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보호무역주의를 강화하면서 글로벌 무역 질서가 재편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 멕시코, 중국을 겨냥한 대규모 관세 조치를 발표하면서 글로벌 무역 전쟁이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며 "미국과 무역 장벽이 높아질수록 다른 국가들이 새로운 경제 협력체를 구축하는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고 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해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그는 첫 번째 임기 때 직접 체결한 북미무역협정(USMCA)을 뒤집는 이같은 조치를 단행하면서 "멕시코와 캐나다가 미국을 불공정하게 대우했다"고 주장했다.
◇ EU, 남미·아시아와 잇따라 무역 협정 체결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강화에 맞서 EU는 최근 두 달간 세 건의 주요 무역 협정을 체결했다. EU는 지난해 12월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로 구성된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과 25년간 논의해온 무역 협정을 마무리했다.
NYT는 “이 협정이 발효되면 세계에서 가장 큰 자유무역지대 중 하나가 형성되며 8억5000만명의 소비자가 연결될 예정”이라고 전했다.
이어 EU는 스위스와 새로운 무역 협정을 체결했고, 멕시코와도 기존 무역 협정을 강화하는 조치를 단행했다. EU는 또 13년간 중단됐던 말레이시아와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역시 재개했다.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에서 "EU는 규칙을 준수하며 공정한 무역을 실천하는 파트너"라며 "우리의 무역 협정에는 숨겨진 조건이 없다"고 강조했다.
◇ 브릭스 확대…미국 없는 경제블록 확산
미국을 배제한 글로벌 경제 협력도 속도를 내고 있다.
지난달 인도네시아가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중심으로 구성된 브릭스에 정식 가입하면서 브릭스는 전 세계 인구의 절반과 전 세계 경제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경제 협력체로 위상이 커졌다. 태국, 카자흐스탄, 볼리비아 등 8개국도 가입을 추진하고 있다.
또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은 오는 5월 걸프협력회의(GCC)와 정상회담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 회담에는 중국도 초청됐다. 중국은 별도로 아세안과의 기존 무역 협정을 확대 개편할 계획이며 인도와의 경제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영국 역시 지난해 12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며 미국과 무역에서 발생하는 불확실성을 줄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CPTPP는 일본, 캐나다, 멕시코, 호주, 베트남 등 11개국이 포함된 대규모 경제 협력체다. 영국 정부는 "EU와의 무역 관계도 재정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글로벌 무역 질서, 미국 없이 재편 움직임
미국이 자국 중심의 보호무역 기조를 강화하면서 세계 경제는 새로운 무역 블록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이콥 커크고르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은 "미국을 배제한 경제 협력 네트워크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며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는 결국 글로벌 경제 구조를 바꾸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시아에서는 지역 내 무역이 전체 거래의 60%를 차지하며,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무역 경로가 아시아 지역에서 형성되고 있다. HSBC 글로벌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대아세안 수출 규모는 미국 수출을 초과했다. 중국과 브라질 등 남미 국가 간 무역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인도 역시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지난 2022년 영국을 제치고 세계 5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인도는 디지털 서비스 수출을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맥킨지 글로벌연구소는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인도는 일본, 호주, 유럽 등 다국적 기업들의 글로벌 역량센터(GCC)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페르시아만 산유국들도 미국을 넘어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 국가로의 원유 수출을 확대하고 있다. 걸프지역 원유 및 가스 수출의 70% 이상이 아시아로 향하고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는 중국과 인도와의 무역 협력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