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국제금융시장을 지배했던 엔 캐리 거래가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 축소 기대감 속에 슬슬 정리되는 움직임이 포착되자 엔화는 이번 주 들어 달러 대비 2개월여 만에 최고치로 상승했다.
일본 엔화는 이달 초 달러당 162엔까지 추락하며 40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으나 이후 일본 외환당국의 개입과 금리 격차 축소 기대 등으로 급반등했다. 엔화는 이날 거래에서 한때 달러당 152엔 근방까지 상승하기도 했다.
엔화의 부활로 일본 수출업체들이 타격을 입을 것이란 우려로 일본 주식시장에서 닛케이225 지수는 이날 3% 넘게 급락했다.
엔 캐리 거래가 흔들리자, 호주 달러와 뉴질랜드 달러 및 멕시코 페소와 같은 주요 고수익 통화들도 타격을 입었다. 호주 달러는 달러 대비 최근 1주일 동안 2.5% 가까이 하락했다.
안전자산이면서도 레버리지 베팅의 대상인 금값은 이날 1% 넘게 하락했고, 위험자산의 대명사인 비트코인은 4% 가까이 급락했다.
캐피털닷컴의 선임 시장 애널리스트인 카일 로다는 “이는 사실상 엔화의 숏 스퀴즈로 인한 대규모 디레버리징 이벤트”라며 “시장 전반에 걸쳐 광범위한 청산이 이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올해 인공지능(AI) 열풍 속에 랠리를 질주했던 미국 주식시장의 주요 지수들이 가뜩이나 최근 실적 둔화 우려 속에 흔들리는 상황에서 엔화의 반등은 전 세계 금융시장에 달갑지 않은 소식이 되고 있다.
지표·이벤트 따라 ‘출렁’
이날 발표된 미국의 2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예상치를 상회하는 호조를 보이자 가파른 엔화 반등세에는 일단 제동이 걸렸다.
뉴욕장 초반 152엔을 위협했던 달러/엔 환율은 지표 발표 이후 154.20엔대로 튀어 오르기도 했다.
크레디트 아그리콜의 주요 10개국(G10) 외환 전략 책임자인 발렌틴 마리노프는 “GDP 지표는 고수익 안전자산인 미국 달러의 매력을 발산하고 전반적으로 달러가 더 나은 성과를 보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시장은 오는 30~31일 일본은행(BOJ) 통화정책 회의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앞두고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LSEG의 추정에 따르면 이날 금리 선물 시장에서는 일본은행이 다음 주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을 67.2%로 반영했다. 이는 주 초반의 약 40%에서 상승한 수치다.
연준은 이번 FOMC에서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관측되지만, 9월 금리 인하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양국의 금리 격차 축소가 가시화할 경우 엔 캐리 거래의 추가적인 청산을 촉발할 수 있어 시장이 촉각을 세우고 있다.
변동성 확대 ‘불가피’
위험자산에 대한 투자 경계심이 확산하면서 시장 변동성도 부쩍 커졌다.
월가 공포지수로 통하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는 이날 3% 가까이 급등하며 18.5를 넘어섰다.
이날도 확인했듯이 지표나 이벤트에 따라 당분간 시장의 출렁거림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ING의 크리스 터너를 비롯한 전략가들은 투자자 메모에서 “엔화 숏(매도) 포지션의 청산이 글로벌 위험 회피 환경에 기여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서 “앞으로 며칠 동안 지표와 이벤트로 인해 달러/엔 환율이 하방으로 움직일 위험이 더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불루엣지 어드바이저스에서 펀드 운용을 돕는 캘빈 여는 “여름철 기온은 높지만, 유동성은 낮고 엔화 반등세가 멈추지 않으면 자산 간의 청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이는 변동성 확대와 변동성을 컨트롤하는 펀드에 대한 익스포저 확대로 인한 강제 매도세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수정 기자 soojunglee@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