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학 분야의 권위자로 유명한 티모시 가튼 애쉬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최근 영국 일간 가디언에 낸 기고문에서 “트럼프주의(Trumpism)는 새로운 형태의 거래 중심주의(transactionalism)의 상징”이라면서 “이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직면한 새로운 도전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의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서 탈피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중심으로 한 국가 이익 최우선 전략을 강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으나 애쉬 교수는 이를 미국발 거래 중심주의의 강화로 해석한 셈이다.
그는 트럼프가 현재 그린란드를 사들이겠다고 밝히는 동시에 중미 파나마 운하에 대한 소유권을 되찾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은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거래 중심 외교”를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연결된 맥락으로 옥스퍼드대와 유럽외교관계위원회(ECFR)가 최근 공동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은 트럼프의 백악관 복귀에 대해 큰 우려를 표했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폴란드 등 유럽 9개국에서 미국을 ‘동맹’으로 간주한 응답자는 평균 22%에 불과했다. 반면에 51%는 미국을 ‘필요한 파트너’로 봤다. 이는 동맹으로서의 유럽과 미국 간 관계가 약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가튼 애쉬 교수는 “이같은 여론조사 결과는 유럽과 미국 간 관계가 점점 더 기능적인 수준으로 축소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했다.
반면에 이번 조사 결과 인도, 사우디아라비아,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서는 트럼프의 복귀가 자국과 세계 평화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응답이 다수를 차지해 대조를 이뤘다는 지적이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는 자국 중심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예상되는 트럼프 시대의 공백(?)을 기회로 삼아 새로운 국제 질서를 구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관측이다.
이번 여론조사에서도 인도와 터키를 포함한 다수의 국가는 푸틴의 러시아를 "수용 가능한 국제 파트너"로 간주했으며, 다가올 10년 동안 러시아의 영향력이 더 강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가튼 애쉬 교수는 "유럽과 미국의 동맹 약화는 중국과 러시아가 더욱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이는 특히 우크라이나, 대만, 남중국해와 같은 지역에서의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따라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입장에서는 트럼프 2.0 시대를 맞아 △이상적인 세계관 대신 냉혹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각국의 특수한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맞춤형 외교를 추구하는 ‘현실 직시’의 자세 △경제, 환경,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존의 가치와 원칙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실용적인 협력을 병행하는 ‘거래적 외교의 수용’ △중국, 러시아, 인도 등과의 관계에서 양자택일식의 냉전 논리를 버리고 유연한 정책을 추구하는 ‘다극화 세계에 대한 적응’ △유럽 국가들이 내부적으로 덜 거래적이면서도 외부 세계와의 관계에서는 더욱 거래적으로 접근하는 ‘유럽의 단결 강화’를 지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가튼 애쉬 교수는 “트럼프 시대의 도래는 유럽과 자유민주주의 국가들로 하여금 새로운 국제 질서에 적응하고, 협력의 방식을 재정립하도록 강요할 것”이라면서 “유럽이 단결하지 않는다면 개별 국가들의 자국 중심적 행동은 결국 국제 사회에서의 영향력 상실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