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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인 줄 알았더니 지하실이 나오네"…뉴욕증시, 1930년대 폭락 되풀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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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인 줄 알았더니 지하실이 나오네"…뉴욕증시, 1930년대 폭락 되풀이할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 시각)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상호관세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현지 시각)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상호관세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해방의 날’이라고 부른 지난 2일(현지 시각)을 고비로 뉴욕 주식시장이 폭락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2일 장 마감 뒤 거의 모든 나라에 상호관세를 물리기로 하면서 주식시장은 3일과 4일 이틀 동안 추락했다.

이틀 동안 시장 실적 지표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지수는 10.5%, 기술주로 구성된 나스닥 지수는 11.4% 폭락했다.

대형 우량주 30개로 구성돼 시장 변동성에 덜 노출된 다우존스 산업평균 지수마저 10.5% 폭락했다.
투자자들이 ‘숨을 곳’이 없었다.

주식시장이 1929년 폭락세를 되풀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929년 검은 목요일


1920년대 뉴욕 주식시장을 대표하는 지수였던 다우 지수는 1929년 10월 24일 목요일에 돌연 폭락했다.

지금과 다른 점은 그때는 뚜렷한 폭락 방아쇠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날 주식 회전 규모는 1290만 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고, 다우 지수는 이날부터 그다음 주 화요일까지 5거래일 동안 75포인트 급락했다.

당시에는 토요일에도 오전 동안 주식 거래가 이뤄졌다.

305.85로 시작한 다우 지수는 화요일이었던 10월 29일 마감까지 5거래일 동안 24.8% 폭락했다.

검은 목요일 폭락은 투기 거품이 빠지면서 방아쇠가 당겨졌다.

주식시장이 최근 뉴욕 주식시장이 그랬던 것처럼 오랜 경제 성장 속에 호황을 지속했고, 투기도 크게 늘었다.

돈을 빌려 주식 투자에 나서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주가 폭락은 대출을 갚기 위한 투매로 이어지며 주식 하락세에 기름을 부었다.

폭락


이튿날인 1929년 10월 25일 금요일에는 주식시장이 반등하며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24일 폭락은 조정이었을 것이라는 안도감으로 이어졌다.

26일 토요일 오전 거래에서 주식시장은 소폭 하락하며 안정을 찾는 듯했다.

그러나 투자자들이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 동안 장고에 들어간 것이 화근이었다.

배런스에 따르면 주식시장은 월요일인 27일 장이 열리자 폭락세로 다시 돌아갔다. 다우 지수가 당시 하루 낙폭으로는 사상 최대였던 12.82% 폭락세를 기록했다. 검은 월요일이었다.

이튿날인 화요일, 28일에도 폭락세가 이어져 다우 지수는 11.73% 더 폭락했다.

검은 목요일, 검은 월요일과 검은 화요일을 거치면서 다우 지수는 25% 가까이 폭락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


10월 30일 목요일이 되자 마침내 허버트 후버 당시 대통령이 중대 성명을 발표했다. 스무트-홀리 관세법 통과를 의회에 촉구하는 성명을 낸 것이다.

후버는 당시 성명에서 “농업과 각종 산업에 적절한 보호가 있어야 한다”면서 “달라진 경제 상황이 이들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극적인 변화였다.

미 경제가 당시에도 미국 ‘예외주의’ 속에 나 홀로 상승세를 이어갔고, 주식시장은 1920년대 초반부터 하락을 모르며 상승 일로를 걸었다. 검은 목요일 불과 1주일 전에는 경제학의 화폐금융론 대가인 어빙 피셔가 미 주식시장이 “영원히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고점”에 도달했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투기가 만연해지는 가운데 주식시장이 돌연 폭락하자 사정이 달라졌다.

트럼프처럼 ‘관세맨’이던 후버의 스무트-홀리 관세법 통과 촉구는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관세를 통해 미 산업을 보호하면 주식시장도 살아날 것이란 기대가 반영됐다.

그러나 이는 패착이었다.

1930년 6월 17일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발효되면서 미 경제를 비롯해 세계 경제가 심각한 침체에 들어갔다. 서로가 시장 빗장을 걸어 잠그면서 세계 경제가 대공황에 빠졌다.

대공황 속에 후버는 1932년 대선에서 민주당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FDR)에게 대패했다.

FDR은 1934년 마침내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철폐했지만 관세 폐해를 없애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공황은 1930년대 말까지 이어졌다.

관세법 제안부터 폐지까지 약 5년 동안 미 수출입은 급감했고, 세계 교역은 최대 3분의 2가 줄었다.

세계 경제는 침체에 빠졌고 그 후유증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각국의 무장 충돌로 이어졌다.

2차 대전을 겪은 뒤 관세는 경제 정책 수단에서 유행이 한물간 정책 도구로 전락했다.

그동안 뉴욕 주식시장은 시가총액 대부분을 날렸다.

다우 지수는 1932년 41.22까지 추락했다. 하락률이 고점 대비 89%를 기록했다.

해방의 날


대공황을 부르며 주식시장에 심각한 충격을 줬던 관세를 트럼프가 다시 주된 정책 수단으로 쓰면서 주식시장이 심각한 충격을 받고 있다.

지난 3일과 4일 폭락세로 하락세가 진정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역사가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런 역사적 교훈과 다른 궤변을 내놓고 있다.

그는 실제로는 낮은 관세가 당시 대공황을 불렀다고 주장한다.

트럼프는 “그들이 당시 높은 관세 정책을 지속했다면 (대공황 같은)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트럼프에게 당시 뉴욕 주식시장 붕괴와 대공황을 촉발한 진짜 ‘악당’은 1913년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이 “인류에게는 여러 이유로 알려지지 않았던” 소득세를 영구적으로 만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시 민주당이 통과시킨 소득세율은 연소득 1000달러 초과 소득자에게 1%, 50만 달러 초과 고소득층에는 6% 세금을 물리는 것이었다.

그는 소득세가 부유층의 투자 의욕을 꺾어 경제를 후퇴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트럼프가 내놓는 해법은 소득 재분배 성격의 소득세 같은 직접세를 없애고 소득에 관계없이 누구나 같은 세율로 세금을 내는 관세, 소비세 같은 간접세로 재정을 운용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를 통해 확보한 재원으로 소득세를 없앨 계획이다.

그가 1기 행정부에서 추진하다 중단됐던 ‘부자 감세’를 2기 행정부에서 확실한 재원을 바탕으로 추진한다는 뜻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는 3일과 4일 금융시장에서 내놓은 경고 신호도 무시하고 있다.

J.D. 밴스 부통령은 3일 폭락세를 두고 그저 “좋지 않은 하루”라고 표현했다.

트럼프는 주식시장이 붕괴했지만 5일 플로리다주로 날아가 골프를 즐겼다.


김미혜 글로벌이코노믹 해외통신원 LONGVIEW@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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