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가 이민자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면서 농업과 건설·리조트 산업 등 외국인 노동력에 의존하는 미국 기업들이 ‘합법적 인력 수급 통로’를 요구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지난달 31일(이하 현지시각)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미국 국토안보부는 지난 5일 H-2B 비자 신청이 법정 상한을 초과했음에도 통상적으로 이뤄지던 비자 추가 발급을 한동안 발표하지 않아 업계에 불안감이 확산됐다.
H-2B 비자는 리조트, 양식장, 놀이공원 등 계절적 노동 수요가 있는 업종에서 비시민권자를 단기 채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미국 야외놀이산업협회(OABA)의 그렉 치에코 회장은 “4월 1일까지 비자 발급이 완료되지 않으면 전 산업이 지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국 지난주 중반 비자 발급 재개가 발표됐지만 NYT는 “이를 둘러싼 업계의 긴장감이 트럼프 행정부의 합법 이민 정책 방향이 여전히 불확실함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불법 이민 단속을 강화하고 있는 가운데 수년간 미국 내에 체류해 온 이민자들의 합법 지위마저 박탈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상당수 기업들이 노동력 확보에 위기를 느끼고 있으며 ‘법적 경로 확대’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 같은 요구를 하고 있는 미국이민비즈니스연합(ABIC)은 지난주 워싱턴DC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 의회에 임시 취업 비자 확대와 불법체류 이민자 합법화 등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이 단체의 밥 워슬리는 “국경만 강화하고 합법적으로 들어올 길을 만들지 않으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자신의 리조트와 와이너리 등에서 H-2B 비자를 사용해 외국인 노동자를 채용한 바 있다. 하지만 미국 행정부 내에서는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을 중심으로 “단기 비자도 미국 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반이민 기조가 여전히 강하다.
실제로 보수 성향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이 주도한 정책 청사진 ‘프로젝트 2025’는 H-2A·H-2B 비자 프로그램을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자동화를 통한 인력 대체를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NYT에 따르면 일각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 이민 단속 강화에 일정 성과를 거둔 뒤 합법 이민 확대 논의를 본격화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농업 분야의 경우 이미 H-2A 비자 발급이 2019년 25만8000건에서 2023년 38만5000건으로 급증했으며, 이 비자는 발급 한도가 없다. 특히 플로리다주는 불법체류자 고용을 원천 차단하는 전자신원확인제(E-Verify)를 시행하면서 H-2A 의존도가 가장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다만 이러한 단기 비자 제도도 공급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캘리포니아와 애리조나에 농업 노동자를 공급하는 스티브 스카로니는 “비자 수요가 늘어도 주거공간이 부족해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비농업 분야를 위한 H-2B 비자의 경우 연간 13만여개의 비자가 허용되지만 수요가 이를 크게 초과해 추첨제로 배정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미 노동부가 24만여명의 고용을 승인했지만 실제 비자 발급은 절반 수준에 그쳤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