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정부가 브리티시스틸의 고로(高爐) 폐쇄를 막기 위해 긴급 통제권을 행사하고 국유화 가능성까지 검토 중이라고 로이터통신이 1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영국 노동당 정부는 전날 부활절 연휴 중이던 의회를 소집해 브리티시스틸에 대한 긴급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회사 이사회와 노동자에 대한 지시권, 임금 지급, 원자재 수급 등 고로 가동을 위한 핵심 권한을 정부가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브리티시스틸은 현재 중국 징예그룹이 소유하고 있으며 잉글랜드 북부 스컨소프 공장에서 3500명을 고용 중이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이날 스컨소프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 법안은 오늘 통과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우리가 이 시설을 통제하게 된다”고 밝혔다. 스타머 총리는 “이같은 긴급 법률은 전례 없는 일이지만, 영국 철강 산업의 미래를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며 “이번 조치는 국가적 이익에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현재 브리티시스틸 고로는 하루 70만파운드(약 13억원)의 손실을 보고 있다.
조너선 레이놀즈 기업장관은 하원 연설에서 “브리티시스틸의 장기적 미래를 확보하기 위한 협상 시간을 벌기 위해 법안을 추진했다”며 “회사의 최근 행태를 고려할 때 국유화가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 부문과의 협력을 희망하지만 오늘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으면 더 나은 결과를 논의할 기회조차 잃게 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하원에서는 누구도 해당 법안을 반대하지 않아 초반 절차는 무난히 통과됐다. 영국 의회가 휴회 중인 토요일에 긴급 소집된 것은 1982년 포클랜드 전쟁 이후 처음이다.
브리티시스틸 고로가 폐쇄될 경우 영국은 주요 7개국(G7) 가운데 유일하게 철광석과 코크스 등 원재료로부터 일차 철강(버진스틸)을 생산하지 못하는 나라가 된다. 영국 정부는 철강 산업을 위해 이미 25억파운드(약 4조7000억원)의 예산을 배정했으며 이번 공장 유지 자금도 기존 예산에서 집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철강 산업에 대한 종합 전략도 오는 봄 안에 발표할 계획이다.
한편, 미국이 지난 3월부터 철강 전 품목에 25%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영국 철강업계는 추가 타격을 입은 상태다. 미국은 영국 철강 수출의 약 5%를 차지하며 연간 4억파운드(약 7000억원) 규모다. 이에 대해 레이놀즈 장관은 “브리티시스틸이 처한 구조적 문제는 미국의 관세 이상이며, 관련 관세 해제를 위한 협상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가 현실화되면 브리티시스틸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다수의 은행이 국유화된 이후 최대 규모의 국가 개입 사례가 될 전망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