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의 47대 미국 대통령 당선으로 전후 자유주의 국제질서가 근본적인 변화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19일(현지시간) 미국 주도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한 가운데, 트럼프 2.0 시대의 돌입은 전 세계적 권위주의 부상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2024년 11월 5일 미국 대선에서 나타난 트럼프 지지 현상의 본질은 표면적인 물가 상승이나 경제적 어려움을 훨씬 넘어선다.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와 다양성 증가에 대한 문화적 반발, 전통적 가치관의 위기의식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분석했다.
백인 중심의 전통적 미국 사회가 다인종·다문화 사회로 빠르게 변모하면서, 기존 질서가 위협 받는다는 위기의식이 확산됐다. 특히 '미국다움'의 정체성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이민자 문제와 결합되면서 '대체 이론'이라는 극단적 담론을 낳았다. '대체 이론'은 이민자들을 의도적으로 유입시켜 백인들의 정치적·문화적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음모론적 시각을 반영한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2023년 공공종교연구소와 브루킹스 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2%가 "미국의 전성기는 지나갔다"고 답했다. 특히 공화당 지지자의 75%는 "1950년대 이후 미국의 생활방식이 악화됐다"고 응답했다.
이러한 인식은 단순한 향수나 보수적 성향을 넘어, 현대 미국의 근간인 다원주의와 포용성에 대한 근본적 도전으로 이어지고 있다. 배타적 정서가 정치적으로 동원되면서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인 관용과 다양성이 위협받고 있다. 이는 미국 사회의 분열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에도 중대한 도전이 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미국만의 도전이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 각국에서 자유시장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며 권위주의적 해결책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다. 2022년 기준 OECD 국가들의 평균 사회보장 지출이 GDP의 15.76%인 데 비해, 미국은 8.04%에 그쳐 이러한 불만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특히 우려되는 점은 트럼프의 재집권이 권위주의 진영의 영향력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1기 당시에도 미국과 유럽의 분열, 중동·아프리카에 대한 지원 감소로 자유진영이 크게 약화된 바 있다. 최근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G20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 배격과 자유무역 수호를 강조하며, 미국 고립주의 정책에 우려를 표명하는 국가들과의 연대를 적극 모색하고 있다. 이는 자유진영의 결속력 약화가 권위주의 진영의 발호로 이어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에도 트럼프의 재집권은 실존적 도전이 될 전망이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동맹국들에 대한 안보 공약 재검토와 강력한 보호무역 조치를 예고했다. 특히 한국의 경우 2023년 기준 대미 수출 비중이 15%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고율 관세 부과 시 상당한 경제적 타격이 우려된다.
이에 한국은 단기적으로 아세안, 인도 등으로의 수출시장 다변화와 핵심 산업 공급망 재편을 통해 리스크를 분산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내수 중심의 경제구조로 전환을 모색하는 한편, 인도-태평양 지역 내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안보 측면에서도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하되, 호주, 일본 등 역내 민주주의 국가들과 다자간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 경제안보 동맹을 구축해 공동의 도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한편,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면서도 체제의 결함을 보완하는 노력도 시급하다.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재분배를 강화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면서도 사회적 통합을 이루는 균형잡힌 접근이 요구된다.
이러한 도전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취약점을 보완하고, 보다 포용적이고 지속가능한 발전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현재의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전환할 수 있느냐는 각국의 전략적 협력과 체계적인 대응에 달려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미래는 우리가 이 도전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