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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트럼프 상호관세 정말 무서운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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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진단] 트럼프 상호관세 정말 무서운 이유

"한-미 FTA 사실상 폐기"… 뉴욕증시 비트코인 리플 원달러환율 금값 대란
트럼프 상호관세 행정명령/사진 로이터 이미지 확대보기
트럼프 상호관세 행정명령/사진 로이터
[긴급진단} 트럼프 상호관세 행정명령 "한-미 FTA 사실상 폐기" … 뉴욕증시 비트코인 원달러환율 대란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끝내 시작됐다. 14일 뉴욕증시와 백악관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각국의 관세 및 비관세 장벽을 두루 고려해 '상호 관세'를 세계 각국에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한국도 '상호관세' 부과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뉴욕증시에서는 한-미 FTA 사실상 폐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상호 관세는 각국이 미국 상품에 적용하는 관세율만큼 미국도 상대국 상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의미한다.

트럼프 대통령은백악관 집무실에서 상호 관세 부과 결정이 담긴 대통령 각서에 서명하면서 "나는 '공정성'을 위해 상호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힌 뒤 "모두에게 공정할 것이며, 다른 어느 나라도 불평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지명자가 상대국의 관세 장벽과 비관세 장벽을 두루 검토해 관세율을 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트닉 지명자도 "미국은 우리는 국가별로 일대일로 다룰 것"이라며 국가별로 협상을 거쳐 차등화된 관세율을 적용할 것임을 내비쳤다.

러트닉 지명자는 "이 문제에 대한 행정부 차원의 연구는 4월1일까지 마무리될 것"이라고 말해 상호 관세의 실질적인 적용은 4월1일 이후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미국 백악관에 따르면 상무부와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국가별로 상호주의적인 교역 관계를 보장하는 데 필요한 권고안을 담은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할 계획이다. 백악관 고위 당국자는 사전 브리핑에서 이번 상호 관세 부과 방침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교역 상대국의 관세뿐만 아니라 비(非)금전적 또는 비관세 장벽이라고 부르는 것에도 "레이저빔처럼"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백악관 이 당국자는 행정부가 상호관세를 국가별로 맞춤형으로 책정할 것이라면서 "(상대국이) 미국산 제품에 부과한 관세,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불공정하고 차별적인 세금 또는 역외의 세금"을 고려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관세 장벽, 비관세 장벽, 보조금과 부담스러운 규제 요건을 포함해 불공정하거나 해로운 조처, 정책이나 관행 때문에 미국 기업과 노동자, 소비자에 초래하는 비용"도 평가 대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는 환율 정책,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불공정하다고 판단한 다른 기타 관행도 상호관세를 결정할 때 고려하는 요인이 된다고 이 당국자는 설명했다.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 관세를 대부분 철폐한 한국에도 비관세 장벽 등을 이유로 상호관세를 부과하려고 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자신들의 무역 파트너 중 무역적자액 '톱 10' 안에 포함돼 있다. 한국은 중국, 멕시코, 베트남, 아일랜드, 독일, 대만, 일본 등에 이어 8위에 자리해 있으며, 작년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액은 557억 달러(약 81조원)에 달한다. 미국 고위 당국자는 "중국 공산당 같은 전략적 경쟁자이든 유럽연합(EU)이나 일본이나 한국 같은 동맹이든 상관 없이 모든 나라가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이용하고 있다"며 한국을 특정해서 언급했고, 검토 과정에서 (미국의) 무역적자가 가장 많고 문제가 가장 심각한 국가들을 먼저 들여다볼 방침이라고 말했다.

'관세 전쟁'을 본격 개시한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지난 4일 중국에 대해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데 이어 10일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예외 및 면제 없이 25%의 관세를 내달 12일부터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예외없이 25%의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데 이어 반도체, 자동차, 의약품에 대해서도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철강·알루미늄·반도체·자동차·의약품은 한국 수출의 핵심 동력이다.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한국 경제를 정조준하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는 미국의 요청으로 관세 대상에서 원천 제외하자는 국제협정까지 전 세계가 맺고 있다. 그 합의까지 깨고 반도체 관세를 거론하고 있다. 적어도 경제에 관한 한 트럼프에게 적과 우방이라는 개념 구분은 없는 듯하다.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복판인 센트럴파크 남동 방향 입구 쪽에 플라자 호텔이 위치해 있다. 118년 전인 1907년에 지어진 유서 깊은 호텔이다. 미국의 역사를 움직인 수많은 이벤트들이 이곳에서 진행됐다. 매릴린 먼로, 존 F. 케네디, 앤디 워홀, 리처드 닉슨, 제임스 베이커 그리고 다케시타 노보루 등 그야말로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세계적 명사들이 이 호텔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미국의 역사를 열어왔다. 비틀스와 마크 트웨인은 아예 플라자 호텔에서 살았다.

할리우드 영화 역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웠던 크리스마스 영화 '나 홀로 집에(Home Alone)2'를 촬영한 무대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는 미국 47대 대통령 당선인 트럼프가 단역 배우로 등장한다. 가족 일행을 잃고 거리를 헤매는 어린 주인공 '케빈 매컬리스터'에게 플라자 호텔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는 멋진 신사가 바로 젊은 시절의 트럼프다. 트럼프 당선인은 영화 촬영 당시 플라자 호텔의 소유주 겸 경영총책 CEO였다. '나 홀로 집에' 영화를 찍을 때 플라자 호텔을 무대로 제공하면서 그 대가로 영화 출연을 한 것이다. 트럼프의 대중 공략 홍보 마인드는 그때부터 유별났다.

1985년 9월 22일 바로 이곳 뉴욕 플라자 호텔에서 다섯 나라 재무장관 회의가 열렸다. 미국·영국·프랑스·독일·일본 선진 5개국의 재무장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플라자 호텔 협상은 시작부터 분위기가 살벌했다. 말이 좋아 협상이지 미국의 압박은 우격다짐과 협박이었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의 금이 고갈됐다. 너무 많은 국고를 탕진한 탓에 거덜이 난 것이다. 다급해진 닉슨 대통령은 1971년 일방적으로 금태환 정지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금태환 정지 선언은 바로 국제유가의 폭등으로 이어졌다. 달러의 신용이 흔들리면서 글로벌 유동성이 당시 대표적인 실물자산이었던 원유 쪽으로 몰렸다. 그 와중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전쟁까지 터져 유가는 한꺼번에 5배 이상 뛰었다. 이것이 1차 석유파동이다. 이어 1978년에는 이란의 이슬람 혁명을 계기로 OPEC이 다시 유가를 올리면서 2차 석유파동이 일어났다.

두 차례의 오일쇼크는 전 세계적인 인플레를 야기했다. 원윳값 상승으로 물가가 폭등한 것이다. 베트남전쟁 비용 출혈로 어려움을 겪던 미국의 피해가 특히 컸다. 1970년부터 10년 동안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해마다 15%씩 뛰었다. 그야말로 인플레 아비규환이었다. 폴 볼커가 이끌던 미국 연준은 인플레를 잡는다면서 연이어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금리인상은 경기침체를 가져와 미국 경제는 물가 폭등 속에 실업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이른바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그 어려운 시절 혜성처럼 등장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레이건이다. 1980년 공화당 후보로 대선에 출마한 레이건은 혼돈에 빠진 미국 경제를 다시 살려내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레이건이 그때 만든 슬로건이 그 유명한 MAGA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의 영문 구호 'Make America Great Again'에서 앞 글자만 따 구호로 축약한 것이 MAGA다. 레이건은 바로 이 MAGA를 앞세워 당시 세계적인 인권 대통령으로 명성이 높았던 현역 '지미 카터'를 꺾는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인플레 고통에 신음하던 유권자들은 인권 대신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일으켜 세우겠다는 레이건에게 표를 던진 것이다.

1980년 레이건이 대선에서 승리하는 과정은 2024년 대선의 트럼프와 흡사하다. 코로나 팬데믹 때 유동성을 과다하게 풀어 인플레를 야기하고 고삐 풀린 물가를 잡겠다며 초고강도 자이언트 스텝의 금리인상을 단행해 국민들의 원성을 샀던 바이든-해리스 정부의 행태가 1970년대 후반 지미 카터 정부와 많이 닮아있다. 미국의 유권자들이 인권 또는 낙태와 같은 형이상학적 이데올로기에 앞서 ‘경제부터 살리자’는 트럼프의 MAGA 실용주의에 표를 몰아준 것도 비슷하다. 미국 국민들에겐 트럼프가 1980년대의 레이건처럼 미국을 살린 “큰 바위 얼굴”인 셈이다. 실제로 트럼프의 MAGA 프로젝트는 레이건 캠페인에서 따온 것이다.

트럼프노믹스는 1980년대 레이건이 펼친 레이거노믹스와 궤를 같이한다. 같은 뿌리인 셈이다. 레이건 정부가 1985년 뉴욕 플라자 호텔에 선진 5개국 재무장관 회의를 소집한 것도 레이거노믹스의 'MAGA 구현'을 위한 것이다. 레이건은 출범 이후 인플레를 잡는다며 '강달러 정책'을 폈다. 고금리와 고관세 정책으로 달러 강세를 유도했던 것이다. 그 덕에 물가는 어느 정도 잡았다. 문제는 달러 강세로 미국의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법인세 인하와 세금 감면으로 재정적자도 심각해졌다. 무역과 재정이 한꺼번에 거덜 나는 쌍둥이 적자가 온 것이다.

이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레이건 정부가 꺼낸 카드가 환율이었다. 미국의 구상은 선진 5개국이 공동으로 외환시장에 개입해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화를 평가절상시키기로 합의하는 것이었다. 일본과 독일은 처음에 강력하게 반발했으나 미국이 그러면 관세 폭탄을 터뜨리겠다고 위협하자 굴복하고 만다. 경제학계에서는 그 결정을 회의 개최 장소의 이름을 따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라고 부른다. 플라자 합의가 체결되자 전 세계 외환시장에서는 달러 매도가 봇물을 이루었다. 그 결과 달러 가치가 빠르게 떨어졌다. 미국은 이후 신경제 현상으로 불리는 고성장을 지속했다.

플라자 합의 쇼크로 일본과 독일은 오랫동안 경제 불황을 겪었다. 특히 1980년대 초중반까지 4~5%의 견실한 성장을 지속했던 일본은 플라자 합의 이후 엔고 현상으로 인해 자동차 등 일본 주력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떨어져 수출이 감소했다. 엔화 절상으로 일본의 소비가 늘어 결과적으로 국제수지가 급격히 악화됐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플라자 합의에서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레이건의 MAGA 후계자를 자처하는 트럼프로서는 제2의 플라자 합의 유혹을 느낄 수 있다. 플라자 합의보다 더 무서운 MAGA 폭탄이 터질 수 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 속에 리더십마저 흔들리고 있는 한국의 사정이 그야말로 바람 앞의 등불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