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작 =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1966), '태양은 외로워'(1962), '볼사리노'(1970),' 암흑가의 세사람'(1970년), '조로'(1975) 등이 있다.
알랭 들롱( Alain Delon) 이 별세했다. 알랭드롱은 걸출한 외모, 연기력, 카리스마로 지난 세기 지구촌 영화 팬의 마음을 사로잡은 프랑스의 전설적 배우이다.
1935년 생인 들롱은 아기 때부터 탁월한 외모가 유명했다. 만지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모친이 유모차에 '만지지 마시오'라는 문구를 적어 놓기도 했다. 해군에 17세에 자원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에서 복무했다. 제대후 웨이터, 시장짐꾼 등을 전전하다 칸영화제에서 영화 제작자의 눈에 띄어 영화계에 입문했다.
알랑 들롱을 스타덤에 올린 영화는 1960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였다. 이 영화에서 들롱은 자신을 무시하는 부잣집 아들과 지중해에서 요트를 타다가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는 소시오패스 청년 리플리를 연기해냈다. 들롱은 '세기의 미남'이라는 별명으로 인기를 누렸다. 대표작으로는 '파리는 불타고 있는가'(1966), '태양은 외로워'(1962), '볼사리노'(1970),' 암흑가의 세사람'(1970년), '조로'(1975) 등이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엑스(X·옛 트위터)를 통해 "그는 스타 그 이상이었다. 프랑스의 기념비적 존재"라고 추모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알랭 들롱은 전설적인 배역들을 연기하며 전 세계를 꿈을 꾸게 했다"며 "그의 잊을 수 없는 얼굴은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그는 들롱의 젊은 시절 프랑스 파리 개선문 앞에서 찍은 사진도 함께 게시했다. 고인이 생을 마감한 프랑스 파리 남부의 두시에 있는 자택 앞에는 이웃과 팬의 발길이 이어졌다고 AFP는 전했다.
들롱은 1960년 르네 클레망 감독의 '태양은 가득히'에서 신분 상승의 욕구에 사로잡힌 가난한 청년 역할로 출연하면서 세계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그는 1935년 11월 8일 프랑스 파리 교외 소(Sceaux)에서 태어났다. 4살 때 부모가 이혼했다. 이혼한 부모는 각각 재혼했다. 아무도 알랭을 맡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다른 집에 입양되었다. 그를 입양한 양아버지는 교도관이었다. 알랭은 파리 교외 프레네스 교도소(Fresnes Prison) 옆 집에서 살면서 때때로 사형수들을 처형하는 일제 사격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다.
이후 양아버지가 사망했고, 알랭은 원래 부모에게 되돌려 보내졌고 재혼한 어머니와 살았다. 부모는 그를 가톨릭 기숙학교에 보냈지만 그는 학교에서 행실 불량으로 6번이나 퇴학 처분을 받으며 학교들을 옮겨 다녔다. 그는 17세에 프랑스 해군에 입대하였다. 처음에는 해군 통신학교 기간병으로 근무했다. 복무 중 절도를 저지르다 발각되어 불명예 전역과 군 복무 연장의 선택에 놓이자 복무 연장을 택했다.
이후 1953~54년에는 1차 인도차이나 전쟁 중인 베트남 사이공 해군기지 경비중대 무전병으로 파병되었다. 파병 기간 중 부대 지프를 훔쳐 근무지를 무단이탈하여 영외로 여행을 떠났다가 운전 미숙으로 차량을 강물에 빠뜨린 혐의로 체포되어 군 교도소에 수감되기도 했다. 11개월간의 수감 생활을 마치고 1956년 해군 상병(Matelot de 1re classe)으로 불명예 전역했다. 들롱은 수감 기간 포함 총 4년간 군 복무를 했다.
어렸을 적 질풍노도의 시기 때문인지 들롱은 하류인생을 주로 연기했다. 제로 젊은 시절 많은 굴곡을 경험했기 때문에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1991년에 영화 <카사노바>에서 나이가 든 자코모 카사노바 역을 맡았다. 스위스 국적을 취득하여 스위스에서 살아 왔다. 당시 프랑스의 사회주의 정부와 프랑스 사회 전반에 환멸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