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린폴리시에 따르면 중국의 신흥 AI 스타트업 딥시크가 지난 1월 공개한 생성형 AI 모델 ‘딥시크-R1’이 예상보다 적은 연산 자원만으로 미국 선도 모델에 필적하는 성능을 보여 전 세계 시장을 뒤흔든 이후 한국 정부와 업계가 긴박하게 대응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난달 17일 국가보안과 데이터 보안을 이유로 중국산 챗봇인 딥시크-R1의 신규 다운로드를 금지했다. 앞서 국가정보원은 이달 초 딥시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해 “데이터 유출 위험이 있고 동북아 역사와 김치 기원 등 민감한 이슈를 다룰 때 사실관계가 틀리거나 왜곡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한국의 사용자들은 “고구려는 누구의 영토였나” “김치는 어디에서 유래했나” 등 영토와 문화 기원을 묻는 질문을 대거 입력하며 정확성을 확인하는 데 집중했다.
한국 정부의 이같은 움직임에는 AI 경쟁력에서 뒤처졌다는 우려가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 기업들은 그간 대규모 투자와 인력 부족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러나 딥시크가 보여준 효율성에 주목해 오히려 후발주자도 단기간 내 선도 모델을 따라잡을 수 있다는 희망 섞인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4일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방한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정신아 카카오 대표를 잇달아 만난 것은 한국이 AI 분야에서 새 파트너십을 모색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포린폴리시는 지적했다.
미국 백악관 발표로 알려진 오픈AI·오라클·소프트뱅크의 5000억 달러(약 725조 원) 규모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와 관련해 올트먼 CEO는 카카오와 공동 기자회견에서 “스타게이트에서 한국 기업들이 생태계에 중요하게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신아 카카오 대표는 “오픈AI와 새로운 ‘AI 에이전트’ 공동 개발에 돌입하고 자사의 AI 메신저 ‘카나나’에 오픈AI의 챗봇인 챗GPT를 연동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카카오가 독자 모델로 경쟁하기보다는 여러 선도 모델을 받아들이는 ‘모델 오케스트레이션’ 전략을 택해 AI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으로 한국이 독자 AI 모델, 즉 ‘소버린 AI(자국 주권 AI)’를 확보해야 진정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자국 모델을 키워야 한다”고 언급하는 등 경쟁국 CEO들도 일종의 ‘AI 주권’에 대해 강조하는 분위기다.
김기응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해외에서 개발된 모델은 그 국가나 기업 문화가 반영되기 마련”이라며 “이를 그대로 수용하면 우리의 결정 과정을 미묘하게 바꿀 수 있다. 기술 주권 확보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네이버가 한국어 데이터를 중심으로 학습한 대형 언어 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자체 개발해 ‘클로바X’ 챗봇과 ‘큐’ 검색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기반 기술 역량을 축적하고 있다.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혁신센터장은 “미국 빅테크들이 쏟는 천문학적 인프라 투자는 한국 기업이 따라가기 어렵지만 딥시크 사례처럼 효율성을 높이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밝혔다.
AI 스타트업 업스테이지의 권순일 부사장도 “딥시크가 공개한 소스코드를 기반으로 중소형 모델을 개발해도 충분히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지난 2023년 메타플랫폼스의 오픈소스 모델 ‘라마’를 활용해 개발한 자체 모델 ‘솔라’가 공개 테스트 플랫폼인 허깅페이스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며 주목받았다. 권 부사장은 “단순 모방을 넘어 한국식 혁신을 선보여야 기술 주권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차원의 지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권한대행은 “한국을 세계 3대 AI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며 올해 안에 GPU 1만대를 확보하겠다고 지난달 17일 발표했다. 최 권한대행은 “이제 AI 선도 경쟁은 기업 간을 넘어 국가 간 대결로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야당도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10일 국회 연설에서 “한국이 한때 뒤처졌지만 딥시크 사례가 후발주자도 충분히 시장을 뒤흔들 수 있음을 보여줬다”며 “정부 차원의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국가 AI 데이터 센터와 AI 인재 양성 부트캠프 등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