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격화 속 '이중 용도' 규제 강화...동남아·인도 생산 차질 우려
미·중 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중국이 애플 등 미국 기술기업의 수출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면서 공급망 이전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이중 용도 기술에 대한 수출 통제가 강화되면서 동남아시아와 인도로의 생산 장비 및 자재 선적이 지연되고 있어 기업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14일(현지시각) 일본의 경제신문 닛케이 아시아가 보도했다.중국은 지난해 12월 초 이중 용도 기술 수출 통제를 강화했다. 이중 용도 기술은 군사적 목적과 민간 목적 모두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한다. 이로 인해 베트남, 인도 등으로 향하는 생산 장비 및 자재의 수출 검사가 까다로워졌고, 선적이 며칠 또는 몇 주씩 지연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애플 공급업체 관계자는 "최근 세관 검사가 훨씬 엄격해졌다"며 "이는 중국 이외 지역으로의 생산 확대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미국 기업 관계자는 "일부 품목은 이중 용도 목록에도 없는데, HS 코드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엄격한 검토를 받고 있다"며 "심지어 스마트폰 속도 테스트 장비까지 군사적 용도로 의심받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수출 검사를 강화한 배경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폭탄' 위협이 있다고 분석한다. 트럼프 당선인은 모든 중국산 제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했고, 이에 따라 HP, 델,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미국 기업들은 중국에서의 생산 비중을 줄이고 동남아시아와 인도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고 있다.
중국의 수출 검사 강화는 미·중 갈등이 격화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최근 첨단 인공지능 칩에 대한 중국의 접근을 차단하는 새로운 규제를 발표했고, 중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갈륨, 게르마늄 등의 미국 수출을 금지했다.
미국 기업들은 지난 5~6년 동안 동남아시아와 인도에서 생산능력을 확대해 왔지만, 여전히 중국산 자재와 장비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중국의 수출 검사 강화는 기업들의 공급망 재편 계획에 차질을 빚을 뿐만 아니라, '중국 리스크'에 대한 고민을 더욱 키우고 있다.
리드 스미스의 탄 알바이라크 변호사는 "미국과 중국의 체제가 충돌하면서 기업들은 공급망 관점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완전한 디커플링은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차기 트럼프 행정부는 민감한 품목의 생산에 대한 '전략적 디커플링'을 압박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의 수출 검사 강화가 단기적인 현상에 그칠지, 아니면 미·중 갈등 장기화와 함께 지속할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하지만 이번 조치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하며 기업들의 고민을 깊어지게 하고 있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