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일(이하 현지시각) 아시아타임스는 미 국방부가 작성한 비공개 내부 문건을 입수한 워싱턴포스트(WP)의 최근 보도를 인용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국방정책 방향이 ‘중국의 대만 침공 저지’와 ‘미 본토 방어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의 북핵 억지력이라는 전통적인 역할이 후순위로 밀릴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이 문건은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중순 국방부 내에 배포한 ‘국방 중간전략지침’으로 “타 지역에서의 위험 감수를 감안하더라도 중국의 대만 점령을 억제하는 데 우선순위를 둘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아시아타임스는 “이는 미국이 주한미군을 대중국 견제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신호로,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동북아 안보에 공백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문건에는 “북한, 이란, 러시아 등 역내 위협에 대해서는 동맹국이 보다 많은 억지책을 감당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라는 문구도 포함돼 있다. 미국의 안보 부담을 줄이고 동맹국의 방위비 분담을 늘리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조가 다시 확인된 셈이다.
이같은 변화는 주한미군의 구조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로 이어진다. 이상수 제주평화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은 아시아타임스와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는 ‘전략적 유연성’을 존중한다고 밝혀왔지만 실제로는 주한미군이 한반도에 고정적으로 주둔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정책 변화의 배경에는 미국의 군사적 자산 부족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건에는 미 국방부가 북미, 파나마 운하, 그린란드 등 이른바 ‘근접 지역’의 방어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인도·태평양 전략의 구조적 재편에 나서겠다는 구상이 담겨 있다.
한국 내 전문가들은 이러한 움직임이 방위비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주한미군이 축소되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오판할 가능성도 높아진다”며 “이런 변화가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5일 미 의회 연설에서 한국을 콕 집어 언급하며 “한국의 평균 관세는 미국보다 4배 높고 우리는 군사적으로 너무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지난 2일에는 한국산 수입품에 26%의 보복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은 내년까지 주한미군 방위비를 연간 13억 달러(약 1조9000억원)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기로 합의한 상태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당시 한국에 연간 100억 달러(약 14조6000억원)까지 요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만 해협 유사시 한국의 역할 확대 가능성도 거론된다. 앤드루 여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에 대만 관련 입장을 보다 명확히 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며 “미국-한국 동맹 강화를 위해 대만 유사시 한국의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이 상수 연구위원은 “중국이 대만을 침공할 경우 미국은 한국에 자국 기지 제공, 병력 파병, 군수 및 정보 지원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런 선택은 중국과의 경제관계에 직접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의 대중 수출액은 2024년 기준 1330억 달러(약 194조원)로 전체 수출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공식 입장 변화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국방부는 WP 보도 직후 “현재까지 미 국방부로부터 공식적인 입장 변화는 전달받지 않았다”며 “주한미군의 주임무는 여전히 한반도 평화와 안정 유지”라고 밝혔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