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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책, 송금에 의존하는 필리핀 페소화에 위협으로 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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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정책, 송금에 의존하는 필리핀 페소화에 위협으로 작용

美 이민단속 강화, 필리핀 핵심 경제 생명줄 위협
전문가들 "외국인 노동자 송금 감소 가능성... 통화 안정성 흔들릴 수도"
필리핀은 세계 최대의 노동력 수출국 중 하나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필리핀은 세계 최대의 노동력 수출국 중 하나다. 사진=로이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강력한 이민 단속 정책을 추진하면서 해외 노동자 송금에 크게 의존하는 필리핀 경제와 통화 가치가 위협받고 있다. 해외 필리핀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송금하는 수십억 달러의 자금이 필리핀 경제의 핵심 생명줄 역할을 하고 있는 가운데, 이민 정책 강화는 페소화의 안정성에 잠재적 위험 요소로 부상하고 있다고 14일(현지시각) 일본의 경제신문 닛케이 아시아가 보도했다.

필리핀 중앙은행(BSP)에 따르면, 2024년 개인 송금액은 전년 대비 3% 증가한 383억 4천만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이는 필리핀 국내총생산(GDP)의 8.3%에 해당한다. 이 중 상당 부분이 미국에서 발생하고 있어 트럼프의 이민 정책 변화가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필리핀은 세계 최대 노동력 수출국 중 하나로, 현재 약 230만 명의 해외 필리핀 근로자(OFW)가 있으며, 미국에는 약 400만 명의 필리핀계 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이 중 약 35만 명이 불법 체류자로 추정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외계인의 적법(Alien Enemies Act)'에 따라 최소 137명을 추방했으며, 이는 인권 단체들로부터 광범위한 비난을 받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사용된 이 법은 미국 대통령에게 통상적인 적법 절차 없이 "적국" 국적자를 구금하고 추방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필리핀 개발연구소의 선임연구원 존 파올로 리베라는 "미국의 엄격한 이민 정책은 필리핀인들의 노동 이동성을 감소시켜 송금 증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세계 금융시장이 트럼프의 관세 정책으로 혼란에 빠진 가운데, 페소화는 그동안 인도네시아 루피아, 태국 바트, 싱가포르 달러 등 다른 지역 통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세를 유지해왔다. 이는 해외 송금 유입이 충격 흡수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의 수석 아시아 이코노미스트 미구엘 찬코는 트럼프의 이민 단속으로 미국 노동시장이 타이트해지면 오히려 남아있는 필리핀 노동자들의 소득이 증가해 더 많은 송금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낙관적 견해를 제시했다.

그러나 그는 "서구 세계의 이민 정책 전반적 긴축은 필리핀의 인력 수출과 미래 송금 증가에 부정적"이라고 덧붙였다.

페소화는 최근 몇 개월간 달러 대비 변동성을 보였다. 2024년 9월에는 달러당 55~56페소 수준으로 강세를 보였으나, 11월과 12월에는 약 58페소로 약세를 보였고, 2022년 10월에 기록한 최저치인 59페소에 근접했다. 올해 초에는 58페소 수준을 맴돌다가 3월에 57페소로 소폭 강세를 보였다.

리잘 커머셜 뱅킹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마이클 리카포트는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은 세계 경제 둔화로 인해 미국에서 유입되는 송금액을 잠재적으로 감소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2일 미국은 필리핀 수입품에 18%의 관세를 부과하는 등 인접국 및 동맹국들과의 무역 전쟁을 촉발했다. 이후 이 관세율은 10%로 하향 조정됐다.

리카포트는 "트럼프의 관세 인상과 미국 우선주의 정책은 해외 필리핀 노동자의 일자리를 포함한 글로벌 무역, 투자, 고용 및 전반적 세계 경제 성장을 둔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페르디난드 '봉봉'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이 향후 몇 달 내 백악관을 방문할 경우 페소화 가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리베라는 "이번 방문이 중국과의 지정학적 긴장을 고조시킨다면 시장 불확실성을 야기해 필리핀 페소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구체적인 경제적 합의가 이뤄지느냐에 따라 시장이 반응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미국의 중국 견제 정책과 트럼프 행정부 하에서의 불확실한 미국 지지에 대비해 필리핀은 프랑스, 캐나다, 일본, 뉴질랜드 등과 새로운 국방 동맹을 모색하고 있다.

판테온 매크로이코노믹스의 찬코는 필리핀 경제가 수출보다 국내 수요에 의존하기 때문에 페소화가 상대적으로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있다고 낙관했다. 그는 "필리핀 중앙은행의 통화 완화 정책이 페소화에 하방 압력을 가할 수 있지만, 경상수지와 재정적자 개선, 낮은 인플레이션이 통화에 더 나은 환경을 제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필리핀 페소화의 미래는 미국의 이민 정책과 관세 전쟁의 향방, 그리고 필리핀과 미국 정상 간 회담 결과에 크게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필리핀 경제의 핵심 동력인 해외 노동자 송금이 어떤 영향을 받을지가 향후 페소화 가치 변동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신민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