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속 中 기업들 중동행 가속...사우디, IT산업 육성 기대
중국 최대 PC제조사 레노버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규모 생산기지를 구축한다. 레노버는 9일(현지시각) 사우디 국부펀드 PIF(공공투자기금)의 자회사인 알라트로부터 20억 달러를 투자받아 PC 및 서버 제조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이번 투자는 지난해 5월 합의된 내용의 후속 조치로, 레노버는 2026년까지 연간 수백만 대 규모의 PC와 서버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가동할 예정이다. 또한, 수도 리야드에 중동·아프리카 지역본부를 설립하고 전용 연구개발(R&D) 팀도 구성해 현지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할 계획이다.
레노버는 이번 사업 확장을 통해 약 1000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으로 예상한다. 이는 사우디의 일자리 창출과 기술 이전이라는 목표와도 부합한다.
이번 결정의 배경에는 미·중 갈등 심화로 인한 중국 기업들의 자금조달 어려움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과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중국 기업들은 새로운 투자처를 모색해왔고, 중동이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우디 입장에서도 이번 투자는 의미가 크다. 사우디는 '비전 2030' 계획을 통해 석유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다각화하려 하고 있으며, PIF를 통한 첨단산업 투자는 이러한 전략의 핵심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레노버의 사우디 진출이 중국 기업들의 새로운 글로벌 전략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중동이 미·중 갈등 속에서 새로운 기술 허브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번 투자는 단순한 생산기지 이전을 넘어 R&D센터 설립까지 포함하고 있어, 사우디의 기술역량 강화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한다. 또한, 중동과 아프리카 시장 공략을 위한 전략적 거점 역할도 기대된다.
다만 일각에서는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기술 인력 확보의 어려움 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레노버가 이러한 과제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성공적인 현지화를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향후 레노버의 사우디 진출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다른 중국 기업들의 중동 진출도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글로벌 기술산업의 지형 변화와 함께 중동의 산업 구조 전환에도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다.
레노버의 사우디 진출은 한국 기업들에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시사한다.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동이 새로운 글로벌 기술 허브로 부상하고 있어, 한국 기업들도 중동 시장에 대한 전략적 접근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가 20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단행한 점은 중동 국가들의 적극적인 기술산업 육성 의지를 보여준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한국의 IT 기업들은 중동의 풍부한 자금력과 시장 잠재력을 활용한 새로운 성장 기회를 모색할 수 있다. 또한, 현대차, 기아 등 제조업체들도 중동을 단순한 수출시장이 아닌 전략적 생산기지로 고려해볼 시점이다.
다만 중동 진출 시에는 현지의 기술 인력 확보,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 문화적 차이 극복 등 다양한 과제에 대한 세밀한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중동의 현지화 요구와 기술이전 압박에 대한 대응방안도 미리 준비해야 할 것이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