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시나 전 총리 축출 이후 인도 대신 파키스탄과 협력 강화
무역·국방 협력 확대...중국 변수로 인도 견제 움직임 가속화
무역·국방 협력 확대...중국 변수로 인도 견제 움직임 가속화

방글라데시의 투히드 호세인 외교 고문은 최근 "파키스탄과의 관계가 더 이상 긴장될 이유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1971년 독립전쟁의 역사적 상처와 후유증을 고려할 때, 이는 단순한 외교적 수사를 넘어선 의미심장한 발언이다.
이러한 해빙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샤크 다르 파키스탄 부총리 겸 외무장관이 오는 4월 다카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발표되었다. 이번 방문은 단순한 의례적 외교 활동이 아닌, 수십 년간 동결되었던 양국 관계의 본격적인 해빙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전망이다.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관계 개선의 핵심 배경에는 셰이크 하시나 전 총리의 축출이 있다. 하시나 전 총리는 15년간 집권하면서 인도와의 강력한 동맹 관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그녀가 물러난 이후 방글라데시의 외교 지형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현재 인도에 망명 중인 하시나 전 총리의 부재는 방글라데시 외교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었고, 그 공백을 파키스탄과의 관계 정상화가 채우고 있는 형국이다.
무역 부문에서도 뚜렷한 변화가 감지된다. 지난해 11월과 12월에는 1971년 독립전쟁 이후 처음으로 파키스탄 화물선 두 척이 방글라데시 치타공 항구에 입항했다. 2024년 8월부터 12월 사이 양국 간 무역은 약 27% 증가했다. 이러한 경제적 교류 확대를 제도화하기 위해 양국 무역기구는 지난 1월 13일 공동 비즈니스협의회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국방 협력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권 교체 이후 양국 군 고위 관계자들 사이에 여러 차례 회담이 이루어졌다. 지난 1월 파키스탄 라왈핀디에서 열린 회담에서는 합동 군사훈련, 훈련 프로그램, 무기 거래 기회를 모색했다. 파키스탄 군부는 두 나라를 "형제 국가"라고 표현하며 새로운 군사적 유대 관계의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러한 방글라데시-파키스탄의 접근은 중국이라는 변수와 맞물려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방글라데시가 중국과 파키스탄이 공동으로 개발한 JF-17 썬더 전투기 구매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보도는 인도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이는 단순한 무기 구매를 넘어 중국-방글라데시-파키스탄 사이의 삼각 축을 강화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인도 입장에서는 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를 통해 인도 북동부 지역을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존재한다. 특히 하시나 정권 하에서 인도와 깊은 안보협력 관계를 유지했던 방글라데시가 파키스탄과의 국방 협력을 강화하는 것은 인도의 전략적 이익에 직접적인 도전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 국가 모두 신중한 전략적 접근이 요구된다. 방글라데시는 파키스탄과의 새로운 파트너십과 인도에 대한 경제적 의존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파키스탄은 방글라데시와의 관계 강화를 원하지만, 자국의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인도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현실을 인식해야 한다. 인도는 방글라데시에 대한 접근법을 재평가하여 그동안 쌓인 불만을 해소하고, 다카를 더욱 멀어지게 할 수 있는 행동을 자제해야 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하는 역학 관계가 남아시아 지역의 지정학적 지형을 근본적으로 재편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50년 이상 지속된 긴장 관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협력의 길을 모색하는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의 화해 움직임은 지역 내 다른 갈등 해결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인도 세 나라는 이제 역사와 지정학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남아시아에서 자국의 미래를 재정의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 서 있다. 이들의 선택은 향후 수십 년간 남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좌우할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