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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취임 첫날 행정명령 " 비트코인 준비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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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취임 첫날 행정명령 " 비트코인 준비자산"

트럼프/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트럼프/사진=로이터
"비트코인은 한마디로 사기(Scam)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말이다. 트럼프는 2021년 6월 7일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비트코인을 싫어하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비트코인은 사기처럼 보인다"고 답변했다. 그는 이 폭스 인터뷰에서 "달러가 세계의 화폐가 되기를 원한다. 이것이 내가 항상 강조해오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비트코인은 미국 달러와 경쟁하는 또 다른 통화이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또 비트코인이 정부 규제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는 "비트코인을 매우 강도 높게 규제해야 한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비트코인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19년 7월에도 트위터를 통해 "자신은 결코 비트코인 지지자가 아니다"라고 역설한 바 있다.

그랬던 트럼프가 지금은 비트코인을 미치도록 사랑하는 광팬으로 변했다. 트럼프는 미국 대선을 눈앞에 두었던 2024년 7월 테네시주 내슈빌에서 열렸던 '비트코인 연례 콘퍼런스'에 참석해 친(親)비트코인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비트코인을 국가 전략 자산으로 비축하고, 또 미국이 비트코인 슈퍼파워가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는 이어 미국이 가상자산의 수도가 되게 할 것이라며 정부 차원에서 비트코인을 매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선에서 승리하면 친비트코인 대통령이 되겠다는 공약이었다. 그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취임 100일 내 친가상자산 규칙을 만들겠다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취임 첫날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을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게리 겐슬러 위원장은 미국 가상자산 규제의 화신으로 꼽히는 인물이다.

트럼프는 왜 가상화폐에 대한 입장을 바꾸었을까? 물론 선거에서 한 표라도 더 얻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 나름의 경제적 논리를 제시하고 있다. 그 첫째가 재정적자 해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요즘 미국 가상화폐 업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가상자산은 단연 스테이블 코인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미국 달러와 1대1로 연동되는 디지털 자산이다. 이를 발행하려면 반드시 담보로 미국 달러나 국채를 보유해야 한다. 스테이블 코인의 발행이 늘면 그 담보로 활용되는 국채 판매량이 늘어나게 된다. 재정적자나 국가부채로 인한 부족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국채를 발행해야 하는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스테이블 코인이 고마울 수밖에 없다. 비트코인의 활성화는 스테이블 코인의 수요를 끌어올린다. 스테이블 코인이 더 많이 발행되면, 발행사들은 더 많은 미국 국채를 담보로 구매하게 된다. 결국 국채 수요가 증가하고, 이는 정부가 안정적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된다. 결국 비트코인 지지는 스테이블 코인을 통한 미국 경제 강화 전략과 연결될 수 있다.
트럼프가 비트코인을 사랑하는 쪽으로 선회하게 된 둘째 경제적 논리는 비트코인을 통해 탈중앙화된 금융 시스템을 추구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트럼프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CBDC)를 강하게 비판해 왔다. 비트코인을 지지함으로써 중앙은행의 권력을 견제하고 "민간 주도 금융을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셋째는 기술 혁신이다. 암호화폐는 혁신 기술과 연결돼 있다. 비트코인을 지지하면 "미국이 글로벌 혁신 경제를 주도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강화할 수 있다. 비트코인은 금융 자산을 넘어 새로운 세대와 기술 팬들에게 상징적인 존재다. 젊은 세대와 기술 지향적인 유권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 트럼프가 비트코인을 의도적으로 띄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가 비트코인을 지지함으로써 노릴 수 있는 넷째 효과는 비트코인으로 미국 달러의 글로벌 지배력을 강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사실상 디지털 형태의 미국 달러로 볼 수 있다. 이를 전 세계가 사용한다면, 미국 달러의 영향력이 더욱 강력해진다고 보고 있다.

트럼프 가족들은 이미 가상화폐 사업에 깊숙이 빠져들고 있다. 트럼프의 아들들은 금융업계에서 은행 등의 매개를 없애 비용을 낮추고 직접 거래를 활성화하는 탈중앙화 금융 프로젝트, 디파이(De-Fi) 프로젝트인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을 홍보해 왔다.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와 에릭 트럼프가 주도하고 있다. 그 웹사이트에는 ‘사용자들에게 안전하고 높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암호화폐 투자를 위한 최고의 도구와 연결하는 최첨단 탈중앙화 금융 플랫폼’으로 설명하고 있다. 트럼프는 기술 기반의 대체불가능토큰(NFT)을 이용해 선거자금 모금에 나선 바 있다. ‘아메리카 퍼스트 컬렉션’이라는 이름의 카드 형태로 된 트럼프 NFT는 한 장당 99달러(약 13만원)로, 슈퍼 히어로 모습의 트럼프, 금빛 운동화를 신은 트럼프 등 50가지의 종류가 있다. 여러 장을 구매할 때마다 특별한 선물까지 제공하면서 트럼프 지지자들의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트럼프 일가의 암호화폐 사랑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아내 멜라니아 트럼프도 빠질 수 없다. 멜라니아 여사는 여러 개의 NFT 컬렉션을 내놓았다. 솔라나 블록체인에서는 매칭 NFT가 있는 어머니날 목걸이를 발표해 판매하기도 했다. ‘그녀의 사랑과 감사’라는 이름의 이 목걸이는 이름과 이니셜, 기념일을 새겨 넣은 도금 목걸이 겸 NFT로 우리돈 약 40만원에 판매됐다.

트럼프는 비트코인·리플·이더리움 등 가상화폐를 MAGA 차원에서 집중 육성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당선 후 SNS인 '트루스소셜'에 올린 글에서 "가상화폐와 함께 우리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가상화폐=MAGA"라는 특별 메시지다. 트럼프는 비트코인이 10만 달러를 돌파하자 "비트코인 발행자들에게 축하를 보내며 비트코인을 10만 달러로 끌어올리는 데 도움을 준 것에 대해 감사한다"고 썼다. 트럼프는 대표적인 친암호화폐 인사인 폴 앳킨스 전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을 신임 위원장으로 지명했다. 쿠슈부 쿨라르 라이트닝벤처스 분석가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규제 개혁으로 올해는 비트코인 시장에서 슈퍼 사이클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톰 리 펀드스트랫 공동 창업자는 비트코인 가격이 최대 25만 달러에 이를 수 있다고 예측한다. 가상화폐 업계는 트럼프가 비트코인 시세를 폭발시켜 줄 것으로 믿고 있다.

블룸버그는 비트코인 시세 전망과 관련해 "트럼프 행정부가 전략 자산 비축 등 암호화폐 공약을 어느 정도 이행하느냐에 달려 있다"며 "비트코인 랠리가 지속될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국가 전략 자산으로 모았다가 시세가 하락하면 큰 낭패를 볼 수도 있다. 트럼프가 이 리스크를 과연 감수할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공약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입법 등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사회적 공감대도 형성돼야 한다. 이 과정도 만만치 않다. 블룸버그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9%가 2025년 손실 가능성이 가장 큰 투자자산으로 비트코인을 꼽고 있다. 트럼프의 약속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셈이다. 트럼프의 비트코인 사랑은 정말 진심일까.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