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계 홍콩 기업 CK허치슨이 보유한 전 세계 43개 항만 운영권을 미국 블랙록이 이끄는 컨소시엄에 190억 달러(약 28조원)에 매각하면서 중국 당국이 반독점 심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30일(이하 현지 시각) AFP통신에 따르면 홍콩 재벌그룹 CK허치슨은 지난달 초 전 세계 23개국에 걸쳐 운영 중이던 항만 43곳의 지분을 블랙록이 주도하는 미국계 컨소시엄에 매각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는 파나마 운하 인근 항만도 포함돼 있어 미·중 양국 간 갈등의 도화선이 됐다.
중국 정부는 전날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SAMR)을 통해 이 매각 건에 대해 반독점 심사를 벌이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원래 이 매각은 4월 2일 계약 체결이 예정돼 있었지만 중국의 개입으로 일정이 연기될 가능성이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번 매각에 대해 “미국이 파나마 운하를 되찾았다”고 평가하며 자국 우선주의의 성과로 포장하고 있다. 커트 통 전 주홍콩 미국 총영사는 “미국이 중국을 희생양으로 삼아 정치적 이익을 챙겼고 스스로 승리했다고 선언한 셈”이라면서 “베이징 입장에선 불쾌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이 거래에는 중국 주석 시진핑이 주도한 일대일로 참여국들의 항만도 포함돼 있어 중국 정부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싱가포르경영대의 헨리 가오 교수는 “항만은 일대일로 전략에서 핵심 기반 시설”이라면서 “최근 항만과 무역 인프라가 지정학적 무기로 이용되는 흐름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 2월 파나마는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의 방문 이후 공식적으로 일대일로에서 탈퇴한 바 있다.
중국 내 항만업계의 반발도 작지 않다. 상하이국제해운센터(XISI)의 셰원칭 연구원은 “미국이 항만을 통제할 경우 중국 선박이 차별적 대우를 받거나 통과 비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왕이웨이 중국 인민대 국제문제연구소장은 “미국이 관세 인상에 이어 항만 거래까지 동원해 중국의 제조 경쟁력을 흔들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우려가 과장됐다는 반론도 있다. 아시아태평양연구협의회(YCAPS)의 존 브래드퍼드 사무총장은 “항만 운영사는 상업적 법인으로 법률상 고객을 차별할 수 없다”면서 “악몽 같은 시나리오는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국 당국의 개입은 홍콩의 국제적 위상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이다. 통 전 영사는 “이번 사태는 홍콩이 여전히 글로벌 비즈니스의 관문이 될 수 있는지를 다시금 시험하는 계기”라며 “외국 기업들은 이 사안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CK허치슨은 케이맨 제도에 등록된 기업이며 매각 대상 자산은 모두 중국 외부에 위치해 있음에도 중국 정부는 이들 기업의 중국 내 사업 실적을 근거로 반독점법 적용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베이징 덴튼스 로펌의 덩제 파트너 변호사는 “중국은 일정 기준 이상 거래에 대해 국내 기업이 아니어도 신고 의무가 있다고 보고 있다”면서 “이를 위반하면 전년도 매출의 최대 10%까지 과징금이 부과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홍콩의 위상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미국 존스홉킨스대의 정치학자 흥호펑은 “만약 이번 거래가 중국의 압력으로 무산된다면 홍콩도 중국 본토처럼 국가 안보가 최우선이 되는 사업 환경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