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뉴욕증시에 따르면 트럼프 당선인은 최근 팟캐스트 진행자 조 로건의 팟캐스트에서 반도체법에 대해 “정말 나쁜 거래”라고 칭하면서 강도 높은 비판하며 “10센트도 낼 필요 없이 관세를 높게 매기면 그들(반도체 회사)이 아무런 대가 없이 반도체 공장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반도체법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7월에는 “대만이 반도체 사업을 전부 가져갔다”며 우회적으로 반도체 지원법 폐기 의사까지 직접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트럼프 의지대로 반도체 지원법이 폐기될 경우 삼성전자(텍사스)와 SK하이닉스(인디애나주)의 미국 반도체 공장 건설 계획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 또 최근 원자재비와 인건비가 상승한 데다 향후 트럼프 정부가 ‘고관세’ 정책마저 펼친다면 공장 건립 비용 부담은 더욱 늘어날 수 있다. 트럼프 정부가 첨단 장비에 대한 중국 수출 규제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걱정거리다. 삼성전자 낸드플래시의 37%(지난해 기준)를 중국 시안공장에서 생산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만드는 D램의 40%는 중국 우시공장에서 나온다.중국 메모리 기업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스(CXMT),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SMIC 등에 대한 수출 규제와 장비 수입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첨단 반도체 장비 수입이 막힐 경우 중국 반도체 기업의 추격 속도도 느려질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미국 정부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에 고성능 반도체의 중국 공급 중단을 명령했다고 로이터통신 등이 보도했다. 미국 상무부는 AI 가속기나 그래픽처리장치(GPU) 가동에 사용되는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첨단 반도체에 대해 중국 수출 제한을 부과하는 내용의 공문을 TSMC에 보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TSMC가 중국 고객사들에 오는 11일부터 7㎚ 이하 반도체 주문을 받지 않겠다고 통보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자사 AI 클라우드를 위한 반도체 설계에 막대한 투자를 해온 알리바바와 바이두 등 중국 빅테크(거대 정보기술기업)들에 타격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FT는 분석했다.
이러한 결정 배경에는 미국 정부의 명령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미 상무부는 이와 관련해 아무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TSMC는 자신들은 법을 준수하는 회사라며 “수출 통제를 포함해 모든 규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시장조사업체 테크인사이트는 중국 화웨이의 첨단 AI 칩셋 ‘어센드 910B’를 분해한 결과 TSMC 프로세서를 발견했다고 밝혔다. 2022년 출시된 어센드 910B는 중국 기업에서 내놓은 가장 발전된 AI 칩셋으로 알려졌다. 이는 미 정부의 수출 통제를 위반하는 행위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미국 정부는 지난 2020년 국가안보 우려를 이유로 화웨이가 미국산 장비를 사용해 제작된 반도체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했다. TSMC는 반도체를 제조하는 데 미국산 장비에 크게 의존한다. 로이터통신은 “여러 업체를 대상으로 단속이 이뤄지고 있는 만큼 다른 회사들에서도 화웨이로의 ‘반도체 빼돌리기’가 발생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반도체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고 있는 사항은 반도체 보조금 축소다.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들은 CSA에 의거해 미국 투자에서 보조금 지원을 받지만, CSA가 축소되거나 보조금 지원 조건 등이 종래에 비해 국내 기업에 비우호적으로 결정되면 자금 압박 등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7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트럼프 2기 출범과 관련해 향후 반도체 사업 방향성과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반도체 정책 방향이 칩스법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삼성전자 와 SK하이닉스 는 CSA를 통해 각각 64억달러(9조원), SK하이닉스는 4억5000만달러(6200억원)의 보조금과 세제 혜택을 받기로 했다. 동반 진출하는 한국의 반도체 장비업체들도 보조금 대상에 포함된다. 트럼프는 꾸준히 CSA를 비판해왔다. 그는 최근 팟캐스트에 출연해 CSA에 대해 "정말 나쁜 거래"라고 말했다. 트럼프가 첨단 반도체에 보조금을 주지 않고 관세를 부과하는 식으로 바이든 정부의 보조금 정책을 뒤집는다면 이를 토대로 대규모 투자를 추진한 국내 반도체 기업은 기존 투자 전략을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원자재비 및 인건비가 급등해 비용 부담이 크게 올라 보조금 등 지원이 없으면 삼성전자(텍사스주)와 SK하이닉스(인디애나주)의 미국 공장 건립 비용은 부담이 더 커진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