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미국에서 불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에 대한 전례 없는 고강도 단속 및 추방 계획과 아울러 이른바 ‘출생시민권’의 폐지 방침을 예고했기 때문이다.
◇ 트럼프 대통령직 인수위, 출생시민권 폐지 위한 행정명령 마련 중
15일(이하 현지시각)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트럼프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출생시민권를 폐지하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취임 후 집행하기 위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폴리티코는 “아직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인수위가 마련 중인 출생시민권 폐지에 관한 행정명령은 불법 이민자의 자녀와 미국에 단기 체류하는 외국인에 대한 시민권 부여를 금지하는 내용이 핵심인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이 행정명령에 따라 출생시민권이 폐지된다면 미국 이민정책이 거의 뒤집히는 수준의 후폭풍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미국의 출생시민권 제도는 미국 수정헌법 제14조에 따라 보장된, 이른바 ‘속지주의’에 따른 헌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이에 따라 그동안 미국에서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자동으로 시민권이 부여됐다.
이 제도는 미국의 노예 해방 이후 노예 신분이었던 사람과 이들의 자손에게 시민권을 보장하려는 목적으로 처음에 만들어졌으나 그 이후 미국에 불법으로 체류 중인 외국인의 경우에도 적용돼 이들이 자녀를 출생할 경우 이들 자녀에게도 자동으로 시민권이 부여됐다.
그러나 지난 1990년대 이후 보수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불법 이민자를 줄이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이 제도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고 트럼프도 지난 2015년 대권 도전에 나서면서 이 문제를 포함해 반이민 정책을 표방하고 나섰다.
그러나 지난 2020년 처음 대통령으로 선출된 트럼프가 행정명령 등을 통해 실제로 이 제도의 폐지를 단행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이달 초 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한 뒤 트럼프가 이 제도의 폐지를 추진하고 나선 것.
불법 체류자는 물론이고 이들의 자녀들은 전에 없는 위기에 놓였다.
출생시민권이 폐지되면 수백만명으로 추정되는 이민자의 자녀들이 졸지에 무국적자가 돼 추방될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 미 의회 또는 연방대법원에서 결론 날 가능성 커
그러나 트럼프가 이 행정명령을 발동하더라도 미 의회 또는 연방대법원에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는 출생시민권이 헌법에 의해 보장된 권리가 아니라며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통한 폐지가 가능하다는 입장이지만 출생시민권은 수정헌법 제14조에 규정된 권리여서 해당 조항을 수정하는 헌법 개정이 미 의회에서 이뤄져야 가능한 일이라서다.
미 의회의 개헌과는 별개로 행정명령에 불복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대법원으로 끌고 갈 가능성도 거의 100%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특히 트럼프는 수정헌법 제14조에 나와 있는 출생시민권 보장 관련 조항 가운데 ‘미국의 관할권 아래’가 향후 논란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는 불법 이민자의 자녀는 미국의 관할권에 속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이민자의 자녀를 미국의 관할권 아래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고 그동안 시민권이 부여돼왔기 때문이다.
폴리티코에 따르면 트럼프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이 문제가 연방대법원으로 가더라도 관할권 조장에 관한 새로운 해석이 나올 가능성에 기대를 거는 분위기다.
미국 보수진영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한스 폰 스파코프스키 연구원은 “트럼프가 출생시민권 폐지에 관한 행정명령을 내리더라도 반대하는 측이 연방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은 매우 크다”면서 “그러나 연방대법원 판사들이 이 문제를 들여다보면 트럼프의 판단에 손을 들어줄 것으로 예상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정헌법 제14조에 규정된 ‘미국의 관할권 아래’는 출생한 국가의 국적을 부여하는 속지주의에 따라 굳어진 개념일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수백만명에 달하는 대상자를 무국적자로 만드는 가혹한 처사이고 이민자의 나라로 통해온 미국의 위상을 하루아침에 떨어뜨리는 일이라는 점에서 보수진영의 기대대로 판단이 나올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미 연방대법원이 이 문제에 대한 판단을 마지막으로 내린 시점은 지난 1898년이다. 당시 대법원은 출생시민권이 합헌이라고 판정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