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뉴욕증시에 따르면 가상화폐 대장주 비트코인이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에 힘입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며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미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비트코인 1개당 가격은 24시간 전보다 9%이상 급등한 8만6천달러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그 전날 처음 8만 달러선에 오른 데 이어 이날에는 8만6천달러선도 넘어섰다.뉴욕증시에서는 꿈의 10만달러 선 돌파도 임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이 확정되기 전인 지난 5일 오전 7만 달러에서 거래되던 것과 비교하면 가격은 약 일주일 만에 30% 이상 뛰어올랐다.
뉴욕증시에서는 현물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로 자금이 계속해서 유입되면서 가상화폐 가격을 계속해서 밀어 올리고 있다. 씨티은행 분석가는 "미 대선 이후 현물 ETF로 사상 최대 규모의 자금이 유입됐다"며 "대선 이후 이틀간 비트코인 ETF와 이더리움 ETF의 순유입액은 각각 20억1천만 달러와 1억3천200만 달러였다"고 말했다. 미 경제 매체 CNBC 방송은 "일부 분석가들은 가상화폐가 계속 상승할 것으로 본다"며 "비트코인이 연말까지 10만 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미국 연방 공휴일 '베테랑스데이'(참전용사의 날)를 맞아 채권시장은 휴장했으나 뉴욕증시는 문을 열었다. 경제 지표 발표가 없는 가운데 시장 참가자들은 '관성'에 따라 '트럼프 랠리'를 이어갔다. 대형 기술주 중심으로 일부 차익 실현 매물이 출회됐으나 전체 시장 흐름을 거스르지 않았다. 트럼프 2기 최대 수혜주로 손꼽히는 금융주들은 이날도 강세를 지속했다. JP모건·뱅크오브아메리카·시티그룹·골드만삭스·모건스탠리 모두 1% 후반에서 3%대 상승세를 보였다.
트럼프 효과로 암호화폐 시장에는 불이 붙었다. 규제 완화를 약속한 트럼프 승리에 고무돼 대표적 암호화폐 비트코인 가격이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이날 개당 8만2천선까지 돌파하면서 미국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의 주가가 16% 이상 급등했다. 주식·상장지수펀드·암호화폐 거래 플랫폼을 제공하는 로빈후드 주가도 10% 이상 뛰었다. 비트코인에 대규모 투자를 감행한 비즈니스 인텔리전스(IB) 소프트웨어 기업 마이크로스트래티지 주가는 14% 이상 올랐다.
트럼프 승리에 일조한 세계 2위 갑부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는 대선 이후 지난 5거래일간 주가가 40% 이상 폭등하며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다시 돌파했다. 테슬라는 2021년 11월 사상 처음으로 시총 1조 달러를 돌파한 뒤 2022년 1월에 재돌파한 바 있다. 일런 머스크가 설립한 우주탐사 기업 스페이스X는 트럼프와 공화당의 항공·우주·방위 산업 강화 정책의 수혜대상 중 하나로 손꼽힌다.
엔비디아 주가가 1% 이상 밀리는 등 나머지 대형 기술주들은 약세를 보였다. '매그니피센트7' 가운데 테슬라와 알파벳(구글 모기업)만 상승세, 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애플·아마존·메타(페이스북 모기업)는 하락세로 장을 열었다. 트럼프가 최대 지분을 보유한 트럼프 미디어 앤드 테크놀로지 주가는 3%대 오름세다.
트럼프는 정권 인수 작업에 착수, 2기 행정부 주요 직책 인선 결과를 내놓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수지 와일스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백악관 비서실장에 지명했다. 여성이 백악관 비서실장에 오른 것은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 1기 때 이민세관단속국(ICE) 국장 직무대행을 지낸 톰 호먼이 '국경 차르'로 선임됐다.
미국 공화당은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승리 외에도 연방 상원 다수당 지위를 4년 만에 탈환했다. 하원 다수당 지위까지 유지하면 백악관과 의회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는 소위 '레드 스윕'(red sweep)을 달성, 트럼프의 감세·규제 완화 등의 기조가 힘을 얻게 된다. CBS방송이 집계한 연방 하원 의원 선거 결과는 공화당 215석, 민주당 210석이다. 하원 다수당이 되기 위해 필요한 의석 수는 최소 218석이다. 시카고파생상품거래소그룹(CME Group)의 페드워치(FedWatch) 툴에 따르면 연준이 오는 12월 FOMC에서 기준금리를 25bp 추가 인하할 확률은 65.3%, 현수준(4.50~4.75%)에서 동결할 확률은 34.7%로 반영됐다.
유럽증시는 동반 상승세다. 독일 DAX지수는 1.35%, 영국 FTSE지수는 0.62%, 범유럽지수 STOXX600은 1.18% 각각 올랐다. 국제 유가는 급락세를 나타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 대만 TSMC 주가가 11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4% 넘게 하락하고 있다. 대만의 반도체 산업을 비판해 온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과 미 정부의 고성능 반도체 중국 공급 중단 명령 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10일 미 상무부가 AI 가속기나 그래픽처리장치(GPU) 가동에 사용되는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첨단 반도체에 대해 중국 수출을 제한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TSMC에 보냈다고 전했다.
앞서 중국 화웨이의 첨단 AI 칩셋(어센드 910B)에서 TSMC가 생산한 프로세서가 발견된 데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이는 미 정부가 통제해 온 첨단 반도체의 중국 수출을 위반하는 것일 수 있어 시장은 이번 사안의 영향을 주시하고 있다. 이번 TSMC의 수출 위반 가능성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과 맞물리면서 주가를 더 큰 폭으로 끌어내리는 모습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대선 전 "반도체 기업은 매우 부유하다"며 "그들은 우리 사업의 95%를 훔쳤고 지금 대만에 있다"고 TSMC를 겨냥한 바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