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로 다가온 차기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맞붙을 카멀라 해리스 민주당 후보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간 경쟁이 초박빙 구도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한 표라도 더 끌어모으기 위한 두 후보 간 공약 대결도 치열하다.
그러나 3일(현지시각) 알자지라에 따르면 유독 한 가지 중요한 경제 현안에 대해서는 카멀라 후보와 트럼프 후보가 입을 맞춘 듯 둘 다 함구하고 있어 시선을 집중시키고 있다.
트럼프의 스피커 역할을 하고 나선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국가 부도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일 정도로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는 미국의 국가 부채 문제다.
오히려 두 후보는 이미 심각한 재정적자를 더 악화시킬 수밖에 없는 선심성 경제공약을 앞다퉈 쏟아내고 있어 국가 부채를 더 키우는 방향으로 역행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 해리스와 트럼프, 첫 토론서 ‘국가 부채’ 언급 없었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미국의 국가 부채는 지난 7월 사상 처음으로 35조 달러(약 4경7000조 원)를 돌파하면서 경제 전문가들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미국의 천문학적 국가 부채는 진작부터 미국 대선에 출마한 여야 후보들 간 토론회에서 주요 의제로 다뤄진 바 있다.
트럼프가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 주목을 받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꺾고 백악관에 처음 입성하게 한 지난 2016년 대선에 앞선 두 후보 간 토론에서도 국가 부채 문제에 중요한 주제로 다뤄졌고 앞서 2012년 대선에도 버락 오바마 민주당 후보와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이 문제를 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 나온 여야 후보 간 토론에서는 국가 부채 문제가 종적을 감췄다.
알자지라는 “지난달 열린 해리스와 트럼프의 첫 TV 토론은 이번 선거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인 가운데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으나 두 후보가 설전을 교환한 토론 주제 가운데 국가 부채 문제는 포함되지도 않았고 두 후보로부터 이 문제와 관련한 일체의 언급도 없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가 해리스와 2차 토론을 사실상 거부한 상황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이 문제를 놓고 두 후보가 전면적으로 다툴 일은 사실상 없어 보인다는 것이 알자지라의 전망이다.
미국 경제의 향배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국가 부채 문제가 핵심 현안으로 다뤄지지 못한 채 대선이 진행될 가능성이 현재로서는 매우 큰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시한폭탄
알자지라는 미 의회예산국(CBO)이 펴낸 보고서를 인용해 미국의 국가 부채가 향후 10년 간 51조 달러 수준으로 더 늘어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이 미국 경제를 휘청이게 한 2차 세계대전 직후 수준보다 높은 122%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심각한 상황임에도 마치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시한폭탄처럼 두 후보가 이 문제를 똑같이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오히려 두 후보 모두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방향으로 경쟁을 펼치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고 알자지라는 전했다.
가장 비근한 예로 꼽히는 것은 해리스가 트럼프가 각축을 벌이며 공약으로 제시하고 있는 내놓은 막대한 규모의 감세 및 면세 정책이다.
이미 대통령을 한번 지낸 트럼프는 지난 2017년 시행한 대규모 소득 및 법인세 감세정책이 내년 말 시행 만료되는 것과 관련해 시행 기간을 백악관에 재입성하면 연장하는 것은 물론이고 팁으로 얻은 소득에 대해 전면적으로 면세해주는 정책을 시행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러나 초당적 기구인 '책임있는 연방예산 위원회(CRFB)'가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의 이같은 공약이 현실화되면 미국 연방정부의 세수가 향후 10년 간 2500억 달러(약 333조 원)나 줄어 정부 부채를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해리스 역시 국가 부채 문제에 대한 언급은 회피한 채 트럼프 공약과 비슷한 내용의 팁 면세 공약을 제시했고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에게 최대 2만5000 달러(약 3300만 원)에 달하는 계약금 지원 공약을 내걸었다.
조세 전문 싱크탱크인 조세정책센터(TPC)가 최근 펴낸 보고서에 따르면 해리스 후보의 이같은 공약은 미국의 정부 부채를 향후 10년 간 2조6000억 달러(약 3465조 원) 늘리는 원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됐다.
국제경제 분야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것으로 알려진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의 진단도 비슷하다.
게리 후프바우어 PIIE 선임 연구원은 “해리스와 트럼프 모두 이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면서 “이는 이 문제를 건드릴수록 표심을 더 확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두 후보가 똑같이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