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레거시 칩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레거시 칩이란 28나노 이상의 공정을 통해 제조되는 반도체 칩을 뜻한다. 지난해 8월까지 전 세계에 공급되는 반도체 중 3분의 2가량이 2005년 이전에 상용화된 기술이 채택된 레거시 칩이었다.
중국 정부와 반도체 업체는 레거시 칩 생산 확대를 위한 팹(공장) 신설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중국이 레거시 칩 증산 공세로 미국과 동맹국의 반도체 기업이 파산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NYT가 전했다. 이렇게 되면 미국이 중국산 레거시 칩 공급망에 의존해야 하고, 중국산 칩이 미국의 인프라와 무기체계에 널리 사용되면 사이버 보안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현재 무역확장법 232조 또는 통상법 301조 관련 법률에 근거해 중국산 레거시 칩에 대한 조사를 검토하고 있다. NYT는 이 중에서 통상법 301조 적용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트럼프는 집권 1기 시절인 2018년 무역확장법 제232조를 근거로 연방 의회 승인을 거치지 않고 수입 철강·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했었다. 1962년에 제정된 무역확장법 제232조는 미국의 통상 안보를 해친다고 판단되면 수입량 제한, 고율 관세 부과 등을 할 수 있도록 했다.
통상법 301조는 1974년 제정한 통상법 중 불공정 교역에 대한 구제 관련 조항이다. 이 조항은 무역협정 위반이나 통상에 부담을 주는 차별적 행위 등 불공정 무역 관행 국가에 대해 미국 대통령이 단독으로 관세 부과를 비롯한 각종 무역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했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은 이에 앞서 지난 2일 반도체 수출통제 조치 개정안을 발표했다. 여기에는 중국 등에 내년부터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출을 금지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미 상무부의 이번 조치는 해외직접생산품규칙(FDPR)에 근거를 두고 있다. 미국 외 제3국에서 생산된 HBM 및 반도체 장비라도 미국산 소프트웨어·장비 등이 사용됐다면 이를 준수해야 한다. SK하이닉스는 HBM을 거의 전량 미국에 수출하고 있으나 삼성전자는 중국 판매량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기연 글로벌이코노믹 워싱턴 특파원 ku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