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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파만파] 바이든 대통령과 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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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파만파] 바이든 대통령과 다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루 게릭은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한 야구선수였다. 그는 ‘양키스의 자존심’ ‘철마(THE IRON HORSE)’로 불렸다. 그의 별명이 철마인 이유는 2130경기를 연속 출전했기 때문이다.

이 기록은 1995년 칼 립켄 주니어가 깨뜨리기 전까지 56년 동안 불멸로 남아있었다. 루 게릭은 골절상을 입고도 경기에 출전했고, 머리에 공을 맞고 정신을 잃을 정도였는데도 다음 타석에 들어섰다.
그의 기록 연장은 열성 팬심과 하나가 되어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성역처럼 굳어졌다. 35살이던 1938년 그는 타율 0.295, 홈런 29개, 타점 114개의 근사한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그의 몸에는 이미 나중에 자신의 이름을 따 '루게릭병'으로 불리게 되는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듬해 4월 30일 경기에서 그는 4타수 무안타에 그쳤다.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하지만 팀 내 누구도 연속 경기 출전 중단을 입에 올리지 못했다.
다음 경기에 앞서 게릭은 먼저 감독을 찾아가 입을 뗐다. 오늘 경기에 출전하지 않겠다고. 본인이 원하면 얼마든지 기록 연장이 가능했다. 팀에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스스로 내린 결단이었다.

조 바이든(81) 대통령이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참패로 끝난 TV토론 이후 빗발치던 사퇴 압박에서 홀가분해졌다. 아군이었던 민주당 의원들이 하나둘 그의 손을 놓으면서 고립무원(孤立無援)에 빠진 채 허우적거렸던 3주였다.

월스트리트저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층의 76%가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 바이든은 너무 늙었다고 답했다. 도널드 트럼프(78) 전 대통령과의 TV토론 후 실시된 워싱턴포스트 여론조사에선 미국인 세 명 가운데 두 명이 그의 사퇴를 원했다.

그는 사실상 당락을 결정짓는 7개 경합주 가운데 위스콘신을 제외한 6개 주에서 열세를 보였다. 위스콘신에선 간신히 동률을 기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든 대통령은 "나는 이 일(대통령직)을 하는 법을 알고 있다"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나아가 “모든 것을 걸었다”며 결의를 드러냈다. 노욕(老慾)이었다.

중국 역사가들은 713년부터 약 30년간을 보기 드문 태평성대로 여긴다. 가뭄이 들자 황제는 황궁의 쌀을 주린 백성들에게 나눠주었다. 황제는 “내가 마르더라도 백성이 살찌면 여한이 없다”고 했다.

그러던 성군이 만년에 한 여인을 만나면서 망가지기 시작했다. 아들의 첩이었던 여인은 20대였다. 태평성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황제는 당 현종이고 여인은 양귀비로 불렸다.

노욕이라고 다 문제가 되는 건 아니다. 오페라 ‘팔스타프’를 작곡할 당시 베르디는 80세였다. 이미 최고의 작곡가인데 왜 굳이 또 곡을 쓰느냐는 물음에 베르디는 “작곡을 끝내면 늘 아쉬움이 남았다. 내게는 완벽에 도전할 의무가 있다”고 답했다.

공자는 70세 노인의 경지를 '종심소욕 불유구(從心所欲 不踰矩)'라는 일곱 글자로 표현했다. 마음이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를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도 민폐는 끼치지 마라”는 말로 달리 쓸 수 있다.

여든의 베르디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했지만 민폐를 끼치지 않았다. 오히려 인류에게 멋진 오페라를 하나 더 유산으로 남겼다.

지난 3주 동안 미국에선 “횃불을 다음 주자에게 넘겨라”는 아우성이 넘쳐났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혼자 뛰지 말고 올림픽 성화 릴레이처럼 다음 주자에게 기회를 넘겨주라는 압박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다리 외에는 어떤 것으로도 생각하지 않는다.” 4년 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한 말이다. 그는 정말 다리가 되었다.


성일만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texan509@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