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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해리스 카멀라노믹스… 미실현 주식투자 자본이득세와 "기회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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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해리스 카멀라노믹스… 미실현 주식투자 자본이득세와 "기회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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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
해리스 미실현 자본소득 과세 뉴욕증시 강타 … 달러환율 국채금리 비트코인 대란

미국의 제47대 대통령을 뽑는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미국은 연방법에 따라 4년에 한 번씩 11월 둘째 주 화요일에 대통령 선출을 위한 국민투표를 한다. 이번 선거일은 11월 5일이다. 이제 100일도 채 남지 않았다. 미국의 대통령은 아메리카 합중국을 넘어 전 세계의 세력 판도를 좌우하는 지구촌의 최대 권력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글로벌 판도가 요동칠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도 미국의 새 대통령을 중심으로 또 한번 재편될 것이다.
이번 대선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와 민주당의 카멀라 해리스로 압축된 상태다. 트럼프는 이미 대통령직을 한 차례 지낸 적이 있다. 그런 만큼 트럼프가 당선됐을 때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는 비교적 손쉽게 예측해볼 수 있다. “미국을 다시 한번 위대하게”라는 이른바 마가(MAGA) 프로젝트의 시즌2가 될 것이 확실시된다.

문제는 해리스다. 해리스는 바이든 대통령의 도중하차로 느닷없이 대선 후보로 나섰다. 바이든 대통령 아래에서 부통령으로 재직하기는 했으나 그녀의 철학과 정책 스타일은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평생 검찰에서 재직해온 터라 경제관에 대해서도 드러난 것이 별로 없다. 해리스는 8월 22일 미국 시카고에서 열린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 후보로 공식 선출된 후 대관식 수락 연설에서 "우리는 내가 기회경제(opportunity economy)라고 일컫는 것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천명했다.
해리스는 이 수락 연설에서 기회경제에 대해 “모든 이들이 경쟁하고 성공할 기회를 갖는 것을 말한다"고 개념을 설명했다. 뉴욕증시의 메인 언론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분석 기사에서 해리스의 '기회경제'는 유연한 우산으로 해리스의 모든 정책을 담는 그릇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에서 기회는 선호도가 더 낮은 재분배, 평등, 다양성 없이도 민주당이 평소 주장하던 주제들을 유권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마법의 단어로 간주되고 있다. 연방정부가 자원을 제공해 불이익을 받고 있는 이들이 후한 급여를 주는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해주고, 사업을 시작하거나 집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민주당 정책을 거부감 없이 유권자들에게 설득할 수 있는 요술봉인 셈이다. 그동안 공화당이 전유물로 주장해 왔던 '애국주의' '자유'도 이 기회경제의 개념에 포함될 수 있다.

미국 정치사에서 기회경제를 먼저 주장해온 측은 공화당이다. 공화당은 오랫동안 정부의 의무는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기회의 평등을 요체로 하는 기회경제라는 단어는 공화당 소속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1986년 연설에서 처음 사용했다.

해리스는 공화당의 전유물 같았던 기회의 평등을 이번 DNC에서 맘껏 자신의 정책 비전에 포함했다. 이 기회의 평등이 이제 민주당 해리스의 정책에 녹아든 것이다. 그는 기회경제의 구체적인 정책 방향으로 기업과 노조가 함께 "일자리를 만들어 가면서 경제를 성장시키며, 의료부터 주택·식료품에 이르기까지 필수품 가격을 낮추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해리스는 소기업주들이 더 많은 자본에 접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미국의 주택 부족 문제도 끝장을 내겠다고 다짐했다.

해리스가 말하는 기회경제의 사상적 뿌리는 미국인들을 노동자로 보는 대신 소비자로 보는 것이다. 그동안 조 바이든 대통령이나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 노동자로서의 미국인에 집중해 왔다. 바이든의 공급망 미국 회귀(리쇼어링), 트럼프의 대규모 관세 정책은 미국에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정책 목표에서 출발하고 있다. 해리스는 대선후보 수락 연설에서 트럼프의 관세 인상 공약을 신랄히 비판했다. 그는 모든 수입품에 관세를 물리고 관세율도 올리겠다는 트럼프의 공약은 사실상 국가가 판매세를 물리는 것과 같다면서 중산층에 심각한 부담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카멀라노믹스(Kamalanomics)의 핵심은 바로 중산층의 기회를 증폭시키는 것이다. 중산층 경제 회복을 위한 물가 안정, 중산층의 경제적 안정, 친환경 에너지산업 육성, 법인세 인상 등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해리스 부통령은 법인세를 현행 21%에서 28%로 인상해 부족한 세수를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법인세를 20%까지 인하하고 전기차 보조금 정책 폐지를 추진하는 트럼프노믹스와 대조되는 지점이다. 해리스는 중산층 소득세는 대폭 인하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해리스는 앞서 8월 16일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취임 100일' 경제 구상을 발표했다. 물가 안정을 통한 중산층 강화와 생활비 절감을 핵심 목표로 내세웠다. 해리스의 ‘1호 경제정책’ 중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식료품 가격 폭리 근절’이다. 기업이 식료품 가격을 인상해 고객들에게 ‘바가지’를 씌우지 못하도록 연방 차원에서 규제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 ‘소비자 부당 착취와 폭리 취득’을 방지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연방거래위원회와 주 법무장관에게 위반 혐의를 받는 기업을 조사·처벌할 권한도 부여한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대기업 임대업자들이 임대료를 과도하게 올리는 것을 막기 위해 사모펀드와 투자 기업들이 임대주택을 대량 사재기할 경우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할 예정이라고도 했다.

해리스의 이 같은 구상에 대해 일각에선 ‘정부가 시장가격에 부당하게 개입한다’는 비판이 일기도 했다. 특히 트럼프 캠프는 “역사상 가장 사회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모델에 필적한다”면서 “베네수엘라나 쿠바에서나 내놓을 법한 가격 통제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해리스 측에서 이 같은 비판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기회경제를 강하게 주창하는 것은 오늘날 미국의 가장 큰 고민이 고물가와 고금리로 중산층의 살림살이가 크게 손상됐다고 판단한 때문으로 보인다. 요즘 미국 국가 경제의 거시경제지표는 아주 양호하다. 성장률과 경상수지 그리고 FDI 투자 유치 등은 사상 최고 수준이다.
그럼에도 미국 다수 시민들의 경제 고통은 오히려 증폭되고 있다. 해리스는 미국 사회의 이 이상한 풍요 속의 빈곤 현상이 인플레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물가 폭등으로 중산층의 유효 수요가 갈수록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경제야, 이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말이 있다. 1992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의 빌 클린턴 후보 진영에서 내걸었던 선거운동 문구다. 클린턴 후보 캠프에서 활동했던 제임스 카빌이 고안했다. 클린턴 후보는 이 캠페인 덕에 현직 대통령인 공화당의 조지 H. W. 부시를 누르고 승리했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중동에서의 전쟁 승리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여론조사 지지율에서도 압도적 우세였다.

클린턴 측은 그러나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 물가가 올라 서민 생계가 어려워진 데 주목했다. 서민 경제에 '올인'하겠다는 클린턴의 캠페인은 선거 막판 대역전극을 이뤄냈다. 해리스의 기회경제 공약은 "바보야, 문제는 민생 경제야"라는 32년 전 클린턴 경제학과 맞닿아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