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이 또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당선이 확정된 이후 유럽은 미국과의 무역마찰 우려 나토탈퇴 협박 경기침체 그리고 정치혼란 등으로 경기침체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선제대응 차원에서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3연속 금리인하이다.
성장 우려로 ECB는 새로 업데이트할 경제 전망에서 성장률과 인플레이션 추정치를 소폭 하향 조정했다. 정치적 역풍이 심해지면서 ECB는 더 까다로운 지형을 헤쳐 나가야 하는 처지에 몰렸다. 독일은 지난달 올라프 숄츠 총리의 오랜 연정이 붕괴한 후 예정보다 7개월 빠른 2월에 선거를 앞두고 있고 프랑스에서는 62년 만에 처음으로 총리 불신임이 의회를 통과했다. 다음달 취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모든 수입품에 막대한 과세를 부과한다는 계획이다. ING의 브르제스키는 "부정적인 리스크가 분명히 증가했다"며 "향후 몇 달 동안 미국 경제 정책의 잠재적 악영향과 유로존 최대 2개국의 정치적 불안정"을 지적했다.
문제는 유럽 경제의 회복력이다. 이에 ECB는 물가뿐만 아니라 경기 전망도 하향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 유럽연합(EU) 집행기관인 유럽위원회가 11월 발표한 경제전망에서 유로존의 2025년 실질 성장률은 1.3%로 지난 5월보다 0.1%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국가별로는 독일이 0.7%, 프랑스가 0.8%로 1%대에 미치지 못했다. 파리 하계올림픽 특수의 반동도 있지만, 기업들의 체감경기는 여전히 냉랭하다. 유로존 역내 총생산(GDP)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독일과 프랑스만 해도 ECB의 금리 인하가 늦어져 경기가 침체하면 물가가 과도하게 하락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유럽 경제 내에서 더 큰 불확실성을 가중시키고 있는 것은 트럼프 당선인이 검토하고 있는 관세다. 그는 앞선 선거 기간 동안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수입품에 원칙적으로 10~2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으며, 내년 1월 취임 후에는 중국산 거의 모든 수입품에 10%의 추가 관세, 멕시코와 캐나다에도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이 최소 10%의 일률 관세를 도입하고 중국과 유로존도 상호 무역에서 같은 비율의 관세를 부과하거나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면 세계 GDP가 2025년 0.8%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트럼프 당선인은 그간 상대국에 요구사항을 들이대고 양보를 이끌어내는 거래 외교를 구사해왔기에 이번에 유럽도 예외일 수 없을 전망이다. 트럼프 당선인 집권 1기 당시 2018년에는 안보를 이유로 EU산 철강과 알루미늄에 추가 관세를 부과한 전례가 있다. 당시 EU도 보복관세로 맞대응했다.
EU는 보복 전쟁의 재발을 피하고자 트럼프와의 무역 협상을 모색하고 있다. 라가르드 ECB 총재도 “전 세계 GDP 감소를 유발한다”며 “보복이 아닌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 경제 내 관세가 미칠 영향이 불분명하다는 점은 골칫거리다. ECB 이사회 일원이자 피에르 분쉬 벨기에 중앙은행 총재는 “유로화 약세가 진행될 수 있다”며 결과적으로 관세의 영향이 “약간의 인플레이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가 유럽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해 2025년 금리 인하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 ECB 이사 중 한 명은 “인플레이션 둔화와 경기침체가 동시에 온다면 어느 시점에 금리 인하를 가속화해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