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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한겨울 추운 날씨, 더 이상 ‘전기차 배터리의 적’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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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한겨울 추운 날씨, 더 이상 ‘전기차 배터리의 적’ 아니다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독일의 라인메탈이 개발한 전기차용 히트펌프 시스템. 사진=라인메탈이미지 확대보기
세계적인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인 독일의 라인메탈이 개발한 전기차용 히트펌프 시스템. 사진=라인메탈
겨울철의 추운 날씨가 전기차 배터리에 치명적인 영향까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성능을 저하시킨다는 것은 그동안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워싱턴포스트(WP)는 최근 히트펌프 기술의 도입으로 전기차의 성능이 큰 폭으로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23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전기차에도 히트펌프가 적용되면서 추운 날씨에서도 배터리 소모가 크게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의 전기차 배터리 성능 추적업체 리커런트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전기차는 온도가 섭씨 0도로 떨어질 때 주행거리가 약 20% 감소한다. 추운 날씨에 차량 내부 난방을 위해 배터리를 추가로 소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리커런트는 “히트펌프를 장착한 전기차의 경우 이 같은 주행거리 손실이 절반 수준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리커런트의 앤디 가버슨 연구 책임자는 “히트펌프 덕분에 전기차 운전자들이 겨울철 날씨에 대해 갖고 있는 우려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히트펌프를 사용하는 전기차는 기존 전기 저항식 히터를 사용하는 모델에 비해 배터리 소모가 훨씬 적어 동결 상태에서도 주행거리 감소를 11% 수준으로 낮출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리커런트는 미국 전역에서 1만8000대의 전기차를 대상으로 온도와 배터리 성능 간 상관관계를 조사해 20개 주요 전기차 모델의 주행거리 손실 정도를 순위로 발표했다.

이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21년 이후 히트펌프를 도입한 테슬라 모델S의 경우 히트펌프가 없는 이전 모델에 비해 추운 날씨에서 주행거리 손실이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리커런트는 “히트펌프를 장착한 전기차가 대체로 추운 날씨에 더 나은 성능을 보였지만 배터리 설계와 같은 다른 요인도 모델별 성능 차이에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미국자동차협회(AAA)의 그렉 브래넌 이사는 “히트펌프는 온화한 기후를 가진 지역에서는 매우 유용하지만 극한의 추운 지역에서는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히트펌프는 섭씨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질 경우 성능이 급격히 저하돼 기존 전기 저항식 히터로 전환된다는 것. 따라서 북미 중서부처럼 한겨울 낮 기온이 한 자릿수에 머무는 지역에서는 히트펌프의 이점이 크게 줄어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에 겨울철 낮 기온이 섭씨 0도에서 5도 사이에 머무는 온화한 지역에서는 히트펌프를 사용하는 전기차가 상당한 이점을 제공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브래넌 이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의 기온이 이 정도 범위에 속한다는 점에서 히트펌프는 많은 전기차 운전자에게 큰 혜택을 줄 것”이라고 밝혔다.

추운 날씨에서 전기차 배터리 성능이 떨어지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배터리 내부의 리튬이온이 낮은 온도에서 느리게 움직여 효율이 떨어진다. 둘째, 추운 공기가 밀도가 높아져 차량의 공기저항이 증가한다. 이는 내연기관 차량에도 동일하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배터리 성능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은 차량 내부 난방이다. 내연기관 차량은 엔진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난방에 사용할 수 있지만 전기차는 배터리 전력을 난방에 직접 사용해야 한다. 지난 2019년 AAA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전기차의 추운 날씨 주행거리 감소의 약 75%가 난방 시스템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히트펌프는 기존 전기 저항식 히터와 달리 주변의 열을 이동시켜 난방을 제공하는 기술로 에너지 소모가 적어 배터리 사용량을 절감해 주행거리를 더 늘릴 수 있게 한다. 과거에는 자동차에 흔히 사용되지 않았지만 엔진이 없어 별도의 난방 장치를 필요로 하는 전기차의 보급이 확대되면서 점차 널리 채택되는 부품이 되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