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 통제 강화와 대만의 반도체 시장 점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됨에 따라 지정학적 불안에 자극받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미국 정부가 네덜란드 ASML과 일본 도쿄일렉트론이 중국에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을 계속하면 이들 두 나라에 최고 단계의 무역 보복을 할 것이라고 통보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와 한 인터뷰에서 대만이 미국 반도체 산업의 거의 100%를 가져갔다며 방위비를 내라고 요구했다. 뉴욕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에서는 17일(현지 시각) ASML·도쿄일렉트론뿐 아니라 엔비디아 등 반도체 관련 주식이 일제히 하락했다.
일본과 네덜란드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중국에 대한 반도체 제조 장비 수출을 차단하고 있으나 관련 서비스 제공까지 통제하지는 않고 있다. 현재 세계 4대 반도체 장비업체는 미국의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와 램 리서치, 일본의 도쿄일렉트론, 네덜란드의 ASML이다.
블룸버그는 미국이 일본의 반도체 장비 기업인 도쿄일렉트론과 네덜란드의 반도체 장비 업체인 ASML 등에 대해 '해외직접생산품규정(FDPR)'을 적용하는 최고 단계의 무역 보복 조처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양국에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FDPR은 미국 밖에서 외국 기업이 만든 제품이라 해도 제조 과정에서 미국이 통제 대상으로 정한 장비나 소프트웨어, 설계를 10% 이상 사용하면 해당 국가에 수출을 할 수 없도록 한 규제 장치다. 미 상무부는 2019년 5월 16일 화웨이와 68개 계열사 등을 미 정부 허가 없이는 미국 기업과 거래할 수 없도록 '우려 거래자 리스트(Entity List)'에 올렸다. 이때 적용한 규정이 FDPR이다.
블룸버그는 미국 반도체 장비 업체들이 FDPR을 동원한 네덜란드와 일본 반도체 장비 업체 수출 통제에 반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양국 기업들이 미국의 강력한 통제에 반발해 이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중국에 대한 수출을 계속할 수 있다고 미국 장비 업체들이 주장했다. 일본과 네덜란드 정부는 이미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 두 나라는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 등을 지켜보려고 정책 결정을 미루고 있다.
미국은 글로벌 반도체 장비 제조업체인 도쿄일렉트론과 ASML이 중국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칩 생산에 필요한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못하도록 추가적인 조처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 정부 고위 당국자가 최근 양국을 방문해 FDPR을 동원한 통제 강화 방안을 언급했다고 블룸버그가 전했다.
미국은 이와 함께 HBM 칩 제조 선도 업체인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이 중국에 HBM 칩을 수출하지 못하도록 한국 정부 측에 요구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HMD 생산에 ASML과 도쿄일렉트론의 장비를 사용하고 있으며 인공지능(AI) 반도체 제조업체인 엔비디아와 AMD가 HBM 칩을 탑재하고 있다. HBM 공급망에서 한국의 한미반도체·한화정밀기계 등 장비 제조업체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HBM은 SK하이닉스가 2013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이후 현재 5세대 제품인 HBM3E까지 양산이 이뤄졌다. 삼성전자 역시 생성형 AI와 빅데이터 상용화에 따라 반도체 산업 차세대 먹거리로 HBM을 상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