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관련 산업에 대한 규제 강화를 서두르고 있는 가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D램 시장에서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로 인해 글로벌시장 점유율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삼성과 마이크론이 수세에 몰릴지 주목된다.
닛케이아시아에 따르면, 15일 5년 만에 중국의 글로벌 메모리 칩(D램) 시장 점유율은 사실상 0%에서 5%로 증가했으며 업계 관계자들은 2025년 해당 분야 글로벌 리더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의 점유율을 무섭게 위협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성장의 핵심은 중국 최대 메모리 제조업체인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다. 지난 2년간 베이징과 허페이에서 생산 능력을 확장한 CXMT는 거의 모든 유형의 전자 기기에 필수적인 D램 칩의 상업적 양산에 성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AI 컴퓨팅을 위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칩을 생산하기 위한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중국이 D램 분야에서 점유율을 늘려가게 된 것은 미국의 규제가 계기가 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이 2022년부터 국가 안보 등을 이유로 중국의 첨단 D램 칩 제조 기계 구매를 제한하기 시작했는데, 이것이 오히려 중국의 관련 업계에 대한 자립 의지를 강화했다는 분석이다.
2018년 미국이 블랙리스트에 올린 중국 칩 제조업체인 푸젠진화(FJICC)가 화웨이의 지원 아래 가전제품용 저급 D램을 소량 생산하기 시작한 이후 화웨이가 지원하는 또 다른 D램 제조업체인 스웨이슈어는 지난해 12월 미국 블랙리스트에 추가될 정도로 중국 내 관련 업계는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스웨이슈어 또한 D램 제조는 물론 HBM용 스태킹 기술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전문가들은 닛케이아시아에 중국이 웨이퍼 생산 능력만 놓고 보면 2024년 전 세계 D램 칩 생산량의 약 10%에 해당하는 양을 생산할 수 있다고 밝혔다. 생산 품질은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실제 시장 점유율은 훨씬 낮지만 이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카운터포인트 리서치 기술 분석가 브래디 왕은 “중국의 신규 업체들이 D램 공급을 늘리면 기존 업체들의 점유율을 위협할 수 있으며, 단 몇 퍼센트만 증가한다면 글로벌시장 전체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트렌드포스 기술 분석가 엘리 왕은 “생산 능력, 생산 품질, 실제 시장 영향력을 고려할 때 중국 업체들의 합산 시장 점유율은 작년 5%에서 올해 10%로 급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D램 분야에서 급성장할 수 있는 기반은 최대 시장 중 하나인 자국 시장에서 큰 이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중국 디바이스 및 전자제품 제조업체들은 현지 공급업체가 등장하면 우선적으로 채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세계 시장 점유율이 5~10%내외에 그친다 하더라도 중국 내 점유율이 훨씬 더 높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시장전문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중국 기업은 58.5% 이상의 점유율로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또 트랜드포스 데이터에 따르면 중국 TV 제조업체는 전 세계 시장의 40% 이상을 장악하고 있으며, 컴퓨터 제조업체는 약 30%를 점유하고 있다.
관련 업계 전문가는 닛케이아시아를 통해 “CXMT가 주요 글로벌 업체보다 20~30%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경우도 있다”라며 “모든 프로젝트에 적용되는 것은 아니더라도 이러한 유형의 가격 할인과 점유율 확장은 이미 시장 리더들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대만의 소규모 업체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고, 이제는 글로벌 상위 업체들에게도 도전하기 시작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 기업과 기관은 가격 인하 외에도 현지에서 만든 칩을 더 많이 구매하면 정부 보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외국 공급업체에 비해 또 다른 이점을 가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주요 업체들의 위기감이 거세지고 있다. 산제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실적 브리핑에서 중국의 점유율 성장을 인정하면서 “주로 중국의 저가형 소비 시장에서 현지 업체의 성장이 두드러지고 잇는 만큼 마이크론은 데이터 센터에 사용되는 등의 더 높은 등급의 고성능 D램 칩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2025 회계연도 마이크론 매출의 약 10%는 중국 업체들과 직접 경쟁하는 부문에서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 세계 5위 D램 제조업체인 대만의 난야 테크놀로지의리 페이잉 사장은 지난해부터 중국에서의 매출이 감소했다고 밝히며 “CXMT와의 경쟁은 스마트폰용 저전력 D램에서 벌어지고 있다”라고 소개했다.
닛케이아시아는 업계 소식통을 인용해 “삼성과 SK하이닉스는 기존 시장에서 중국 제조업체의 역량을 인정하지만 수익성이 더 높은 시장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우려하지 않고 있다”라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삼성 메모리 칩 관계자는 “삼성은 레거시 제품이 큰 수익을 내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을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라며 “삼성은 HBM을 포함한 고용량 제품에 집중하고 있다”라고 소개했고, SK하이닉스도 HBM과 기업용 솔리드 스테이트 드라이브와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다만 지정학적 요인이 중국의 D램 시장 점유율 상승에 변수가 될 전망이다. 미국 국방부는 12월 수출 통제를 시작하며 CXMT를 미국 무역 블랙리스트에 포함시키지 않았지만, 중국 군대와 연계되어 잠재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회사로 지정했다.
또 한편으로는 기존 업체들의 노력도 주목된다. 마이크론은 2023년 중국 정부로부터 메모리 제품의 보안 위험에 대한 조사를 받은 이후 시안 단지에 향후 몇 년 동안 칩 패키징을 위해 43억 위안(5억9000만 달러)을 투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SK하이닉스는 이미 중국 우시에서 대규모 D램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삼성은 시안에서 상당한 규모의 낸드 플래시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삼성과 SK하이닉스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 갈등 속에서도 첨단 칩 생산 기기를 중국으로 수입할 수 있는 면제권을 받은 상태다.
이에 대해 트렌드포스 애널리스트 왕은 “지난 몇 분기 동안 레거시 D램 가격이 상대적으로 약세를 보였으며 적어도 몇 분기 더 약세가 지속될 수 있다”라며 “가장 취약한 시장 부문은 중저가 제품용 D램으로, 중국 업체들이 고사양 스마트폰과 서버용 고사양 제품에 대한 샘플을 보내기 시작했지만, 고객 검증에 시간이 좀 더 걸릴 수 있는 만큼 시장 재편은 아직 더 두고봐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용수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iscrait@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