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인상이 경기침체를 몰고 올 것이라는 많은 경제전문가들의 전망과 진단은 빗나갔다. 오히려 국민소득·고용·성장·수출 등 각종 거시경제 지표가 오히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 경제가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되고, 고용시장이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가면서 무착륙, 즉 노랜딩을 할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연준의 이번 베이지북을 들여다보면 미국의 경제 활동은 여전히 견조하다. 일부 지역에서는 완만한 성장세가 나타났다. 기업의 고용은 전반적으로 소폭 증가했다. 노동 수요는 다소 완화됐지만 해고는 제한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노동시장이 악화되는 조짐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일부 고용주들이 지난 1년간 보류했던 채용을 시작했다. 연은 12개 지역 전체 임금은 일반적으로 완만하거나 중간 정도의 속도로 계속 상승했다. 이는 미국 경제가 강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기업들이 미국 대선 등 높은 불확실성에도 장기 전망에 대해 낙관적이라는 것이다. 기업들이 낙관적 전망을 유지한 것은 차입비용 하락과 추가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감에 따른 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노랜딩 시나리오는 더욱 확산되고 있다.
실질GDP가 증가하는 상승 국면에서는 경제의 움직임이 점차 활발해지면서 소비와 투자가 늘어나고, 실업은 감소하며 물가는 점차 상승한다. 동시에 이자율은 상승하고 통화량은 늘어나는 경향을 보인다. 하강 국면에서는 경제변수들이 상승 국면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인다. 실질GDP가 증가하는 상승 국면에서는 사람들의 소득이 늘어나고 소비가 증가한다. 기업 이윤도 증가하고 덩달아 투자와 고용이 증가한다. 기업의 투자 증가는 자금시장의 수요 증가를 가져오고, 이에 따라 이자율이 올라간다.
기업의 생산과 투자 확대는 신규 고용을 창출해 실업의 감소를 가져온다. 은행 등 금융기관은 기업과 소비자에 대한 대출을 늘리고 활발한 신용창조는 통화량을 증대시킨다. 늘어난 통화는 주식시장이나 부동산시장으로 흡수되어 자산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런 요인들은 총수요를 증대시키고, 총수요가 이처럼 크게 증가한다면 물가가 상승할 것이다. 물가가 오르면 인건비가 치솟게 된다. 기업들은 고용을 줄인다. 이런 메커니즘을 통해 경기가 순환·변동하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은 바로 이러한 경기 순환의 고리다. 한 나라가 갖고 있는 모든 생산요소를 정상적으로 가동해 인플레이션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생산수준이 잠재GDP다. 경기가 장기간 고공 행진을 하면 완전고용 수준의 생산량을 달성한 잠재GDP를 웃도는 현상이 발생한다.
실질GDP와 잠재GDP의 차이를 GDP 갭(gap)이라고 부른다. 잠재GDP는 경기적 실업이 0인 자연실업률 상태에서의 생산량으로 정의된다. 실질GDP와 잠재GDP의 차이는 물가폭등이나 경기침체로 나타난다. GDP 갭이 양(+)의 값이면 생산요소를 정상보다 높은 비율로 활용하고 있는 경기과열(인플레이션 갭) 상태로 볼 수 있다. 반대로 GDP 갭이 음(-)의 값이면 생산요소를 다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경기침체(디플레이션 갭) 상태로 볼 수 있다. 바로 이 메커니즘으로 경기는 순환하게 된다.
창조적 파괴를 주창한 슘페터는 경제 상황이 정상적인 수준을 정상(normal) 또는 균형(equilibrium) 상태로 보고, 경기를 정상 수준 이상(above-normal)과 정상 수준 이하(below-normal)로 구분했다. 그는 정상 수준 이상 기간을 호황기(prosperity)와 침체기(recession)로, 정상 수준 이하 기간을 불황기(depression)와 회복기(recovery)로 구분했다. 그는 경제가 정상으로부터 멀리 이탈할수록 상승세·하락세는 둔화되어 정상으로 복귀하려는 힘이 더 크게 작용한다고 갈파했다.
경기순환론에 비춰본다면 노랜딩은 환상이다. 상승하면 하락하고 하락하면 상승하는 것이 경제학의 원리다. 비행기도 마찬가지다. 한번 하늘로 올라간 비행기는 연료를 소진하면 반드시 내려오게 돼있다. 지상에 내려와 급유를 해야만 다시 오를 수 있는 것이다. 장기간 노랜딩이란 개념은 경제학에 존재하지 않는다. 비행기가 계속 공중에 머물러 있으면 기름이 떨어지는 순간 한꺼번에 추락하게 된다. 이것을 경제학에서는 하드 크래시 랜딩 또는 경착륙이라고 부른다.
미국의 대공황도 노랜딩의 착각이 빚은 인재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 수요폭발로 경기가 장기간 고공 행진을 하자 경제학계 일각에서는 경기순환론이 잘못됐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공급은 수요를 창출한다는 이른바 '세이의 법칙'이 대세로 부각됐다. 각국 정부도 노랜딩의 환상 속에 경기활성화 정책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1929년 10월 암흑의 목요일 주가가 폭락하면서 전 세계가 창졸간에 대공황으로 빠져들었다. 너무 긴 노랜딩은 결국 파탄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대공황의 교훈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