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범죄 연루 의혹으로 창업자인 파벨 두로프가 프랑스 경찰에 긴급 체포되면서 세계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암호화 메신저의 대명사 텔레그램의 기업가치가 그동안 알려진 것보다 크게 빈약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또 다른 측면에서 이목을 끌고 있다.
당초 알려진 것과는 달리 ‘속빈 강정’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그동안 관련업계에서 관측됐던 텔레그램의 시가총액은 적어도 300억 달러(약 40조1400억 원) 수준이었다.
지난 2018년부터 텔레그램의 상장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내비쳐온 두로프는 언론 인터뷰를 거의 하지 않지만 지난 3월 영국 유력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이례적으로 가진 인터뷰에서 “전세계적으로 9억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했다”면서 “막대한 규모의 사용자를 기반으로 수억달러의 광고매출을 올리는 등 흑자를 향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구체적인 시점은 거론하지 않았지만 마침내 기업공개(IPO)를 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아울러 미국 최대 인터넷 커뮤니티 레딧과 비슷하게 충성도 높은 사용자들에게 지분을 파는 형태로 IPO를 추진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는 점도 밝혔다.
그러나 텔레그램의 실제 수익은 대부분이 가상화폐를 운용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두로프의 체포 이후 드러나면서 텔레그램의 기업가치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 텔레그램의 주 수익원은 암호화폐…그나마도 적자
이같은 사실은 두로프와 인터뷰한 FT의 최근 취재 결과 확인됐다.
지난달 31일(이하 현지시각) FT에 따르면 텔레그램의 자산 현황을 확인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으로 4억 달러(약 5400억 원) 규모의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보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 중요한 사실은 텔레그램의 지난해 전체 매출 가운데 약 40%를 차지하는 1억4800만 달러(약 2000억 원) 정도가 가상화폐에서 나온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 구체적으로는 암호화폐 마니아들을 대상으로 제공하는 디지털화폐 보관 서비스를 통해 주로 매출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지난해 현재 텔레그램의 현금 보유고 1억7085만 달러, 부동산 및 설비 자산은 3억7294만 달러인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텔레그램은 3억4200만 달러(약 4580억 원)의 매출을 올렸음에도 1억800만 달러(약 1450억 원)의 영업손실을 본 것으로 나타났다.
◇ “메신저 기업 아니라 가상화폐 기업”
이는 두로프의 공언과는 다르게 암호화폐가 텔레그램의 주된 수익 창출 수단이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FT에 따르면 더 문제가 되는 대목은 이같은 재무 상태라면 텔레그램의 시총을 300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해 IPO를 추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두로프가 결국 유죄를 선고 받아 수감되는 것과 상관없이 텔레그램의 재무 상태가 당초 알려진 것보다 빈약하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점이기도 하다.
FT는 “이 정도면 텔레그램은 메신저라기보다는 메신저 사업을 부업으로 하는 가상화폐 전문업체로 표현해도 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FT는 “물론 가상화폐 사업을 잘 키우면 그 나름대로 성공의 길이 열릴 수도 있다”면서도 “그러나 텔레그램이 IPO를 추진하는 입장에서 예비 투자자들이 보기에 과연 텔레그램이라는 기업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고 전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