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장 변화에 발맞춘 전략적 전환
미·중 갈등 심화 속 공급망 재편 움직임
미·중 갈등 심화 속 공급망 재편 움직임

이번 투자는 현지 기업과의 합작 없이 토요타가 단독으로 출자해 2025년 전반기에 새 회사를 설립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는 완성차 제조업체 중 미국 테슬라에 이어 두 번째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토요타의 미야자키 요이치 부사장은 "중국 현지 멤버가 주체가 되어 기획부터 개발까지 전 과정을 책임질 것이다. 중국 시장에서 더욱 사랑받고 지지받는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며 포부를 밝혔다.
토요타가 중국 내 렉서스 신공장 건설을 결정한 배경에는 여전히 중국 시장이 매력적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경기 침체 속에서도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며, 약 14억 명의 인구를 보유한 거대 시장이다.
◇ 성장하는 중국 내수 시장을 겨냥한 투자
최근 중국 내 EV 등 신에너지차 제조업체들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토요타의 중국 판매량은 2023년 전년 대비 2%, 2024년에는 7% 감소했다. 하지만 렉서스 브랜드는 오히려 2023년에 3% 증가했고, 2024년에도 소폭 증가하며 견조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토요타 외에도 많은 일본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혼다는 2024년 12월, 중국 국영 자동차 대기업인 광저우 자동차 그룹과의 합작 법인 '광치혼다'를 통해 EV 등 신에너지차 신공장 생산을 시작했다. 미쓰비시 전기는 랴오닝성 다롄시에 팩토리 오토메이션(FA) 신공장을 2025년 가동할 예정이며, 고바야시 제약 역시 2024년에 안후이성 허페이시에 신공장을 가동했다.
중국과 대만 등 중화권 매출 비중이 50%에 달하는 무라타 제작소는 2025년 봄부터 장쑤성 우시시에 위치한 주력 제품인 적층 세라믹 콘덴서(MLCC)의 새 생산동을 가동한다. 약 445억 엔(약 4456억 원)을 투자해 고속 통신 규격인 '5G' 대응 스마트폰과 EV 등 첨단 부품 생산 설비를 확충했다.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중국 국내 시장'을 주요 목표로 한다는 점이다. 이는 과거 중국에서 생산된 제품을 전 세계로 수출하던 '세계의 공장'으로서의 역할과는 분명히 다른 전략적 변화를 보여준다.
◇ 무라타 제작소, 공급망 다변화 전략
무라타 제작소는 중국 투자와 동시에 동남아시아 지역으로도 공급망을 확대하고 있다. 2023년에는 약 120억 엔(약 1201억 원, 건물 기준)을 투자해 태국에 MLCC 신공장을 가동하는 등 생산 능력 증강에 힘쓰고 있다. 나카지마 노리오 사장은 "미국과 일본 중심의 경제권과 중국 중심의 경제권으로 공급망을 이원화할 필요가 있다. 2020년쯤부터 공급망 복선화를 추진해 왔으며, 이제야 준비가 완료되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러한 전략이 '정답'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동남아시아 시장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베트남 등에서의 대미 무역 적자 확대를 문제 삼고 있다. 중국을 우회한 수출 기지로 활용될 가능성도 제기되며, 이에 대한 제재로 관세 부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동남아시아가 과거 중국과 같은 '세계의 공장'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불확실한 국제 정세 속 제조업의 고민
일본 국제협력은행(JBIC)이 2024년 말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 제조업체들은 '중기적으로 유망한 사업 전개 지역'으로 인도를 가장 많이 꼽았다. 하지만 인도 역시 상당한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하고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잠재적 표적이 될 수 있다. 소수 의견으로는 아랍 국가나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를 언급하는 기업도 있었다. 무라타 제작소의 나카지마 사장은 "각국의 법규제와 통치 시스템 등 정치적 안정성까지 면밀히 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 혁명 이후, '세계의 공장'의 주역은 영국에서 미국, 그리고 일본으로 변화해 왔다. 1990년대부터 자유 무역이 확산되면서 2000년대 초반에는 저렴한 노동력과 정부의 개혁 개방 정책을 바탕으로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이 그 역할을 독점했다. 그러나 중국 경제의 성장 둔화와 미·중 갈등 심화로 인해 현재 '탈중국'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각국이 보호주의로 전환하는 가운데, 인력, 물자, 자본의 이동에 제약이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세계 경제의 블록화가 지속된다면, '세계의 공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을 수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는 일본 제조업체들은 더 이상 과거 중국과 같은 안정적인 생산 기지를 찾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불확실한 국제 정세 속에서 제조 거점을 재검토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가 기업 경영진에게 무거운 짐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