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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데이터센터, 전력망 위협…전력 불균형으로 대규모 정전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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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美 데이터센터, 전력망 위협…전력 불균형으로 대규모 정전 우려

미국 버지니아주 애슈번에 위치한 디지털 리얼리티 데이터센터.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미국 버지니아주 애슈번에 위치한 디지털 리얼리티 데이터센터. 사진=로이터
미국 동부 지역에 집중된 데이터센터들이 전력망 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소로 떠올랐다.

최근 미국 연방 전력 규제 당국이 데이터센터들의 갑작스러운 전력망 이탈이 광범위한 정전 사태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19일(이하 현지 시각)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워싱턴DC 외곽에 위치한 ‘데이터센터 앨리’에서 발생한 대규모 전력망 이탈 사건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 지역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등 IT 기업의 데이터센터가 밀집된 곳으로 전력 소비량이 보스턴 한 도시와 맞먹는 수준이다.

로이터에 따르면 지난해 7월 10일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인근에서 60개의 데이터센터가 한꺼번에 전력망에서 이탈해 자체 발전기로 전환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는 데이터센터들이 전력 공급 불안으로 인해 컴퓨터 칩과 전자 장비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으로 차단 장치를 작동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과잉 전력이 발생하면서 지역 전력망 운영업체인 PJM과 전력공급업체인 도미니언 에너지가 발전소 출력을 급히 조정해야 했다.
이 같은 대규모 이탈 사태는 전력망 전체에 심각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라고 로이터는 전했다.

북미전력신뢰도협회(NERC)의 존 모우라 신뢰도평가국장은 “데이터센터 규모가 커질수록 1500메가와트급 시설이 한꺼번에 빠지는 것은 전력망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며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광역 정전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NERC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데이터센터와 암호화폐 채굴장이 급증하면서 미국 전력망에서 유사한 사고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 산하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에 따르면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지난 10년간 세 배 증가했으며 오는 2028년까지 다시 세 배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텍사스주의 전력망을 관리하는 전기신뢰도위원회(ERCOT)도 지난 2020년 이후 데이터센터와 암호화폐 채굴장이 갑자기 전력망에서 이탈하는 사고가 30건 이상 보고됐다고 밝혔다. 지난 2022년 12월에는 서부 텍사스 지역의 변압기 고장으로 400여 개의 암호화폐 채굴장과 데이터센터가 전력망에서 빠져나가며 1700메가와트에 달하는 과잉 전력이 발생했다. 이는 텍사스 전력 수요의 약 5%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전력 규제 기관들은 데이터센터들이 소규모 전력 변동에도 즉각적으로 전력망을 이탈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전력망 운영사들은 데이터센터들이 일정 수준의 전력 변동을 견딜 수 있도록 ‘전력망 유지 의무’ 규정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아마존, 구글, 메타 등이 포함된 ‘데이터센터 연합’은 이러한 규정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데이터센터의 전자 장비와 냉각 시스템은 전력 공급의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전력 변동을 강제로 견디도록 하면 장비 성능 저하와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텍사스 전력망 운영업체 ERCOT는 지난해 데이터센터들의 전력망 유지 의무 규정을 추진했으나 업계의 반발로 계획을 철회했었다. 하버드대 전력법 연구소의 아리 페스코 소장은 “규제를 강행하면 빅테크 기업들이 더 규제가 적은 지역으로 데이터센터를 이전할 가능성이 크다”며 규제 도입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전력 설비 전문업체 슈나이더일렉트릭의 짐 시모넬리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현재 데이터센터 업계에는 전력망과의 공존을 위한 명확한 기준이 없다”며 “전력망 운영사와 데이터센터 업계가 협력해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