영과 갈수록 동조하는 흐름을 보이면서 전기차 자체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큰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이 고객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테슬라 전기차의 매출에도 직접적으로 타격을 입히고 있는 것으로 NYT가 최근 벌인 설문조사에서 확인됐다.
◇ 전기차에 관심 큰 진보 성향 소비자들 테슬라에 등 돌려
이는 앞서 보수 성향의 또 다른 유력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미국 사회가 전기차 시대로 넘어가는데 가장 큰 장애물로 정치적 양극화 문제가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WSJ에 따르면 최근 여론조사업체 모닝컨설트에 의뢰해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전기차에 대한 인식이 정치적 성향에 따라 갈린 것으로 나타났다.
진보 성향이라고 스스로 밝힌 응답자의 66%가 전기차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입장을 피력한데 비해 스스로 보수 성향이라고 밝힌 응답자의 경우 31%만 그렇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두 그룹 사이의 비율 격차는 2배가 넘을 정도로 컸다.
여기에 더해 NYT는 방향을 조금 바꿔 머스크의 개인적인 행보가 테슬라 매출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자동차 시장 분석가와 차주를 포함한 7500여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전기차 구매에 더 적극적인 진보 성향 소비자들이 머스크 CEO의 우경화 행보에 불편한 마음을 느껴 테슬라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줄었다고 밝혔다.
머스크에 대한 반감이 테슬라 전기차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밝힌 이들은 머스크 자신은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반유대주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수차례 해 댁규모 광고주 이탈 사태까지 촉발시킨 점 △지난 2022년 트위터를 인수해 이름을 X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무자비한 대규모 감원을 감행한 점 △유력한 차기 대선후보인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백악관 참모로 기용할 생각이 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로 트럼프와 긴밀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점 등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 보수 성향 소비자들, 전기차에 여전히 무관심
미국 굴지의 여론조사업체 퓨리서치센터가 최근 발표한 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는 지적이다.
퓨리서치센터가 전기차 소비와 정치적 성향의 함수 관계에 관해 벌인 조사에서 보수 성향 소비자들의 77%가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없다고 밝혔는데 이는 지난해 조사에서 나타난 70%보다 오히려 늘어난 수치다.
NYT는 “진보 성향 소비자들이 머스크의 개인 행보 때문에 테슬라 전기차와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 확인된 반면에 그렇다고 해서 머스크가 향후 선거에서 지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공화당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테슬라 전기차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확인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테슬라 전기차에 대한 관심이 크고 실제로 왕성하게 구매해왔던 진보 성향 소비자들이 떠난 자리를 보수 성향 소비자들이 채워주는 흐름이 전개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 “머스크가 테슬라 문제의 핵심”
NYT는 이번 설문에 참여한 사람 가운데 일부와 직접 인터뷰를 진행했다.
시장조사업체 배틀로드리서치의 벤 로즈 CEO는 “원래 테슬라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면서 “그러나 지금은 머스크 때문에 테슬라가 망가지고 있다고 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 업체 마이크소프트에서 제품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는 아론 셰퍼드는 “지금 상황은 마치 머스크가 MAGA 모자를 쓰고 다니면서 트럼프 선거운동원 역할을 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MAGA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말의 약칭으로 트럼프를 대통령 자리에 오르게 한 지난해 2016년 대선 선거운동에서 사용한 구호다.
셰퍼드는 “원래 테슬라 전기차를 살 계획이었지만 머스크 때문에 마음이 달라져 폭스바겐 전기차를 구매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