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저가 AI 모델과 미국 보호무역 정책에 타격... "위기 속 새로운 기회 포착"
"글로벌 공급망 재편 활용" 목소리... 정부, ARM과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
"글로벌 공급망 재편 활용" 목소리... 정부, ARM과 전략적 파트너십 체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취임 이후 불거진 무역 긴장은 한때 미·중 무역전쟁이었던 갈등을 글로벌 무역전쟁으로 확대시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 자동차, 제약 분야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는 정책을 제안했으며, 이는 미국과 중국 시장 사이에 위치한 말레이시아 반도체 기업들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주식 애널리스트 샤피크 카디르는 "미국이 수출 제한이나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경우 중국 노출도가 높은 기업들은 심각한 차질을 빚을 수 있으며, 이는 실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시장은 일반적으로 말레이시아 반도체 주식에 대해 더 비관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대다수의 지역 업체들이 더 명확한 무역 정책이 나올 때까지 관망하면서 재고 축적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1월 등장한 딥시크는 또 다른 충격 요인이었다. 수억 달러의 투자가 필요한 오픈AI의 GPT 모델과 달리, 딥시크의 중국 개발자들은 단 600만 달러로 유사한 AI 기능을 구현했다. 이는 고성능 AI 칩에 의존하는 반도체 회사들에 경종을 울렸다.
피치 레이팅스는 "딥시크가 덜 발전된 칩으로 성공을 거두면 AI 인프라 투자가 둔화되어 AI 칩 제조업체의 매출 성장이 둔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치는 2025년에 '중립적' 전망을 유지하며, '하이퍼스케일러' 지출과 PC 교체 주기 증가에 힘입어 완만한 매출성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상황으로 말레이시아 주요 기술주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엔비디아와 협력해 200억 링깃(16억 달러) 규모의 AI 데이터 센터를 구축 중인 YTL Power의 주가는 22.21% 하락했다. 주요 반도체 패키징 기업 Inari Amertron은 9%, 반도체 비전 검사 시스템 공급업체 Vitrox는 16%, 기술 투자 기업 DNex는 12%의 주가 하락을 기록했다.
그러나 딥시크에 대한 초기 충격 이후, 투자자들은 말레이시아가 글로벌 저가 AI 모델 전환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사모펀드 운용사 빈탕 캐피털 파트너스의 요한 로잘리-와투스는 "딥시크의 역량은 AI 혁명에 동참하기 위해 최첨단 칩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그는 "이는 최고급 칩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 국가들에 희망을 준다"며 "말레이시아 기업들이 항상 최신 기술의 첨단에 있진 않지만, AI 강국들이 첨단 기술 접근을 제한함에 따라 이들의 제품 관련성이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테일러 대학의 옹 키안 밍 부총장은 여러 다국적 기업들이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의 일환으로 말레이시아 같은 중립국으로 이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는 말레이시아 기업들이 IC 설계 가치 사슬에서 틈새시장을 찾기 위해 타이베이, 선전, 싱가포르, 도쿄, 서울 같은 주요 반도체 허브 기업들과 협력해야 함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3월 5일 ARM Holdings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발표했는데, 이는 IC 설계와 같은 고부가가치 반도체 분야에서 말레이시아의 입지를 강화하는 핵심 조치로 평가받고 있다.
말레이시아 투자무역산업부 장관 자프룰 아지즈는 "이 파트너십은 IC 설계의 프론트엔드 생산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요한 전략"이라며 "말레이시아에서 칩을 생산함으로써 말레이시아와 아세안 지역에 이익이 될 고부가가치 공급망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말레이시아 벤처캐피털 회사 RHL Ventures의 공동 설립자 라자 함자 아비딘은 "중국과 미국 기업이 한 곳에서 공존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우리의 능력을 감안할 때 말레이시아가 더욱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말레이시아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도 지적한다. 페낭 주는 토지 부족과 에너지 및 수자원 공급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사라왁 주는 인적 자본 부족 문제를 안고 있다.
로잘리-와투스는 "말레이시아가 전체의 합이 부분의 합보다 더 커질 수 있다면, 베트남이나 인도 같은 신흥 경쟁자들로부터의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